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中

미송 2021. 8. 10. 12:47

 

 

저는 금화올시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오스만 제국에서 통용되는 화폐 중 가장 단위가 높은 22캐럿짜리 금화올시다. 제 몸에는 세계의 피난처이신 술탄의 영광스런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습지요. 장례식으로 인해 슬픔에 잠긴 이 아름다운 커피숍에서 술탄의 위대한 세밀화가들 중 한 명인 황새가 이 늦은 밤에 저를 그렸기 때문에 재 몸 위에 금박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그건 당신들의 상상에 맡기지요. 당신들은 지금 당신들 앞에 있는 저의 모습을 보고 계시지만 실제로 저는 위대한 장인인 세밀화가 황새의 쌈지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가 일어서서 쌈지에서 저를 꺼내 당신들에게 보여드리고 있군요. 대가 예술가 선생님들 손님 당신들 안녕하세요. 저의 반짝거리는 광체에 눈들이 커지시는 구먼요. 기름등잔의 불빛이 제 몸을 비추자 흥분까지 하면서 제 마지막 주인이신 황새를 부러워들 하시는군요. 그 심정 잘 이해합니다. 사실 세밀화가의 재능을 판단하는 척도로는 제가 가장 확실합지요.

 

장인 황새는 저처럼 생긴 금화를 최근 3개월간 정확히 47개나 벌었습죠. 우리는 모두 이 쌈지 속에 있습니다. 장인 황새는 우리를 숨기려 하지 않을뿐더러, 이스탄불의 세밀화가들 가운데 자신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제가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하나의 척도로서 받아들여지고 불필요한 논쟁을 불식시킨다는 것을 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때, 멍청한 세밀화가들은 매일 저녁 아닐세 자네가 더 재주가 있어 아니지 색을 더 잘 고르는 사람은 나라고, 나무는 내가 제일 잘 그리지, 나보다 더 구름을 잘 그리는 사람은 없어, 등등 떠들어대는 것으로도 모자라 매일 밤 서로 치고받고 싸워서 이가 부러지기도 했습지요. 그러나 이젠 저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면서 화원에는 질서가 생기고 조화가 이루어졌습죠.그야말로 해라트 출신의 옛 대가들에게 어울리는 분위기가 된 겁니다.

 

이런 조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저 하나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 것들을 한번 헤아려볼까요. 젊고 아름다운 하녀의 50분의 1인 다리 한쪽, 가장자리를 상감 세공으로 장식한 호두나무로 테를 두른 이발소 거울, 90악체 어치의 은으로 꽃잎과 햇살 모양이 장식되어 있고 칠이 잘 된 서랍장 1개, 신선한 빵 120개, 세 사람분의 묘지와 관, 은팔찌 1개, 말 한 필의 10분의 1, 늙고 뚱뚱한 하녀의 다리 양쪽, 새끼 물소 1마리, 품질 좋은 중국산 접시 2개, 술탄의 화원에 있는 페르시아 세밀화가 중 타브리즈 사람인 데르비쉬 메흐멧과 그 외 비슷한 대부분의 화가들의 봉급 1개월분, 사냥용 매 1마리(새장도 포함해서요) 파나요트산 포도주 10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소년 가운데 한 명인 마흐뭇과 함께할 수 있는 천국 같은 1시간, 그 밖에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가능성들....

 

여기 오기 전에 저는 한때 가난한 구두 견습공의 더러운 양말 속에서 열흘을 보냈습지요. 그 불쌍한 사내는 매일 밤 잠들기 전까지 저를 가지고 살 수 있을 것들의 목록을 끝없이 헤아리곤 했답니다. 자장가처럼 달콤한 그 긴 시행들을 들을면서 저는 이 지상에 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장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장소라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제가 여기 오기 전까지 겪은 것들로 말하자면 책 몇권은 족히 쓰고도 남을 겁니다. 당신들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신다면, 그리고 황새 선생님도 언짢지 않으시다면 저의 비밀을 하나 가르쳐 드리지요.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시겠소?

 

