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김경주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外

미송 2020. 12. 27. 14:21

 

정교한 횡설수설

 

구름에 대해 나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구름의 너머에 대해 나는 입술이 없는 사람이다 구름의 이쪽에 대해 나는 수천 개의 입술을 비우고 단 하나의 입술로 포개지는 구름에 대해 나는 입술을 다무는 쪽이다. 구름의 저쪽을 보고 발들이 붓는 새들의 둥긂이나 둥긂 보고 나는 미음을 찾는 술어, 술을 만드는 사람의 입맛, 나는 오랜 동안 나를 뭉친 손의 살결만 기억하고 사는 눈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구름에 대해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수천 개의 물기로 만든 생식기, 가령, 내 생식기로 유인하고 싶어지는 창백한 펭귄들, 밤의 낱말들, 정교한 횡설수설이 있다 하지만 천년 전으로 바람이 눈을 감을 때 배반은 인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서사이고 샘은 벌레에게 가장 어울리는 무덤이다 구름이 걷히면

 

 

*횡설수설 앞에 정교하다는 말을 붙이는 것은 적절치가 않다. 시치미를 떼지만 결국 구름으로 끝을 맺는, 혀가 꼬인 듯 술에 취한 듯, 시 흐름에선 가스똥바슐라르 냄새가 난다. 주객전도의 상관물들과 틀에 넣어지지 않는 전위적 화자. 구름이 걷히면 화자는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시차의 건축

 

오르골이 처음 만들어질 때 유리통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은 음악에 고이는 태풍이 되고

오르골에 조금씩 금이 갈 때 유리통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은 그 음악을 태풍으로 만든다

 

립파이를 먹고 싶을 때에는 립파이를 먹고

죽은 시계를 차고 여행 가고 싶을 때는 죽은 시계를 차고 여행 간다

어떤 여행지에서는 살구와 자두를 아직 구별하지 못한다

 

오전엔 박하 향이 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끄러 가는 소방관을 보았고

오후엔 소방관이 박하사탕처럼 건물 속에서 녹는다

 

수업 시간엔 세계지도를 펴 놓고 먼 도시들의 위도와 경도를 외웠는데

수업이 끝나면 독사를 잡으러 가기 위해 검은 봉지를 주우러 다녔다

 

밤엔 나무에 몰래 기어올라 앉아 있는 느낌보다 나무에서 떨어진 느낌으로 책을 본다

새벽엔 종이비행기보다 종이배를 더 많이 접었다고 고백하는 느낌, 종이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봐 네 곁에 난 오래 앉아 있었다구내가 공책에 갈겨쓴 아주 많은 글자들이 밤에 지우개 속으로 모두 들어가 사라진 날의 느낌

 

인도 향을 선물받은 날 다리를 좀 절었고 시차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집에서만 지내는데도 망각이 필요하다는 사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데에도 기억은 수십 종의 식물을 달고 간다 어쩐지 너의 여행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많은 종()의 연필이 필요할 것 같아서 흑마를 탈까? 백마를 탈까? 청기를 들까? 백기를 들까? 여행은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침묵의 차이 같아.....

 

 

*말놀이 끝에 탄생하는 명언. 여행은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침묵의 차이 같아. 공감.

 

 

 

거미는 자신이 지었던 집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늘 양말이 다 마르기 전에 떠난 구름의 일부처럼

허공은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눈을 가장 먼 바람 가운데 찾는다

 

생이란 자신의 눈을 몸 안으로 안내하다 가는 일이라는 생각

그건 내 눈이 안내하고 있는 유례없는 무덤의 일부, 거미들이 묻혀 있는

허공에 가 본 적이 있다

 

초록색 크레파스를 처음 써 본 날엔 서랍 속에서 젖은 털을 말리는 거미의 눈을 그렸고

초록색 크레파스에서 처음 검은 물이 흘러내리는 날엔 물속에서 떠오른 서랍을 안아

방으로 들어왔다

 

