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도반

미송 2018. 9. 23. 17:33












에곤실레

 

뉴스를 읽지 말아야지 했으나 그 날 아침에도 뉴스를 보았다. 고공낙상. 죽음. 가족. 단어들을 뭉쳐 ‘죽음이 있었군요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으나 눈사람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맹물로 얼굴을 헹구면서, 늙어간다는 것은 눈물주머니가 말라가는 일, 자질구레한 명찰들이 자연스레 떨어져 나가는 일, 자신을 기꺼이 포옹할 수 있어 좋은 시절이라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를 강아지만큼도 안아주지 않아. 질투를 하면 조금 껴안아 주는 척 하지. 간밤 칭얼거림이었을까. 중언부언 잠꼬대였을까.

 

모닝커피를 마시며 에곤실레의 그림을 감상하다 새삼 화가의 생몰연대를 찾아보았다. 타차를 치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그 순간에는 적절한 기도문이라도 떠오를 것 같았다.

 


  

에리히프롬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것즉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간주하기 보다는 주로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또 어떻게 하면 사랑스럽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에리히프롬

 

    20대에 에리히프롬을 읽었다. 그러나 에리히프롬의 사랑론은 겉돌기만 하였다. 결혼은 사회적 고려의 토대 위에서 결정되었으며 사랑은 결혼을 한 후에야 발전되는 것이라는 말에 대한 분별력조차 부재하였던 시절이었다.


   타인이 먼저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것에 얼만큼 관심을 가졌으며 타인의 개성을 얼만큼 존중하며 느낄 줄 알았던가.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서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론이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까닭은, 그 실천력에 대한 노력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쉼보르스카

 

어쩌다보니로 운을 떼는 쉼보르스카의 시 한편을 따라가다 보면 어린애가 되는 기분, 할머니 손을 꼬옥 잡고 거니는 기분이 들곤 하였다. 가만히 귀 기울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말. 분분한 꽃잎처럼 현란하지 않아도 좋은 말. 예쁜 조약돌 고르듯나비를 쫓듯 미지의 언어를 찾아 거닐었을 그녀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유 없이 불안하고 자신이 초라하게 비치는 날, 그녀의 원근법을 쓴 풍경들을 대하다 보면괜찮아 난 언제나 네 편이야 라는 메아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크리스토포로 스코핀티


그림 속 두 마리 사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슴을 둘러싼 어둠이란 빛깔, 주변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듯 보이는 도구들. 진열의 아이디어와 배색의 재료에 따라 자연은 돋보였다. 사슴을 직접 그렸다고 말하는 대신 그림의 질료가 되고 싶다고 말할 것 같은 화가

 

스스로를 고립시킨 듯 보이는 소재들이 저마다 웃고 있었다. 그의 그림 속 주인공들, 그 환한 주인공들을 데리고 온 짙은 어둠의 행로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며, 별 근거도 없는 추측과 상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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