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기억할만한 사랑은 오래 아픈 법이다

미송 2010. 3. 3. 09:01

기억할만한 사랑은 오래 아픈 법이다 / 강영은

 -이성렬 시인의 시집 "비밀 요원"(서정시학) 을 읽고

 
 
1, 겹눈의 비밀요원

때 이른 꽃이 한꺼번에 만개한 봄날, ‘비밀요원’이 내게로 왔다. 성한 다리 하나로 견디는 비밀요원/ 썬글래스 속에 조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충견/........./그 어두운 형태가 구차한 생을 찬찬히 보살피던 내 봉분임을/ 라고, 고백하며 철모른 봄날의 음모를 분해해내듯 내게 그가 소지하고 온 언어의 꽃송이들은  내보였다. 시집 속의 온갖 질료들, 막힘없는 사유와 다양한 공간, 깊이 있는 지식이 프리즘처럼 무한대의 광속처럼 반사되는 시집‘ 비밀요원’을 받아들고 그 깊이에서 우러나는 향기를 맡기로한다.

이 시집은 서울대학교와  KIAST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화공학 교수인 이성렬 시인이 두 번 째로 상재한 시집이다. 지식의 최첨단에 선 학자로서, 또 과학자로서 어떻게 보면 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운위하고 있을 시인, 그 예사롭지 않은 이력이 내재되어 있는 행적이 더욱 궁금해졌다. 과학이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을 말한다, 그러나 시는 언어를 도구로 하는 예술행위로써 진리나 법칙을 발견으로 한다기보다 그것을 그려내는 비체계성의 속성을 지니는 것이다. 피카소는 '예술은 진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는 거짓이다. 예술가는 거짓의 진실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진리를 위해 당위성과 체계성이 요구되는 학문과 내면적 세계가 세계와의 충돌 혹은 합일을 통해서 재현이라는 거짓된 행위를 통해 진실을 깨닫게 하는 예술의 만남, 두 세계의 대립점이 이성렬 시인에게서 어떻게 합치되고 있는지 다음 시에서 볼 수 있다.

정전된 다락방에서 안경을 벗었다
모니터 화면은 조리개를 닫으며 사라져 갔다
팽팽하게 감각이 살아나는 내 넓적다리에 밤은 차가
운 발바닥을 대었다
마른 오징어가 접시 위를 기어갔다. 아가미를 벌렁거리며,
내 눈은 점점 부풀어 올라 물고기 눈의 광각으로 어두
운 숲을 걸었다.
나무들의 그림자에는 상어 등뼈를 닮은 가시가 박혀
있었다.
사슴 한 마리가 성탄 카드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막막
하게 눈 내리는 벌판으로,
지구에서 수백 광년 떨어진, 또 다른 태양 주위를 도
는 행성이 지글지글 열기를 느꼈을 때,
안개가 겨울 논바닥에 남은 앙상한 볏단 위를 헤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 눈동자는 감당하지 못한 채, 수만 개로 세포분열 하
였다.
 
-<겹눈> 전문

이 시 속에는 안경 안과 안경 밖으로 세분되는 두 세계가 있다. 모니터 화면 속과 바깥으로 구분되는 세계, 전기라는 문명의 이름이 지워진 정전된 다락방과 같은 자연의 세계, 숱한 정보로 넘쳐나는 조리개를 닫으면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세계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것을 보기 위해서 안경을 벗는 행위가 전제되고 있다. 화자는 본연의 눈동자 속에서 우글거리는 수 만 개의 피사체를 본다 ,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학문을 닦기 위해 써 왔던 안경 즉 외면적인 자신의 모습을 벗음으로써 자신의 본질적 세계와 조우하고 있음을 말한다. 지성의 눈으로 감찰하는 세계가 아닌 감각과 정서로 바라보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엘리어트(T.S.Eliot)가 말한 ‘시는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等價物)’이라는 겹눈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행성이 지글지글 열기를 느꼈을 때, 안개가 볏단 위를 헤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열기를 측정하고 안개의 질량을 따지는 눈외에 그 겹눈이 있기에 열기와 헤매임을 자양분으로 시를 쓰는 것이리라. 그 수 만 개의 세포로 분열하는 겹눈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2, 사물에 말 걸기

