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 자료실

1,2차 세계대전

미송 2016. 3. 6. 16:51

 

 

 

 

발칸반도에서 시작된 제 1차 세계대전 (1914~1918)

 

 

세계는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뜨겁고, 발칸반도에서는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이 서로 자기 민족을 내세우며 위태롭게 대립하고 있던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울렸고, 오스트리아 황태자인 페르티난트 부부가 숨지고 말았다.

이들을 암살한 사람은 프린치프였는데, 보스니아에 살고 있던 세르비아 청년이었다. 이를 사라예보사건이라고 한다.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사라예보사건은 제 1차 세계대전을 불러 일으켰다. 

 

오스트리아는 이 기회에 세르비아를 꺾고 발칸반도를 손아귀에 넣기 위하여 전쟁을 선표하였다. 세르비아는 같은 슬라브족인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러시아가 전쟁을 위해 군사와 물자를 동원하자 같은 게르만족인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지원하며 러시아와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러자 프랑스와 영국은 러시아를 돕기 위하여 독일에 맞서 싸울 것을 선포하였다. 이렇게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맹국과

영국, 러시아, 프랑스가 중심이 된 협상국으로 갈라지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독일이 우세했다. 독일이 먼저 서부 전선에서 프랑스를 점령한 뒤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에 이기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서부 전선에서 독일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자 전쟁은 점점 길어졌다.

 

바다에서는 영국이 우세하였다. 영국은 독일로 들어가는 바닷길을 막아 독일을 고립시키려고 하였다. 그러자 독일은 1917년, 잠수함에서 어뢰를 발사하여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중립국 배와 민간상선까지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미국 사람들이 타고 있던 상선까지 공격하여 미국인 백여 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던 미국마저 연합국 쪽에 가담해 전쟁에 참여하였다. 미국이 끼어들면서 전쟁은 연합국 쪽이 유리하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가 전쟁에 빠졌지만, 상황이 계속 독일에 불리해지자 1918년 10월에 동맹국이었던 투르크와 불가리아, 오스트리아가 잇달아 항복하였다. 1918년 11월에는 독일에서 바이마르혁명이 일어나 황제가 물러나고, 새로운 바이마르공화국 정부가 세워졌다. 그리고 곧이어 바이마르공화국이 항복을 하면서 4년 4개월에 걸친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배경지식 탐구1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제국주의 국가들이 서로 편을 가르다) -15쪽

 

영국과 프랑스가 해외식민지 개척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독일과 이탈리아는 19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통일을 이루었다.

두 나라는 산업발전에 힘써서 힘을 키운 다음, 앞선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아프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세우려고 하였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독일은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하여 적이었던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고

러시아를 끌어들여 삼국협상을 맺었다. 그러면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대립하였다.      

 

탐구2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사건은 무엇인가요?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전쟁

 

 

1938년에 독일군은 오스트리아를 차지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 지방도 빼앗았다. 유럽 나라들은 또 다시 큰 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워 뮌헨회담을 통해 독일이 점령한 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었다.  대신에 독일로부터 더 이상 침략을 하지 않고

새로 정해진 국경선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히틀러는 뮌헨 협정을 어기고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차지했다.

또한 히틀러는 폴란드 분할을 서로 인정한다는 조항이 든 독, 소 불가침조약을 소련과 맺고,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그러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독일은 차례로 유럽 국가들을 차지해 나갔다.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를 점령한 독일은 프랑스로 쳐들어갔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독일과 맞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1940년, 독일과 프랑스가 휴전 조약을 맺으면서 독일이

프랑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은 영국을 향해 총격을 가했지만,

처칠이 이끄는 영국은 공군력을 앞세워 독일을 막아냈다. 

 

한편 이탈리아는 전쟁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해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발칸 반도와

아프리카로 진출했다. 하지만 영국군에게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탈리아가 발칸 반도를 차지하지 못하자,

대신에 독일이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를 점령했다.

그리고 1914년에는 독, 소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략했다. 처음엔 공격이 성공하여 거침없이 쳐들어갔지만, 

겨울로 접어들며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지고 말았다. 

 

소련에 지고, 아프리카에서도 미국과 영국에 패배한 데다가 유럽 나라들의 저항도 거세지자, 많은 독일 군인들이 희생되었다.

또 이탈리아마저 또 연합군에 패하자 독일은 점점 힘이 약해져 갔다.

 

1944년, 미국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여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미국, 영국, 중국은 카이로에서 회담을 열어, '일본이 점령한 태평양 섬들을 빼앗고, 만주와 타이완은 중국에 돌려주며,

한국은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독립시킬 것'에 합의 했다. 연합군은 계속 진격하여 1945년 5월, 마침내 베를린을 점령했다.

히틀러는 자살하고, 독일은 무조건 항복했다.

 

 

배경지식 탐구1 히틀러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토론1>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맺은 베르사이유조약은 패전국인 독일에게 1320억 마르크(약33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결정했다. 독일 국민들은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배상금 때문에 고통을 당했고, 그만큼 불만이 높았다.

그래서 베르사유 체제 타파를 외친 히틀러를 지지한 것이다.

 

토론2> 자본가들과 중산층은 독일이 공산주의 국가가 될까봐 겁났기 때문이다.

1932년 선거에서 전체 의석 577석 가운데 나치당이 230석을 차지하여 제1당이 되었고, 공산당도 100석을 차지하면서

세력을 점점 키워나갔다. 자본가들과 중산층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게 될까봐

더욱 더 나치당과 히틀러를 지지했다.

 

토론3> 의회는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했고, 나치당은 그런 민중들 불만을 이용했다.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미국 자본이 빠져나가자 가까스로 살아나던 독일 경제는 무너졌다.

4년 동안 공업 생산력이 40%나 줄어들었고, 1932년에는 실업자가 620만 명에 달했다. 의회가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자 나치당이 대독일 건설을 내세웠다.

히틀러는 신성 로마 제국과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된 독일제국 뒤를 잇는 제 3제국 총동이 되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토론4> 히틀러가 민족주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워 유태인을 포함한 질 낮은 인종을 죽이거나 이들 영토를 빼앗는 침략은 옳다고 했다.

교묘하게 대중을 이끌어 불만에 가득 차 있던 독일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탐구2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 사건은 무엇일까요?

 

 

도서: 살아있는 세계사 재미있는 논술 (모난돌역사논술모임,시립 J909모488ㅅ 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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