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촛불의 파도' 한 가운데,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미송 2016. 11. 14. 12:40

 

 

 

 

촛불의 파도가 밀려온다. 출렁이는 빛 망울들을 숨죽이며 응시하다가 힘껏 초를 들며 함성을 지르곤 뒤돌아선다. 100만 개의 촛불이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밀려 내려간다. 우리가 밝힌 빛이고 우리가 지른 함성이다. 우리가 터뜨린 분노고 우리가 피운 열망이다. 

 

거짓말로 점철된 시절이다. 최순실의 작태가 드러나면서, 대통령의 시간은 사실상 끝났다. 이젠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국민이 믿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을 위한 청와대와 정부가 아니라 최순실 일당을 위한 청와대와 정부였다면,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옳다. 그러나 두 차례 촛불 집회가 열리는 동안 결정은 유예되었다. 대통령이 최소한의 잘못만 인정하며 꼬리자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다. 

 

11월 11일은 상경 준비로 방방곡곡이 분주했다. 이번엔 꼭 서울로 가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연락이 뜸하던 지인들이 집회 현장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해왔다. 12일 새벽부터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명절도 아닌데 기차표와 비행기표는 동이 났고 전세버스도 뜻밖의 호황을 누렸다. 광주에서 부산에서 전주에서 대구에서 그리고 제주에서 모여드는 이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예전에도 큰 집회는 있었지만, 이렇듯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결집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 오후 2시, 광화문역에 내렸다. 3주 연속 토요일 집회에 나올 때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월호 분향소부터 찾았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어디까지 왔나’ 라는 4·16가족협의회 자료집을 사는 줄이 길다. 이 정부는 그 동안 너무 많은 것을 감춰왔다. 세월호와 관련된 의혹만 열거해도, 대통령의 7시간부터 선체 인양 지연과 특조위 조기 종료까지 납득하기 힘든 사건들이 가득하다. 거기에 최순실 소식은 참담함을 더한다. 

 

5시, 청와대 포위 국민대행진이 시작되었다. 노년층과 청년층 사이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가 많았다. 친구들과 함께 나온 중3 막내를 겨우 찾아 같이 걸었다. ‘쌀값대폭락 박근혜 퇴진하라’는 구호가 적힌 상여를 들고 상복 입은 농민들이 앞장을 섰다. 청계천을 지나자 속도가 눈에 띄게 줄다가 멈췄다. 참가자가 너무 많아 더 이상 행진이 어렵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인도로 빠져나와 세종문화회관 뒷길로 접어들었다. 갑자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주에도 마주쳤던 중고생연합 시위대가 경쾌하게 나아왔다. 박수를 보내며 길가로 잠시 피했다가 다시 보니 딸이 없었다. 또래인 시위대에 합류하여 저만치 앞서간 것이다. 서둘러 경복궁역까지 걸었고 겨우 딸을 찾았다. 사위는 이미 어둑어둑했다. 고등학생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나란히 앉은 딸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정의로운 일을 하는 거니까.” 

 

핵심은 진상규명이다. 7시 30분, 3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갔다.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민주공화국의 시계를 사사롭게 돌려댄 자들의 범죄 행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것이다. 오늘 집회에서 가장 많이 외친 구호를, 가수 이승환이 자신의 대표곡 <덩크슛>에 얹어 불렀다.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 하야하라 하야하라!”

 

처음 집회에 나왔다는 시민이 꽤 많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시원하게 구호로 외치고 맘껏 얘기해도 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거기에 신나는 노래라도 나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일어나 춤추는 젊은이들을 보며 또 놀랐다. 그들도 처음엔 조금 주저했지만 곧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일상에서 누리지 못한 축제와 같은 해방감이 밀려들었다. 한심한 권력에 분노를 표시하는 자리이면서, 뜻을 품고 집회에 참석한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집회를 마치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광화문에서는 자유발언이 이어졌으며 청와대를 향한 행진이 다시 시작되었다. 내자동 교차로에서 행진이 막히자 몇몇 시위 참가자가 차벽을 오르려 했지만, 시민들과 세월호 유가족이 그들을 끌어내려 진정시켰다. 

 

100만 촛불이 만든 공간은 깨끗하고 자유롭고 흥겹고 분명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시인 이문재는 일찍이 ‘촛불’이란 시에서 노래했다. “촛불은 / 언제나 자기 생의 절정을 / 자기 생으로 녹여낸 / 눈물의 한가운데다.” 2016년 11월 12일, 오늘은 우리 생의 어떤 절정이자, 거짓된 시간을 멈추려 최선을 다해 참된 공간을 펼친 하루였다. 아름다웠다.

 

김탁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