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152

트루먼 쇼 이야기

영화 트루먼 쇼에 실존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이 나온다. 자신의 각본에 따라 충실히 살아온 주인공을 신적 인물로 대치된 작가가 지배하는 장면들. 상상해 보라. 나 아닌 누군가가 나를 소유했다는 의식으로 내려다본다면 어떠할지. 주인공은 세트장으로 된 세계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다 결국 벽으로 막힌 수평선 앞에 선다. 세계의 관객들은 작가의 마지막 암시와 트루먼의 마지막 행동 사이에 집중한다. 트루먼 넌 지금까지 해 왔던 데로 살 수 밖에 없어. 나의 공간을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주인공은 바다 끝에 닿는 동안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었다. 풍랑 역시 작가가 준비한 소품. 주인공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는 작가. 작가 위에 또 다른 작가가 있다 한들, 공평한 신이 될 수 있을까. 천만다행. 하늘과 맞닿은 벽 ..

낙서와 독백 2022.12.05

11월 일기

1 수다쟁이들은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하나라는 것을 애석해 한다. 입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자기 말을 더 할 수 있는데, 자기 말을 들어주던 상대 뒷담화까지 칠 수 있는데. 수다쟁이들의 입은 후생에 아구찜으로 태어날 것 같다. 2 옷가게에 들어온 손님이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에게 서운함을 표한다. 한 계절이 다 지나 와 놓구선, 오는 길에 가죽 부츠를 하나 사 신었느니 간밤엔 밤새도록 고도리를 쳤느니, 중구난방 떠들기 시작하면 황당하다. 그러나, 돌아갈 때쯤 동전지갑 한 개를 선물하는 이유는 고도리 동전을 꺼내다 혹시 이 가게 주인을 떠올릴까 싶어서. 3 마이너리그. 문화적 환경에서 동 떨어짐. 원시인 같음. 소속감 없음. 결핍감도 없음. 결론은 불모지. 혼자놀기의 달인. 4 말싸움에서 이기는 법...

낙서와 독백 2022.12.05

잠자리는 무엇으로

1 2월 20일 쯤 코로나19 경계경보가 시작되었다. 생활 속 거리두기가 메인화면에 뜨자 우리라는 글자가 사라졌다. 와중에, 오로지 자기 말만 옳다고 거짓말 해대는 자들. 쌩까는 자들. 가까이 가면 생채기만 내는 자들. 바이러스 보다 더 무서운 것들. 이전 이후를 떠나 자동적 거리두기는 삶의 오래된 방식이었지. 2 새는 날갯짓으로 물고기는 지느러미질로 이파리는 흔들림으로 꽃은 향기로 제 목소리를 낸다. 안이비설신 오감적 인간에게 목소리는 왜 필요할까. 사랑하는 왕자를 만나는 조건으로 목소리를 잃게 된 인어공주를 떠올려 본다.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 비극이기만 할까. 목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돋게 하는 인간들을 타이핑으로 처리하는 나, 3 가치관에 따라 인간 유형과 삶의 형태가 달라진다. 늙으면 돈 밖에 믿을..

낙서와 독백 2022.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