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보를레르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미송 2022. 5. 2. 12:58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 보를레르

 

 

인생은 병원

환자들은 저마다 침대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사람은 같은 값이면 난로 옆에서 신음하기를 바라고

또 어떤 사람은 창가 자리로 가면 나으리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지금 내가 있지 않은 곳에 가면 언제나 행복할 것 같아 보인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내가 내 넋과 끊임없이 논의하는 문제의 하나이다

 

말해보라 내 넋이여 식어빠진 가엾은 넋이여

리스본에 가서 살면 어떻겠느냐

거기는 틀림없이 따뜻할 것이고 너는 도마뱀처럼 다시 기운이 날 것이다

그 도시는 물가에 있다 도시는 대리석으로 세워졌고 주민은 식물을 싫어하여

나무는 모조리 뽑아버린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네 취향에 맞는 풍경이 아닌가
이 풍경을 이루는 것은 햇빛과 광물 그리고 그것을 비춰주는 액체뿐이다


내 넋은 대답하지 않는다

 

너는 움직이는 걸 바라보면서 휴식하기를 그토록 좋아하니까 저 복 받은 땅 네덜란드에 가서 살지 않겠나

네가 박물관에서 그 그림을 보고 자주 탄성하던 그 나라에 가면 너도 아마 마음이 즐거우리라
로테르담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돛대의 숲을 좋아하고

집 아래 매어 놓은 배들을 좋아하는데

내 넋은 여전히 말이 없다

어쩌면 바다비아가 더욱 네 마음에 들지도 몰라

더구나 거기에 가면 열대의 아름다움과 섞인 유럽의 정신을 발견할 거야

한마디도 없다 내 넋은 죽었는가

 

결국 너는 네 고민 속에서만 즐거울 정도로 허탈증에 빠져있는가

그렇다면 죽음과 닮아 있는 나라 쪽으로 도망쳐 가자
필요한 일은 내가 맡아서 하마, 가엾은 넋이여

짐을 꾸려 토르네오로 떠나자 어쩌면 더욱 멀리라도 가자꾸나
발틱 해의 맨 끝까지라도 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더욱 더 멀리 떠나자

북극에 가서 살자꾸나 거기에 태양은 비스듬하게만 땅을 비추지 않고

낮과 밤의 느린 교대는 변화를 없애고 허무의 반쪽인 단조로움을 북돋워 준다

거기서 우리는 오래도록 어둠 속에서 유영할 수 있을 것이고
그동안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극광은 때때로 우리에게 지옥 불꽃의 반사광처럼

장밋빛 햇살 다발을 보내 주리라

마침내 내 넋은 폭발한다 그리고 슬기롭게 이렇게 외친다

 

어느 곳이라도 좋다 어느 곳이라도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20171101-20220502

 

 

 

사람들은 참 여러가지 재주를 갖고 있다. 동일한 환경에서도 지옥을 만드는 재주와 천국을 만드는 재주. 나는 생각했다. 할 수 있다면 천국을 만드는 재주를 기르자.

 

주제는 권태이나 어투는 싫증나지 않는 보를레르, 보를레르의 시편들. 인생은 병원이니깐 그 범주에 든 우리는 모두 환자란 말인가. 외투를 받아주듯 넋과의 논의를 시작한 화자의 진지한 어조. 그러나 프러포즈 끝에 폭발한다. 위트로 권태를 훅 날린다. 돌연 불친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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