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정성희<인생학교>

미송 2009. 3. 5. 15:21

[2008 평사리 문학대상 수필부문 수상작]

 

인생학교 

 

정성희


                                                                                                                

   그 학교에는 유독 통과해야 할 문들이 많다. 나는 그곳을 지키는 파수병이다. 사람들은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을 큰집이라고도 부른다. 그 주벽(主壁)은 견고한 ‘배타(排他)'라는 벽돌담으로 높이 울타리 쳐져 있기에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도 무너져 있고 땅도 간 곳이 없다. 짙은 안개속의 마법에 걸린 듯 모든 사물들이 실종되어 있다. 마치 사차원의 블랙홀 세계로 말려가는 착각 속에 시간이 기화되고 공간마저 증발한다. 세상이 한순간 그렇게 정지된 채 정박해 있다.

  ‘철커덕’하며 철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모든 상품에 찍힌 바코드처럼 그들 존재를 저울질하는 고유번호가 각각의 가슴위에 붙여져 있다. 모두들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들이다. 사무실 천장 위에 매달린 백청색 형광등 불빛들의 산만한 움직임마저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극심한 단절감이 가슴 밑바닥을 스치며 지나간다. 그들을 향한 나의 눈빛은 단호한 선입감과 딱딱한 편견으로 굳어 있다. 애써 감추려 해도 무채색의 공간 속에 무채색의 고독과 무채색의 절망을 끌어안고 입소한 그들의 예민한 눈이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철문을 통과한 어둠의 혼령은 신분대조를 마친 그들을 앞세워 지옥문 같은 빗장이 질린 감방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주변은 철시撤市한 상가처럼 쓸쓸하다. 그 속을 서러운 고요만이 종종걸음으로 그들 뒤를 따라 들어와 이 척박한 뒷방으로 유배시킨다. 시간이 뒷걸음질 치면 칠수록 꾸리에 감긴 명주실마냥 사연 사연들은 되살아난다. 잊어버리고자 애쓰던 일들, 떠올리면 마음만 아픈 일들이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면서 그들을 옥죈다. 바람이 스치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배가 지나가면 물결이 일듯이, 그들은 자신이 남긴 잘못된 흔적 때문에 늘어나는 회한으로 가슴을 적신다. 거실 구석구석마다 설치된 감시 장치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어느 것도 그들 내면에 쌓인 번뇌는 투시하지 못한다.

   나는 사동문을 잠그는 열쇠로 그들의 인생을 단단히 옭아맨다. 지정된 거실에 들어선 그들은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사슬에 의해 에누리 없이 돌돌 말려 포박된 꿈을 안고 더욱더 몸부림친다. 밤낮으로 날아오는 빚 독촉 고소장은 날을 바짝 세운 채 그들을 이 좁은 방으로 몰아붙였을 것이다. 그 허탈감은 정수리에 돋아나는 새치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그들 속을 휘젓는다. 이젠 그들은 줄에 묶인 염소처럼 말뚝 바깥의 세상으로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다. 무력감은 장마철 먹구름이 되어 그들 영혼을 점령하고 희망은 이미 거세되어 요절 당한다. 문을 열면 눈부신 하늘이 갇혀진 창들의 횡포에 손수건 한 장 크기만도 못하게 남아있다. 삭막한 대지를 훑고 몰아치는 메마른 바람만이 육중한 철문에 부딪히면서 날카로운‘쇳’소리를 연신 뿜어댄다.

    밤이 깊어지면 해묵은 시간들이 슬며시 기어 나와 갇힌 자들의 희망과 좌절, 고통의 시간들을 응축시킨다. 순리를 베어버린 한순간의 실수로 뒤틀린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며 이 밤 잠 못 드는 것일까. 하나 값지게 보낸 하루는 잘못을 저지른 십 년보다 나은 것이라며 창살 밖으로 스쳐가는 어둠이 전해준다. 또한 신은 한쪽 문을 열어놓지 않고는 절대로 다른 쪽 문을 닫지 않으신다고. 그들의 굳은 입술에는 여전히‘꿈이라는 믿음이 삐져나온다. 비록 그것이 신기루처럼 허망할지라도 그러한 욕망 때문에 그들은 삶을 지켜갈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 속에서 꿈을 간직하고, 꿈을 그리면서 현실을 덤으로 살아가게 된다.  

   멀리서 ‘꼬끼오’하는 닭울음소리가 들린다. 하늘을 흔들어 여명을 부르는 그 소리에 사람들은 아득했던 의식의 세계에서 기도와 명상으로 신이 준 아침을 연다. 영 풀릴 것 같지 않았던 운명의 고리가 벗겨지듯 조여든 햇빛이 감방 안의 어둠을 걷는다. 창살 밖 사각형의 먼 하늘에는 불그레한 조각해가 구름을 딛고 불쑥 솟아오른다. 빗장으로 덧대어진 문이 열리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운다.  

