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트루먼 쇼 이야기

미송 2022. 12. 5. 11:43

 

 

 

 

영화 트루먼 쇼에 실존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이 나온다. 자신의 각본에 따라 충실히 살아온 주인공을 신적 인물로 대치된 작가가 지배하는 장면들. 상상해 보라. 나 아닌 누군가가 나를 소유했다는 의식으로 내려다본다면 어떠할지.

 

주인공은 세트장으로 된 세계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다 결국 벽으로 막힌 수평선 앞에 선다. 세계의 관객들은 작가의 마지막 암시와 트루먼의 마지막 행동 사이에 집중한다.

 

트루먼 넌 지금까지 해 왔던 데로 살 수 밖에 없어. 나의 공간을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주인공은 바다 끝에 닿는 동안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었다.  풍랑 역시 작가가 준비한 소품. 주인공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는 작가. 작가 위에 또 다른 작가가 있다 한들, 공평한 신이 될 수 있을까.

 

천만다행. 하늘과 맞닿은 벽 한 쪽으로 1m 높이의 좁은 문이 있는 걸 발견한 주인공. 관객들은 트루먼이 그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걸어 나올 것인지 작가의 공간으로 되돌아 갈 것인지 숨죽이며 지켜본다.

 

마지막 트루먼의 얼굴이 카메라렌즈를 통해 비쳐졌을 때, 트루먼의 하얀 이빨이 유난히 반짝인다. 문을 열고 나온 트루먼의 인사말. 굿 모닝. 굿 이브닝. 

 

소설 <하얀 그림자의 독백> 중

 

 

20090117-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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