늘 양말이 다 마르기 전에 떠난 구름의 일부처럼

그건 내 처음 수염의 냄새, 일기의 가장 마지막 장을 써놓고 내 눈과 닮은 색을 찾는

날의 일이고 구름 냄새만 나는 책장을 물속에 담그고 넘기던 밤의 눈에서 태어나는 거미들의 기지개다

 

거미는 자신이 지었던 집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건 허공이 안내한 내 눈의 쓸쓸한 유례도 되겠다 초록(超錄)

 

 

*생이란 자신의 눈을 몸 안으로 안내하다 가는 일이라는 생각. 자폐의 기질.

 첫 기록을 찾아 헤매던 쓸쓸한 유례가 얼만큼 있을까, 내 안에는.

 

 

 

입김으로 쓴 문장

 

겨울은 한 문장으로 하나의 다짐만 하기로 하고 하나의 문장으로

한 개의 물방울만 출가시킨다

 

겨울에 태어난 새들이 지붕 위로 날아와 스웨터를 벗고 있는 아이처럼 팔을 퍼득거린다

그 새가 다시 돌아올 때 즈음 내 이름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문장을 하다 더 짓는다

 

만날 때마다 지도에 없는 마을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안다

내가 지도 위에 내 눈을 그려 준 적이 있다고 곧 그 눈이 돌아온다고 말했을 때

그는 생략된 문장에 깃들어 살고 있다는 환영에 대해 말해 주었다

 

겨울은 손바닥 안에서 이상한 물소리가 들려 오빠야 빠진 이들을 엄마에게 보여 주면 안 돼 그걸 또 엄마가 물고 가출할 거야 창틈으로 스티로폼을 붙이고 겨울엔 방에 둘러앉아 가족의 손바닥을 펴고 서로 닮은 손금만 찾아가 본다 그렇지만 눈물이 나서 내 손바닥에 파인

길들은 내가 일생 동안 볼 수 있는 새들의 행로라고만 믿는다

 

연민이란 인간은 결국 자신과 가장 닮은 허구를 타인 쪽으로 열고 들어간다는 거다

그건 늘 죽은 물에 내 눈이 가득 차는 일이어서 그 허구로 깊어진 시선은 자신의 문장을

단 한 번 발음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안다

 

타관에선 창문을 열어 두고 잠들지 못한다

 

많은 문장을 매장하고 있는 창문일수록, 인간의 입김이 진하게 묻어 있는 것처럼

 

*유리처럼 차갑고 차갑다 못해 괴이할 정도로 적요한 눈(目)과 눈(雪). 그 눈길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만나게 되는 창문. 울다가 웃게 되는 미지인가 현실인가 그 창문. 진한 입김의 따스한 문장들.

 

 

시차의 건축2

 

내 현기증이 조금 잘 팔리는 이유는 졸음과의 싸움같은 것인데

너의 수증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내가 모르는 마을 속에서 언제나 네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거야 과민한 날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것처럼, 아침에 손톱을 자르고 저녁에 손톱을 잃어버렸다고 우는 아이처럼, 부모의 섹스를 처음 훔쳐본 날의 몽연함처럼 나는 <붉은 책 암송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온 엄마를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유산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대신 엄마의 멀미를 다 보여 주세요

 

누군가 내게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넌 고향을 꽃다발처럼 평생 벽에 거꾸로 말릴 생각이니?’ 누군가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할 날이 올 것이다 주머니를 뒤집으니 강아지 사료 한 알이 나옵니다

 

유리창에 입김으로 그려 놓은 건축들이 흘러내린다

그건 시차의 눈을 달래는 머릿속의 가장 아름다운 물방울들

 

배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스무 살도 안 돼서 양미간을 찌푸리고 나쁜 감정에 진학하기 위해 나는 침묵의 보병이 되었다 시는 그곳을 오고 가는 내 다양한 인종(人種)이다 꽃의 이름보다 꽃 냄새를 기억하려는 사람의 눈을 믿어 본다

 

 

*이상(李箱)도 이카루스도 외눈박이 물고기도 눈알도 아닌 자. 모든 조사들을 무시하고 말아 들어가다 잠 깨는 자. 신선하단 것인지, 신맛이란 것인지.

