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5.6∼1939.9.23)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모라비아주 프라이베르크(지금의 체코 프로시보르) 출생.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유태계 상인이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나온 후 처음에 신경학ㆍ신경병리학을 전공하였고, 다시 히스테리와 신경증 일반 및 정신분석학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고, 정신분석으로 잠재의식의 세계를 고찰하는 심층심리학을 창시하였다. 그는 꿈, 히스테리는 모두 억압된 성욕의 비정상적 만족이라는 가설에 기초를 두고 모든 심리현상을 분석, 설명하였다.
빈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뒤 1882년 빈종합병원에서 신경임상의로 근무하였다. 1885년 파리 사르베토리에르 정신병원 J.M. 샤르코 교수밑에서 최면술로 히스테리환자의 마비ㆍ경련 등을 조절할 수 있음을 알았다. 1886년 빈에서 신경병원을 개업하고 많은 임상관찰을 통해 연구에 진력하여 인간의 마음에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존재를 설정하였다. J. 브로이어와 함께 히스테리 치유 방법을 연구, 1893년 카타르시스(Katharsis;淨化)법을 확립하였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임상에 적용하여 1896년 이 치료법을 ‘정신분석’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 용어는 뒤에 그가 세운 심리학체계까지도 뜻하게 되었다.
1900년 이후에는 꿈·착각·해학과 같은 정상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하였고 1905년에는 소아성욕론(小兒性慾論)을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점차 그의 학설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1908년 제1회국제정신분석학회가 열렸고, 잡지 [정신병리학ㆍ정신분석학연구연보](1908∼14) [국제정신분석학잡지](1913∼) 등이 간행되었다.
1920년 모교 정교수가 되었고, 그 뒤 이론 체계의 정립에 주력하여 인간의 인격구조를 ‘이드(id)’ㆍ‘자아(ego)’ㆍ초자아(super ego)‘의 셋으로 나누고 사회적 양심이나 부모의 금지 등에 의하여 형성되는 초자아에 의해 생명, 특히 성(性)충동인 리비도(libido)가 억압되어 잠재의식을 형성한다고 하였다.
꿈은 이러한 잠재의식의 발산이며, 리비도가 목적이 억제된 애정으로 치환(置煥)되어 나타나는 것이 예술·종교 등의 문화활동이라 하였다. 그의 리비도설은 넓은뜻의 성적본능을 뜻하는 것으로 범성욕설(汎性慾設)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무의식이 인간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하에 자유연상법을 통하여 과거에 억압된 기억들을 끌어냄으로써 히스테리 치료에 효과를 거두었으며, 인간의 본성과 성격을 구조화한 정신분석이론을 정립하여 20세기 심리학ㆍ정신의학에서뿐만 아니라 예술ㆍ종교ㆍ도덕ㆍ문화의 여러 문제에 널리 적용되어 사회학ㆍ사회심리학ㆍ문화인류학ㆍ교육학ㆍ범죄학ㆍ문예비평 등 여러 영역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프로이트의 학문의 세계는 초현실주의의 시, 신심리주의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나치스에 쫓겨 런던으로 망명하고, 이듬해 암으로 죽었다.
【저서】<히스테리의 연구>(1895) <꿈의 해석>(1900) <일상생활의 정신병리>(1901) <성(性) 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1905) <토템과 터부>(1913) <정신분석입문>(1917) <쾌감원칙의 피안(彼岸)>(1920) <자아와 이드>(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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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첫 발견, 인간의 '무의식세계'> - ‘아듀, 20세기’: [조선일보](1999. 2. 9)
인류는 세 번의 각성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우주와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우주에 대한 인류의 사고를 바꿔놓은 분기점이었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탄생을 신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혁명이었다. 인간 내면에 대한 깨달음이 마지막에 온 것은 필연이었을까. 1900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인간은 비로 소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프로이드는 20세기 이후적 인간과 그 이전 인간을 구분 짓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경계선이었다. (홍사중: 조선일보 논설고문).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은 점잖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프로이트를 아시나요"라고 묻는다. 19세기식 상류 사회 위선과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그녀에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20세기식 자유의 징표였다. 하지만 거대한 기성 질서를 상징하는 '타이타닉'호 선주는 "프로이트씨가 우리 고객인가요"라고 엉뚱하게 묻는다. 1912년 4월15일 '타이타닉'호는 침몰했지만, 프로이트는 20세기 역사 지평에 늘 떠있었다.
20세기는 '꿈의 해석'과 함께 꿈처럼 열렸다. 이 책 초판본이 1899년 11월4일 오스트리아에서 나왔지만, 발행연도를 1900년도로 한 것도 출판사가 파천황적 새로움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역본 출간은 1900년 10월14일. 오늘날 20세기를 움직인 현대의 고전으로 추앙받지만, 독일어로 쓴 초판본 600부가 다 팔리는 데 무려 8년이나 걸렸다. 유아 시절 이미 성욕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어머니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프로이트 이론들은 인간행동 동기를 이성에서만 찾고자 했던 '19세기적 지성'의 입장에선 혁명이면서 동시에 반역이었고 이단이었다.
꿈의 해석 초판본이 나온 지 9년만인 1909년 미국을 방문한 프로이트가, "유럽에서 나는 마치 버림받은 자식 같았다. 이곳에 오니 나를 최고 대접해주는 게 마치 한낮에 꿈을 꾸는 것 같다." 고 한 말은, 당시 유럽의 폐쇄적 지적 풍토를 상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대륙 아메리카의 국운 상승기운과도 무관하지 않게 들린다. 실제로 프로이트 이론이 지식인사회의 광범위한 인정을 받고 뒤이어 대중화되는 곳은 책이 나온 유럽대륙이 아닌 대서양 건너 미국이었다. 프로이트 이론이 20세기에 미친 영향은 실로 광범위하다. 우선 문학에서 초현실주의가 나타난다.
1919년 어느 날 저녁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창 옆에 두동강이 난 사람이 있다'는 말을 갑자기 떠올렸다. 그는 곧 프로이트 책에서 배운 꿈의 해석법을 따라 생각나는 이미지들을 자동 기술했다. 수술대와 우산, 모자와 열쇠, 집과 바다 등등 서로 논리적 연관이 없는 단어들을 우루루 쏟아내는 식의 초현실주의 문학 시대는 프로이트식 무의식을 빼곤 상상할 수없는 세계였다. 사막 풍경에 축 늘어진 시계를 담은 달리의 회화처럼 물체와 배경의 불협화음, 몽환적 풍경들을 담은 초현실주의 미술 역시 프로이트 이후적 인간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히치코크 영화 '사이코'에서 죽은 모친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살인마는 프로이트식으로 보면 무의식의 세계를 현실처럼 살고 있는 인간이다.
프로이트는 우리 생활에도 알게 모르게 넘친다. 가령 어느 소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손을 잡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 비현실적 세계를 돌아다니는 음료수 CF처럼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은 이제 영상산업마저 지배하면서 대중들의 은밀한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고 있다. 말년의 프로이트 사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 문명 저변에 깔린 파괴 본능을 탐사했다. 인간이 에로스(성욕)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본능(타나토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멸의 길을 선택하는 충동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늘 기억해야 할 20세기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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