좋습니다. 고백하지요. 저는 쳄베르타시 조폐국에서 발행된 진짜 22캐럿짜리 오스만 제국 금화가 아니올시다. 그렇습니다. 저는 위조 화폐입니다. 베네치아에서 순도 낮은 금으로 만들어 들여와서 오스만 제국의 금이라고 유통시켰습지요. 당신들께서 저를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베네치아에 있는 주전소에서 알게 된 것인데, 벌써 몇 년째 이런 짓을 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교도 베네치아인들이 동양에서 가져와 유통시킨 순도 낮은 금화는 같은 주전소에서 만든 베네치아 플로린들이었습지요. 물건 위에 적혀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 논리에 존경을 표하는 오스만 제국은 가짜 금화에 새겨진 것이 진짜와 똑같이 생겼기만 하면 함유된 금의 양에는 신경쓰지 않습지요. 그래서 가짜 금화가 이스탄불 전체에 쫙 깔리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금 함량이 적고 구리가 많이 들어간 위조 동전은 진짜보다 더 딱딱하다는 걸 알고 이로 깨물어보기 시작했습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만일 당신들이 사랑의 욕망으로 활활 타올라 세상 모든 이들의 연인이자 지상 최고의 미소년인 마흐뭇에게 뛰어갔다고 칩시다. 마흐뭇은 당신들이 내민 동전을 이빨로 깨물어 보고 순도가 낮다고 판단되면, 당신들을 한 시간이 아니라 반 시간만 천국으로 데려다 주겠지요. 베네치아의 이교도들은 자신들의 화폐가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자 그렇다면 어차피 눈치채지 못할테니 오스만 제국의 금화도 가짜로 만들어 보기로 했습죠.

 

자, 여기서 당신들께서 한 가지 괴상한 점에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베네치아 이교도인들은 그림을 그릴 때는 자신들이 그리는 대상을 그림이 아니라 진짜로 만들면서 어찌된 일인지 돈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베네치아에서 철제 궤짝이 담겨 있는 배를 탔습지요,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이스탄불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환전소 주인의 마늘 냄새 나는 입속에 있더란 말이죠. 잠시 후, 세상 물정 모르는 촌뜨기가 금화를 팔려고 환전소로 들어옵니다. 사기꾼 같은 환전소 주인은 당신이 갖고 있는 금화가 진짜인지 알아보려면 깨물어 봐야 하니 이리 주시오, 하고는 촌뜨기의 금화를 받아 입속에 넣었지요.

 

환전소 주인의 입속에서 만난 촌뜨기의 금화는 오스만 제국 술탄의 진짜 금화였더란 말이지요. 그 금화는 절 보자마자 자넨 가짜군 하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놈이 너무 뻐기면서 말하는 바람에 자존심이 상한 저는 거짓말을 했습죠. 진짜 가짜는 댁이요 라고요. 그 사이 바깥에서는 진짜 금화의 주인인 촌뜨기가 자랑스럽게 말했습지요.

 

내 금화는 절대 가짜일 리가 없고 나는 이걸 20년 전에 땅속에 묻었단 말이오. 그리고 그 시절엔 요즘 같은 못된 짓거리를 하지 않았다오.

 

과연 이제 무슨 상황이 벌어질까 한창 궁금해지려는데 환전소 주인의 입속에서 촌뜨기의 금화 대신 저를 꺼내 건네며 말했지요. 자 보슈 댁이 갖고 있던 금화요. 사악한 베네치아 이교도인들의 가짜 돈을 가지고 오다니, 부끄러운 줄이나 아시오. 그는 촌뜨기를 꾸짖기까지 하더란 말이지요. 촌뜨기는 아무 말 못하고 저를 받아들고 나갔습죠. 그리고 다른 환전소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듣자 촌뜨기는 그만 마음이 상해 버렸고 순도 낮은 금화 값인 90악체를 받고 저를 팔았습지요. 이렇게 해서 지난 7년간 끊임없이 주인이 바뀌었던 저의 여행이 시작되었지요.

 

영리한 돈이 다들 그렇듯, 저 역시 지난 시간 대부분을 이스탄불의 호주머니에서 호주머니로 이 전대에서 저 쌈지로 돌아다니며 보냈습죠. 그 점에 대해서 전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답니다. 한번 악몽 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항아리에 담겨져 어는 정원 돌밑에서 몇 년 동안 묻혀 있었던 적이 있습지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지루한 시기는 빨리 지나갔어요. 저를 손에 넣은 사람들 대부분은, 특히 제가 가짜 돈이라는 것을 알면 한시라도 빨리 제게서 벗어나려고 했습죠. 그리고 제가 가짜란 걸 알면서도 절 사려는 어수룩한 자에게 경고하는 사람은 이제껏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120악체에 산 사람들은 자신이 속은 것을 알자마자, 또 다른 사람을 속여서 저한테서 벗어날때까지 분노와 초조함 속에서 가슴을 치더군요. 이 위험한 시간동안 그들은 남을 속이려고 계속 시도하지만 결국 성급함과 분노 때문에 항상 실패하곤 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속인 그 망할놈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욕설을 퍼붓더군요.