 

 

 

모래의 순장

 

모래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움직이고 있다

멈추어 있는 모래를 본 적이 없다

직경 0.8밀리미터의 이 사각의 유동이란

무섭도록 완강하고 부드러운 것이어서

몇만 년 동안 가만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장 밀도 높은 이동을 하고 있다

모래는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다

자신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는 유력으로

모든 체형을 흡수하고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거미가 남겨 놓은 파리의 다리 하나까지도 노린다

모래가 지나간 곳에서는 무덤 냄새가 난다

모래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어간 손을 보면

부드러움이 얼마나 공포일 수 있는지

이처럼 달콤한 애무 앞에서 저항이란

인간이 이해할 수 없었던 가장 아름다운 예의일지 모른다

모래는 순장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모래는 스스로의 무덤을 갖지 못해

다른 것들의 몸을 빌려 자신을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만 년 전부터 떠들고 있는 자신의 무덤을 찾기 위해

자신의 유랑 속으로 끝도 없이 다른 것들을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

 

한번도 자신의 무덤을 가져 보지 못한 모래들이

무수한 무덤을 만들어 내는 노래는 무섭고 서글픈 동요에 가깝다

 

이 별은 그 모래의 무덤들을 기록하는 시간들과

그 모래에 잠겨 허우적거리던 눈이 큰 곤충들로 구분된다

때로 기이한 문장에도 이런 알 수 없는 모래가 흐른다

문장 속으로 모래들이 차오르고

이윽고 두 눈이 모래 속으로 잠겨 들어간다

모래가 빠져나갈 때가 되면

모래의 신체로 변해 가는 언어 속에서

몇만 년 전 자신의 눈이 되었어야 했을 생몰을 발굴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모래 속에 잠긴 손을 꺼내 이렇게 다시 쓴다

 

인간을 닮은 문장은 수의를 여러 번 바꾸었지만

모래를 닮은 문장은 모든 것들에게 스스로 수의를 입힌다

 

운이 좋으면 삶은, 문장의 수의를 입은 채 흘러가는

여러 개의 유역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장은 차곡차곡 자신에게 흘러든 모든 언어들과 함께

순장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기이한 균형으로

나른하게...

사라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력 끝판왕으로 시작했으나 뒤로 갈수록 자분자분한 태도가 느껴진다. 말이야 막걸리야 했다가도 이야기꾼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독자의 반응. 

 

 

 

이장(移葬)

 

1

오로라를 생각할 때는 오로라만 생각한다 겨울에 이사를 해야 할 때는 이사만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겨울에 이장을 하기 위해 무덤을 파고 있는 인부들의 나이는 예측할 수 없다

할아버지는 실뭉치에 파묻힌 바늘처럼 역방향으로만 누워 있었는데 다리는 왜 나무뿌리들로 모두 변해 버렸을까 겨울은 삽날에 닿는 모든 것이 밤의 방향을 가졌고 누워서 떠올린 방향은 모두 밤에 이사하는 사람들이 싸는 그릇의 소리로 잠든다 그릇에 나비를 담아 두고 접시를 덮어 놓고 하던 이사를 오래 기억하면 이장과 이사라는 것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 생긴다

 

2

혼자 사는 내가 혼자 떨어진 단추를 방에 앉아 달 때, 누워 있다가 바늘 끝에 가만히 입술을 대 볼 때, 엄마의 겨드랑이 냄새만 그리웠고 교실에 앉아 눈금에 대해 처음 배울 때 그건 나비를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찰흙으로 빚어 놓은 무덤들이 교실 뒤에서 다 마르도록 그 무덤 속을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건, 상여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속에 들어간 사람의 눈으로 나비가 봄날 햇볕에 뱉어 놓은 어금니 같은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3

