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냐냐난다<위빠사나 명상의 열쇠 빠빤차>

미송 2018. 4. 25. 17:01





"표명하지 않는 의식, 무한하며 모든 곳에 빛을 발하는,

여기, 땅, 불, 물, 그리고 바람의 뿌리를 찾을 수 없네.

여기, 다시, 길고 짧은, 섬세하고 거친, 기쁘고 슬픈

그리고 정신과 물질 그 어떤 예외도 없이 모두 잘렸네.

의식이 소멸되고 있을 때 이 모든 것들은 그 안에서 흔적 없이

춘다."


한 승려가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에 부딪친다. "4대원소인 땅, 물, 불, 바람은 어디에서 모두 멈추는가?

그리고 그는 신들과 범천들로부터 적절한 대답을 찾기 위해 신통력을 동원해 천상으로 간다. 그러나 어떤 신통한 대답도 얻지 못한 그는 결국 붓다에게 간다. 붓다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므로 다시 만들라고 말이다. 이렇게.


"여기, 땅, 물, 불, 바람

길고 짧은, 섬세하고 거친, 기쁘고 슬픈

이들은 어디에서 그 근거가 사라지는가?

정신과 물질은 어디에서

흔적 없이 소멸되는가?"


붓다의 대답에 의하면 땅, 물, 불, 바람 등은 그 근거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길고 짧은, 섬세하고 거친, 기쁘고 슬픈 것들, 정신과 물질은 무한하고 사방으로 빛을 발하는 아무것도 '표명하지 않는 의식' 속에서 완전히 절멸된다. (중략)


정신과 물질은 명상을 통해 완전히 이해되면서 완전히 절멸된다. 이는 위의 질문을 한 승려가 생각하듯이, 4대 원소가 모두 함께 어딘가에서(물질적 요소들로서의 '나의 존재'라는 일반적인 개념에서 발생한)소멸될 수 있다는 데 대한 개념을 교정하는 것이다.


붓다가 원래의 질문을 수정한 것과 결론을 내리는 마지막 줄은 이러한 잘못된 개념을 격파하고, 물질인 4대원소가 마음을 연하여 조건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중략)


어둠, 즉 세상의 만들어진 개념들은 빛, 즉 지혜로는 절대로 묘사될 수도 표명될 수도 없다. 아라한은 개념들을 깨달음의 통찰력으로 관통하여(seeing through)본다. 세속의 범부에게 개념들은 인지의 대상이, 인지의 초점에 들어와 있는(그가 보고 있는) 어떤 것이 되지만, 아라한에게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의 통찰 속에서 그 개념들이 지닌 농도만큼 투명해진다. 개념들이 만들어놓은 한계는 개념들이 드리우는 암흑과 그늘의 어둠들과 함께 지혜의 광채 앞에 굴복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가 개념들을 관통해 보기 때문에 명상하는 성현의 무집착의 시선에는, 범부들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소위 말하는 집중의 초점인 대상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한'이라는 말의 의미심장함을 보여준다. 그 시선은 의식적이지도 무의식적이지도 않은 것이며,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며, 고정된 것도 아니고 고정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수평선 없는 대양을 바라보듯이. 


pp 92~94 타이핑 채란



빠빤차(papanaca)

여기에 눈이 있고, 저기에 대상이 있을 때 거기에 보는 의식이 일어난다.
()과 대상() 그리고 의식(), 이 세 가지의 만남을 감각의 일어남 (sensory impingement:)이라 한다.

이 감각의 일어남 때문에 느낌()이 일어난다 무엇인가를 느끼면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what one feels one perceives)

그리고 인식한 그것에 대해서 사색(vitakka)한다. (what one perceives, one reasons about) 인식되어진 그것에 대해(자기중심적으로) 사색하면서 빠빤차로 넘어 간다. (what one reasons about, one turns into papanca)

빠빤차로 넘어가면서 개념(concept) 또는 (객관적 대상과는 차이가 있는 자기중심적인) 관념이 형성되어진다.

바로 이 관념이 이제부터는 그 사람을 움직이고 족쇄 지운다. 이것은 보이는 대상이 인식되어지는 상태에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 속에서 사람을 구속하고 한계지운다.

오 비구들이여! 만일, 확산으로 특징 지워지며 결국에는 사람을 부리는 개념에, 사람이 갈망도 일으키지 않고, 주장도 하지 않으며, 집착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애착의 습성, 견해, 자만심, 무지, 그리고 생성에 대한 집착의 종지부이다.

바로 그것이 막대기를 잡고 무기를 택하고 싸우고 주장하고 논박하고 고발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을 하는 일들에 마지막을 고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모든 악행들이 어떤 잔여물 없이 그 종말에 다다르는 것이다.

-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