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진이정 <애수의 소야곡>

미송 2017. 12. 10. 17:24


 나혜석羅惠錫 (1896∼1948, 서양화가 소설가)



애수의 소야곡 / 진이정 (1959~1993)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남인수와 고복수의 팬이던 아버지는
내 사춘기의 송창식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나는 또 누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부터 열린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즐기려고 애써 왔다
허나 당신을 이해할 것만 같은
밤이 자주 찾아오기에 나는 두렵다
나는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이해한다 라고 똑 떨어지게 말할 날이
백발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추억이던 왜정 때의 카페와 나의 카페는
그 철자만이 일치할 뿐,
그러나 그런 중첩마저 요즘의 내겐 소중히 여겨진다
아버지의 카바레와 나의 재즈 바는
그 무대만이 함께 휘황할 뿐,
그러나 나는 사교춤을 출 줄 알았던
당신의 바람기마저 존중하게 되었다


어쩌다 알게 되었지만, <바>라는 건 딱딱한 막대기일 따름,
난 그 막대기 너머 저어 피안으로 가기를 꿈꾸어왔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당신의 꿈은 알지 못한다

우린 색소폰의 흐느적임과 장밋빛 무대를 공유할 뿐,
나는 그의 꿈을 끝내 넘겨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어
꿈이 빠져버린 그의 애창곡이나 듣고 있을 뿐,


허나 난 온몸으로 아,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아
남인수와 송창식을 서둘러 화해시킬 길을 찾는다
아니 억지로, 억지로 화해시키려 한다


가부장의 달빛만 괴괴한, 이 이승의 쓸쓸한 밤에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왜 이리 두려운 일인지
잃어버린 그의 꿈이 왜 이리 버거운 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