오로라를 생각할 때는 오로라만 생각하지만 내가 바늘 끝에 침을 묻히고 물은 것 중엔 이사 때마다 잃어버린 빗이나 바늘에 대한 것도 있지만, 어머니는 이장을 할 때마다 바늘에 침을 묻혀 날을 고르고 나는 이사 때마다 이장의 방식으로 눕는 법을 익히곤 한다

 

*눈알 흰눈 구름 이빨 무덤 별 거미 새 등등. 즐겨 쓴 단어들을 나열해 본다. 왜 같은 언어를 반복하였을까, 물어서 뭐하나. 이사하는 날 엄마는 바늘에 침을 묻혀 날을 고르고 왜 그는 이장의 방식으로 눕는 법을 익히곤 했을까, 물어서 뭐하나. 이사든 이장이든 무덤이든 창문이든 같은 것이라 여기겠다는데. 무덤과 내내 내외할 수 밖에 없다는데. 

 

 

 

우회(迂回)

 

어떤 성엔 문마다 계단이 그려져 있고

어떤 다락으로 가는 길엔 계단마다 문이 그려져 있다.

 

 

오늘 잡는 고기는 오늘 먹는다

 

그때 그 서정은 멀리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이쪽을 바라보던 어느 소녀의 웃음

 

그때 그 정적은 처음 악수를 해 보았을 때 불쾌감 같은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닌 눈금으로 시를 쓴다

 

구름은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고 서로 발 크기를 대 보는

 

연인의 무심한 표정처럼 흘러간다

 

그때 그 경주마는 경기 전 기수에게 아픈 입을 열어 보여 주었지만

 

그때 경마 중계 아나운서는 1번 마

 

쾌지나 칭칭’ ‘쾌지나 칭칭을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약봉지를 잃어버린 알약은 용도를 알 수 없고

유통기한이 지난 알약은 새로운 약봉지가 필요하다

 

이 시간 교통방송은 모든 도로를 우회하라 한다

 

*충만했던 음울이 위트로 바뀌는 찰라, 그 찰라의 미소가 나를 살게 하리란 기대.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시 때문에 죽고 살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자꾸 엄마는 시를 놓으라고 울고 나는 고양이를 울린다

자꾸 시 가지고 생활을 반성하는 놈 좀 없었으면 하는데

시 때문에 30분을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참혹해지고

시 한 편 발표하고 나면

몰래 거리에 쓰레기 봉지를 두고 온 기분이 든다

 

시 때문에 살 일 좀 생겼으면 하는데

사형수가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뒤따라오는 간수들에게 갑자기

자꾸 밀지 말하고 울먹이는 광경처럼

 

밀지도 않는데 떠밀리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시만 짜서 이대로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

 

시 때문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오래 시 안 쓰다가 다시 쓴다는 놈 생각 좀 하고

다시 쓴다는 놈치고

세상의 속물 다 겪은 후 오만하게 돌아온 것 못 봤다

그게 시의 구원이라면

시 때문에 형편없는 연애라도 그만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시 때문에 죽어서도 까불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따지고 볼 것도 없이 신파란

내 쪽에서 먼저 부러우면 지는 법이다

이기고 지고 살 일도 아닌데 시 때문에

이름 없는 무덤 옆에 가서 잠도 자 보았다

 

시 때문에 울먹이는 일 좀 없었으면 하는데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시를 생각하자면 거리에 쓰레기 봉지를 두고 온 기분. 아직도 공감이 간다. 이후, 주룩주룩 내리는 새들의 하강 비(雨). 이럴 땐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당췌 모르겠어서. 횡설수설.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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