   싸늘한 공기를 코끝으로 맡으면서 커다란 싸리비로 너부러진 앞마당의 오물들을 쓴다. 욕망의 시샘을, 금전에 대한 쟁취를 싸악 싸악 쓸어버린다. 마음속에 비좁게 차지했던 조각난 삶들, 묵은 회한들을 말끔히 털어낸다. 겨울동안 빛을 잃고 향기를 잃고 그 모습마저도 잃어버린 꽃들이 다시 만개하듯, 그들은 억압된 공간에서 차단의 고통을 성숙된 거듭남으로 두터운 철문을 박차고 다시금 비상하고 싶어 한다.

    그곳 벽 안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잘난 사람들과 아주 못난 사람들,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수많은 애환을 세월의 더께 속에 묻어두고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소나 양 같은 초식동물이 반추라는 과정을 통해 소화를 완성시키듯, 그들은 겨울과 같은 내면의 침묵을 통해 인생을 다시 한 번 이모작하고 싶어 한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때문에 웃옷 전체를 일그러지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담장 안에서의 공동생활을 통해 세파에 지쳐 생채기가 난 마음의 상처를 서로의 진물로 보듬어주면서 작은 사랑의 정을 나눈다. 비록 남아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아직도 이를 악물고 참아낼 수 있는 몇 개의 희망에다 하루 하루치 남은 자투리행복을 더하면 벽 밖에 사는 사람들보다 못 할 바가 없다. 이러한 깨달음은 수많은 모퉁이를 돌아 모든 뒤척임을 잠재운 뒤에 얻게 되는 숭고한 해탈이다. 그리하여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잘디잔 햇살과 구김살 없는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세상을 향한 그들 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부식되지 않은 삶의 의지가 이 벽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본다.

    우주는 자연만물의 조화를 이룬 신의 창조물이라고 한다. 그러면 감옥은, 그 질서에서 벗어난 지상의 인간들에 대한 조물주의 이변적인 통치기관일까. 신으로부터 최종심판을 받은 영혼들을 가두는 창살이 하늘 문에도 있단 말인가. 왜 창조주는 그들을 시험하려고 감금의 시련을 제물로 바치게 한 것일까. 만 가지의 의문들이 가슴속에서 춤을 춘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고유한 신의 지문이 있다. 신은 왜 시험이라는 것을 통해 선악을 판단하여 그들에게는 전과자라는 지문을 기록하려 했을까. 아담과 이브에게 무화과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그들을 시험했던 하느님의 처세는, 위험한 나무에 올라가게 해놓고 그것을 흔드는 격이 아닐까. 우리네 인생살이에 함정이라는 선악과나무를 도처에 심어놓은 하느님의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연습이 없는 일회분의 삶만을 허락한 신은 감금이라는 응보를 통해 그들을 환생시키려 했던 것일까. 하나 순리인 줄 알면서도 거역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신은 그저 간과했단 말인가. 사람의 한살이에 예상치 못한 순간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삶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신은 그저 묵시한 것일까.

    어느새 나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는 자신을 간파한다. 사막에서는 한마디의 명언보다 한 방울의 물을 나눠 마시는 것이 더 소중하듯이, 감방에서는 매서운 눈초리보다 젖은 가슴으로 그들을 보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인장 가시와 같은 경계의 촉수를 곧추세우며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경직된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얼마나 많은 걸림돌들을 건너야 선긋기와 같은 뿌리 깊은 경계의식을 넘어서 그들의 머리 위에 얹힌 먼지 한 점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잃고서도 그런 현실을 눈물겹게 사랑하며 촉촉한 웃음을 나눠 가진 그들은 내 깨달음의 등불이요 인생의 진정한 스승이다.

    정규적인 학교는 내게 너무 작은 것들을 가르쳤다. 수많은 공식들과 법칙들로 입력된 그곳에서 나는 학문을 통한 경쟁의 원칙과 무리를 통한 갈등의 원리를 배웠었다. 체계적인 책상이론은 마음보다는 머리를 중시하는 가장 협소한 지식의 감옥이었음을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야 깨우치게 되었다. 아름다운 세상은 머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 인생의 진정한 학교는 바로 그 큰집이었다.

   교도소 안에는 스승 아닌 것이 없었다. 갇힌 사람들의 제반문제들은 하루하루 연습과제물이 되었고, 그들의 인생은 곧 교과서가 되었다. 책장을 넘기면 문밖에도 문안에도 어디에도 삶은 있었다. 곱고 순정한 것뿐만 아니라 추하고 혼탁한 것들도 아울러 응축하여 무색과 무언으로 내 안에서 거듭남을 배우게 하는 숭고한 고행의 현장이었다. 소홀했던 것으로부터, 또 자신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상처받았던 모든 것들로부터 새로운 푸른 거듭남으로 부활시키려는 신의 죄 사함이었으리라.

   한 생각 돌이키니 그곳은 감옥이 아니라 사람을, 자연을, 인생을,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폭넓은 가슴을 담게 해주는 국립선원이었다. 용서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게 될 즈음이면, 그 인생학교로부터 졸업장이 수여되지 않을까 싶다. 하나 그 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평생의 마음수련이 필요할 것 같기에 오늘도 여전히 나는 그 학교로 등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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