 

지난 7년 동안 저는 이스탄불에서 580명의 손을 거쳤습지요. 어염집 상점 시장 이슬람 사원 교회 유태교 예배당 등등 안 가 본 곳이 없답니다. 돌아다니면 돌아다닐수록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저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전설이 만들어지고 거짓말을 해대는 걸 보았습죠. 사람들은 이제 저 말고는 다른 무엇도 가치가 없게 되었으며 슬프게도 제가 이 세상의 토대로, 저로는 무엇이든 살 수 있고 그리고 제가 가혹하다고 말하면서 제 면전에 대고 저의 더러움과 저속함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했지요. 제가 가짜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분노에 치를 떨며 더 험악한 말들을 내뱉더군요. 저의 진짜 가치가 떨어질수록 비유의 가치는 더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싸늘한 비유들과 생각 없이 던지는 욕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미치도록 좋아했습니다. 요즘처럼 사랑 없는 시대에 저에게 바쳐지는 그토록 진실하고 풍부한 사랑은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거리와 거리 마을과 마을 이스탄불 곳곳을 다 보았답니다. 유태인을 비롯해서 아브하즈인 페르시아인 베그렐인 등등 온갖 종족의 손을 보았지요. 딱 한 번 마니사로 가즈는 에디르네인 호자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이스탄불 밖으로 나간 적이 있습죠. 도적들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고 돈이 아니면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자 가엾은 호자는 허둥대며 나를 똥구멍 속에다 밀어 넣었습죠. 그곳은 마늘을 좋아하던 환전소 주인의 입속보다 더 고약한 냄새가 났지요. 그런데 다음 순간 그보다 더 고약한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도적들이 이번에는 돈이 아니면 목숨을 내놔라 하지 않고 정조가 아니면 목숨을 내놔라 하더니 호자의 등 뒤로 줄을 서는게 아니겠습니까. 그 작은 구명 속에서 제가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는 세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저는 이스탄불 밖으로 나가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저는 항상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가씨들은 자신의 이상형 남편이나 되는 것처럼 제게 입맞춤했고 벨벳 쌈지나 베개밑, 혹은 커다란 젖가슴 사이 골짜기나 팬티 속에 저를 숨겨 놓고는 제가 거기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잠결에도 더듬어보곤 했습지죠. 목욕탕 난로가에 장화 속에 좋은 향기가 나는 향수 가게의 작은 병 바닥에 요리사의 콩 자루 속 비밀스런 호주머니에 숨겨 두곤 했습니다.

 

낙타 가죽으로 만든 벨트, 알록달록한 이집트산 안감, 안을 비단으로 댄 신발. 형형색색의 헐렁한 바지 속 비밀스러운 곳에 담겨 이스탄불 곳곳을 돌아다녔습지요. 시계 수리공 페트로씨는 저를 자명종 시계 속에 그리스인 구멍가게 주인은 치즈속에 넣어 숨겼습니다. 또한 도장 귀금속 그리고 열쇠와 함께 비단에 돌돌 말려 굴뚝 한 아궁이 속 창문틀 밑 거친 짚으로 만든 방석 사이 서랍과 궤짝의 칸막이 속에 숨어 있기도 했고요.

 

밥상에서 일어나 제가 아직도 잘 감춰져 있나 보려고 숨겨둔 곳을 들춰보는 아버지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저를 입에 넣고 빠는 여자들. 계속 제 냄새를 맡으며 콧구멍에 넣으려는 아이들. 가죽 쌈지에서 꺼내 하루에 7번씩 보지 않고는 마음이 놓이질 않는, 한쪽 발은 벌써 무덤에 들어가 있는 노인들도 보았지요.

 

유난히 깔끔한 척하는 체르케스인 부인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한 뒤 우리들을 지갑에서 꺼내 나무 솔로 비벼 닦곤 했답니다. 외눈박이 환전소 주인은 언제나 저희들로 탑쌓기를 했고 인동넝쿨 냄새가 나는 짐꾼과 그의 가족은 경치 구경을 하듯 우리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세밀화에 금박을 입히는 화가도(그 사람의 이름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매일 밤 갖가지 모양으로 저희를 바닥에 펼쳐놓곤 했습니다. 마호가니로 만든 나룻배에도 타봤고, 궁전에도 들어갔다 나왔지요. 헤라트풍의 책 속, 장미꽃 향기 나는 신발 뒤축, 안장 덮개에 숨은 적도 있습니다. 아편굴과 양초 공장과 고등어자반과 이스탄불의 모든 땀 냄새가 제 몸에 절어 있습니다. 이 모든 흥분과 소란을 겪은 다음, 밤의 어둠 속에서 희생자의 목을 베고 저를 쌈지에 넣은 비열한 도적의 재수 없는 집에서, 그가 제게 침을 뱉으며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라고 했을 때, 저는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아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었지요.

 

그러나 제가 없다면 세밀화가들 중 누가 재능이 있고 없는지 구별할 수 없을 테고, 그러면 세밀화가들은 혼란에 빠져 서로를 죽고 죽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재능있고 가장 영리한 세밀화가의 쌈지에 들어와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신이 황새보다 더 솜씨 있는 세밀화가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저를 손에 넣으십시오.

 

‘내 이름은 빨강’p180~187 타이핑 채란 <20171026-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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