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오쇼의 장자 강의 2

미송 2009. 11. 21. 08:43

오쇼의 장자 강의2

 

 

장자의 비유는 실로 아름답다. 그는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빈 배와 같다고.

 

그러한 이가 완전한 이다.

그의 배는 비어 있다.

 

거기 그 안에는 아무도 없다. 만일 그대가 장자를 만난다면, 노자를 만난다면, 그들의 배는 그곳에 존재하되 그 안은 비어 있다. 그 안에는 아무도 없다. 단순히 겉만 본다면 그때 그곳에는 누군가가 있다. 그러나 그안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그 육체, 그 배를 잊어 버린다면, 그때 그대는 하나의 무와 만날 것이다. 장자는 매우 드문 꽃이다 '어느 누구도 아닌 자'로 되는 것은 실로 어렵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일이다. 평범한 마음은 특별함을 원한다. 그것이 곧 평범함의 일부다. 평범한 사람은 특별한 누군가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것이 바로 평범한 사람의 특징이다. 그대가 알렉산더 대왕이 되더라도 그대는 여전히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진정한 특별함은 특별함을 원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그때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 그때 비로소 새로운 씨앗이 싹튼다.

 

이것이 곧 장자가 '완전한 이는 빈 배와 같다'고 말할 때의 의미다. 많은 뜻이 그 속에 깃들어 있다. 먼저, 하나의 빈 배는 어느 곳으로 가고 있지 않다. 더 이상 방향을 지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배를 조종할 사람이 없고, 어느 곳으론가 몰고 갈 사람이 없다. 빈 배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어디로도 가고 있지 않다. 물결에 움직여 나가도 어느 곳으론가 몰고 갈 사람이 없다. 에고가 그 곳에 없을 때, 그때 삶은 움직여 나가고 있지만 조종하는 사람이 없다. 그대는 움직일 것이다. 변화할 것이고, 강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으로도 향해 가고 있지 않다. 원하는 목적지도 없다. 완전한 이는 목적 없이 살고, 동기 없이 움직인다. 완전한 이에게,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물으면 그는 말할 것이다.

 

"나는 모른다. 다만 나에게 이 일이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만일 왜 내가 그대에게 말하고 있는가를 물으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꽃들에게 왜 피어나는가 물어보라고. 이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 일은 조작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이 없다. 배는 비어 있다.

 

목적지가 있을 때 인간은 불행해진다. 왜인가? 한번은 어떤 사람이 구두쇠에게 물었다. 그는 소문난 구두쇠였다. "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모았는가?" 구두쇠가 말했다. "이것이 나의 좌우명이다. 내일 할 일은 모두 오늘 하자. 그리고 오늘 즐길 일은 모두 내일로 미루자. 이것이 나의 좌우명이었다." 그는 재산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것을 쌓아 올리는 데 성공하는 방법이었다. 그 구두쇠는 역시 불행했다. 그는 재산을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행을 축척하는 데도 성공했다. 돈을 모으는 데 적용된 똑같은 좌우명이 불행을 모으는 데도 적용된 것이다. '내일 할 일은 오늘 당장 하자. 그것을 미루지 말자. 그리고 지금 즐길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지금 즐기지 말고 내일로 미루자.' 이것이 곧 지옥으로 가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지 않고서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대가 생의 환희를 알 수 있겠는가? 매 순간 그것이 그대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지만, 그대는 그것을 피해 우회해 가고 있다.

 

줄타기는 티베트에서 명상의 한 방법으로 이용되어 왔다. 가운데 있을 때 마음이 다시 실체를 갖는다. 그때 마음은 다시 존재를 갖고 말한다. '균형을 취하라, 왼쪽으로 기울라." 문제가 일어나면, 그것에 따라서 마음이 일어난다. 아무 문제가 없을 때 어떻게 생각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한가운데 있을 때,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더 이상 사념이 존재하지 않느다. 평형이라는 것은 사념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

 

줄 위를 걷고 있다면 그대는 두 가지를 느낄 것이다. 즉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사념이 멈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한가운데로 올 때, 그 중간 지점에 머물 때, 거대한 침묵이 그대에게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 침묵은 그대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침묵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길에서나 일어난다. 그대 전생애가 하나의 줄타기와 같다. 그러므로 요 임금은 한가운데 머물러 있고자 했다.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받는 것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 상태에....

 

종교는 말한다.

"선하라. 선하게 행동하면 아무도 그대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도는 말한다.

"존재하지 말라, 사라져라."

 

그대가 올바로 행동하고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대한 성인일지라도 분노를 만들어 낸다. 그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때로 선한 자는 악한 자보다 더 많은 분노를 만들어 낸다. 선한 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미묘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도는 완전히 다르다. 도는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도야말로 지상에 존재한 가장 심오한 종교다. 그것에 비교할 만한 종교는 이 세상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고타마 붓다 속에, 크리쉬나(힌두교의 신) 속에는 진리의 반짝임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반짝임일 뿐이다. 노자와 장자의 메세지는 가장 순수한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순수함이고, 어떤 것도 그것을 더럽히지 못했다. 

 

모든 후광은 어떤 식으로든 에고와 관련되어 있다. 초상화를 그린 이는 크리쉬나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었다. 제자들은 붓다의 머리 둘레에 후광을 그려 넣지 않고서는 붓다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그가 특별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자는 말한다. 평범하게 되는 것, 그것이 곧 지혜로운 자가 되는 길이라고. 아무도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무도 그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장자는 말한다. 군중 속으로 들어가서 그대를 그 속에 파묻으라. 하지만 아무도 하나의 붓다가 자기들 속에 드어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무도 누군가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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