독서지도 자료실

그림으로 읽다

미송 2016. 1. 1. 13:00

 

 

아이들은 거침이 없고 기발하고 때론 엉뚱하고 우월하다. 실력들도 제법 매끈하다.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길 펼칠 때도 그렇고, 누군가 대상이 정해져서 전달해야 할 과제가 떨어졌을 때도 그렇다. 쟤가 저런 말하기 실력도 있었나, 쟤가 저런 글씨체도 갖고 있었나, 제법인데,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아이들은 대부분이 솔직하다. 자기에게 보이는 대로 덧칠하거나 아부하거나 하는 것 없이 그린다. 내복처럼 심플하게 그린 겉옷이 그렇고, 드라이기를 대지 않고 털어 말리는 헤어스타일이 그렇다. 자기가 본 모습 그대로 그린다. 아니 자기가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 그린다. 굿바이 쌤~ 새털처럼 인연을 가벼이 날려 보낼 줄도 아는 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한다. 싸인펜이 자꾸 번진다 고 투덜대는 것도, 정말 이쁘게 곱게 그려넣고 싶은 자기의 마음이 밖으로 자꾸 번져서 짜증이 난다는 뜻이다. 표면의 아우성만 들으면 소음에 그치는 아이들 그러나, 소박한 마음 한 켠을 엿보다 보면, 참 고요가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착한 것의 '것'이란 글자를 오해하지 말라는 세심한 덧글. 착한 것이란 그 자체이지 쌤을 함부로 이것 저것이란 사물로 대하지 않았다는 은밀한 고백, 그렇게 읽는다 나는, 아이야~!  

 

무엇이 재밌었는지 우리는 거의 기억나는 게 없다. 무엇을 읽었는지도 마찬가지, 그러나 아이들은 느낌을 쓰는 것. 그리고 서로에 대한 마지막 인사는 늘 아쉬움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배우기 위해 우린 지난 1년을 재밌게 놀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책장에 책을 10프로밖에 읽지 못했어도, 독서쌤을 어느 날 우연히 떠올리게 될 때, 책이란 재밌는 거야, 독서는 좋은 거야, 이 정도로만 기억이 나도 좋겠단, 소원. 더한 소원은 없겠다.    

 

 

 

엄마 아빠가 빚더미에 눌려 씩씩하게 돈 벌고 있는 중이라서, 일주일 용돈이 반으로 쑥 줄었다 고 귀뜸해주던 아이.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건 너의 작은 격려의 말이라 고 일러주었을 때, 황소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 마지막 수업을 하기 전 주, 딱 한번 만나 그리기를 하며 마음을 열었던 또 한 아이, 허르스름한 아빠의 갑작스런 공부방 출현에, 놀란 눈빛을 얼른 감추던 아이는, 딱 한번의 만남과 곧이은 어짐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쌤의 모습을 얼른 그려 준다. 보고 싶을 거라는 말, 생각지도 않았던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엄마가 손으로 만들어 주는 옷과 소품들을 자랑하던 아이. 너희 엄만 정말 나 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나셔서 부러워, 하면, 으쓱해진 어깨를 올리며 새 물건을 또 자랑하던 아이. 엄마는 늘 바쁘신거 같았는데, 두 아이는 일 년 동안 너무나도 의젓해졌고, 덩치는 남산만해졌다. 여자 아이들이라도 엄마가 얼마나 듬직하고 자랑스러워할까. 잠시 이별이란 걸 할 때, 또 놀러오세요, 라는 말 보다 푸근하고 고마운 말이 어디 있을까. 빈 의자는 당신의 자리로 남겨두겠으니...하는, 저 애틋한 저 여자들만의 저 암시라니~!

 

 

12월 31일. 세 군데 공부방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컨셉을 끝으로, 한 해를 고이 접었다. 중, 고등학생이 많은 B 공부방에는 2016년에도 다시 들어가게 되었고, 두 군데 센터의 아이들과는 이별의 카드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 또 하나 펼쳐질 예정이다. 카톨릭종합사회복지관으로 새롭게 들어가게 되었는데, 올해는 미술쌤들의 지원이 깡그리 끊기는 바람에 미술과 독서를 겸해 이틀 수업을 맡아야 할 형편에 처했다. 미술적인 건 나 보다 아이들이 더 원하는 수업이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난 사실 그리기를 안 하고 앉아만 있다. 왜? ...그림을 제대로 못 그리니깐. 그러나 한 가지, 수업을 진행하다가 쫓겨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나의 숨겨진 장점. 그리는 대신 읽어주면 되지 않을까, 그림 위에 쓴 아이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반사시켜 말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게 독서이고, 소통의 지름길 아니니?...고집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