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深深閑 樂書

미송 2017. 10. 5. 23:41

 

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

 

 

새삼, 사랑의 실패를 엮어보자 하면 에리히 프롬의 저서만큼 쌓일지 모른다. 

365일 또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방학 중에도) 만났던 그를 통해 처음으로 결별을 경험했을 때, 

또, 그만큼의 시간을 방황하고 났을 때, 그때로부터 시작한 내 사랑 아니 실패의 역사를 회고하자면, 

 

이제는

에리히 프롬의 문장과 철학들이 좀 더 이해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것, 

즉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간주하기보다는 주로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 

또 어떻게 하면 사랑스럽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20대 시절의 나는, 사랑의 뿌리가 말초신경으로부터 비롯된다 여겼던 나는,

이성은 이데아에 있다 맹신했으나 감각은 형이하학에만 머물렀던 나는, 

19세기 아니 빅토리아 왕조시대를 살던 이에게 결혼을 허락했다.  결혼은 사회적 고려의 토대 위에서 결정되었으며,

사랑은 결혼을 한 후에야 발전되는 것이라 말하던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물질적 성공이 높게 평가되는 문화권에서는, 인간의 사랑의 관계가 상품 및 노동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교환방식과 동일한 유형을 따르고 있다 해도 그다지 놀랄 것이 못 된다.

      

 

oh jeong ja, 1965년 4월 8일~

 

사랑에 있어서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지만 동시에 또 둘로 남는다는 역설.

그에게 고립과 고독감을 극복하게 하며, 그를 그 자신이게 하며, 그의 통합성을 보유하게 한다, 사랑은. 

 

 이 멋진 통합이 나의 실천력에 달렸다니.

 

만약 사랑의 제3 구성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어쩌면 책임은 지배 또는 소유욕으로 쉽게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경외심이 아니라 그 어원(語源)을 따른다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존경이란 타인이 있는 그대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관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존경은 착취의 부재를 의미한다.

 

나는 나와 다른 너를 변화시킬 수 없다. 너의 잘못을 고칠 수 없다.  그것은 너의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 그 스스로의 능력에 달렸으니. 절망하지 않는다.

 

완전한 지식에 도달하는 단 하나의 유일한 방법은 사랑의 행위이다. 


왜냐하면 이 행위는 사고를 초월하고 말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합이라는 체험 속으로 대담하게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위와 행동의 차이. 20대에는 말장난으로 슬쩍 내 회색지대를 덮기도 했으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행위이든 행동이든

단 하나의 유일한 선택과 방법,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고.

 

 

 

 

성숙한 사람, 즉 그 자신의 힘을 생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그리고 그가 노력한 것만큼만 기대하는, 또 전지전능한 자아도취적인 꿈을 포기하고

오직 순수하게 생산적인 활동만이 줄 수 있는 내적인 힘에 근거한 겸손을 터득한 사람.

 


사랑이란 활동이며 정신의 힘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필요한 모든 것이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것이 그 스스로 뒤따라간다고 믿는다.

 

이러한 태도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지만 그 기술을 배우는 대신 알맞은 대상을 기다리며, 

그 대상을 발견하면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태도와 비교될 수 있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을 진실하게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세계를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서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은 이만큼에서 멈추자. 사랑에 대한 사유는 현재진행형이니, 이는 곧 내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살아 있는 자의 실패는 거듭될수 있다는 뜻이고, 그러나 과제를 치를 여분의 시간 또한 소유했다는 뜻이니.

 

 *

 

에리히 프롬을 빌어 심심한 낙서를 해 보았다. 사랑의 기술 이후 소유냐 존재냐를 탐독하던 그를

배신하고 떠났던 나를 타이르듯 꾸짖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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