그의 겹눈이 바라보는 곳은 실로 다양하다. 웨스트우드 서점(나는 이 서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의 책들처럼 숱한 공간과 시간의 기억을 지닌다. 유학시절 머물렀던 외국이며 여행의 흔적, 강의를 하기위해 잠시 머물렀던 역전이며 정류장 같은 공간과 시간들이 그가 읽은 책 속의 부피만큼이나 다양한 겹눈의 세계를 이끌고 있다. 이미지의 투명성을 위하여 대개의 시인들이 목표지점을 집중 공략하는 거와 달리 한편의 시에 다양한 공간과 시간이 변주되기도 한다. 시의 산실 속에 비축된 상상력과 정보가 풍족해야 가능한 작업인 것이다. 그러한 그를 공증해주는 것은 다음의 시편이다.

그곳에 가보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버스 문을 열고 거리로 내려선 순간, 회색 문들이 공중에 겹겹이 걸려 있었다. 근세의 지층 아래, 청동투구, 침침한 초상화, 금색문장이 있는 방에서 낙타가 천천히 일어섰다. 운하를 떠난 낙타는 돌아오지 않았다.

카페 (말리꽃) 앞에서 안경을 벗어들었을 때, 가로등이 초신성으로 폭발했다. 주유소 노란 불빛들도 기러기와 함께 다발로 터지며 새로운 달을 향해 떠났다. 이 우울한 행성에서 너무 많은 책들을 읽은 것일까?

내 망각의 스크린 위, 기차역에서 노인들을 작별한다. 민박집 여자는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만다라의 마을에서 망자들의 뼛가루 같은 눈이 내린다.  그곳에 가보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어린 왕자, 바오밥나무, 프란쯔 카프카, 벨로시랩터, 타코브라에, 따뜻한 별에서 쫓겨난 것들의 단체사진이 국경도시 Gmund에 걸려 있다.

-<공증> 후략

그곳이 어딘지 지명하지는 않았지만 회색문들이 겹겹이 걸려있는 그곳으로 가본다.  회색이라는 빛깔이 의미하듯 모호한 세계,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 그 공간은  물혹 하나만으로 한생을 건너는 낙타의 삶처럼 고단한 여정을 의미하는 불특정의 공간이다.  해명되지 않은 과거 속에서 새로운 달을 향해 떠나는 그곳은 시의 여정 같이 힘겹고 지난한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며 고정과 선입의 개입되지 않은 상상속의 공간일것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뚜렷하게 시야를 확보할 필요가 없다. 안경을 벗는 행위를 통해 아무런 지식도 관념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의 공간으로 떠날수 있기 때문이다. 안경은 지식인을 대변하는 제유의 역할을 담당한다. 안경을 벗는 행위를 통해 그는 증폭되는 상상의 날개를 달고 시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 같다. 망각의 스크린 위에 보이는 것은 축적된 지식을 통해 끝없이 증폭되는 상상력의 세계다.
 
풍부한 지식의 저장고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텍스트들은 그것이 저장되기 까지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안경을 벗어던짐으로써 즉, 지식으로서의 한정된 세계를 벗어나 자유연상의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슬픔의 근원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그 세계 속에서 사물의 잔등에 돋은 소름을 만나는 것, 사물의 심장에 돋은 동맥을 다촛점렌즈로 들여다보는 것, 사물의 푸른 모자를 벗겨내 내 머리에 얹어보는 것이 자신의 시 쓰기라는 시인의 말마따나 과학이 결코 답해주지 않는 불멸의 것을 찾아가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사물에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사물에 말을 건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라지기 위하여 자연발화를 기다리는 유령의 행위가 아닐까? 시인이란 다음 시편처럼 유령의 역할을 감내해 내야하는 숙명을 지닌 자들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희망에 대해 말한 노인이 있었다. 바벨의 도서관을 조용히 거닐던 시인, 쉴새없이 눈알을 굴리는 시간을 꾸짖으며 서가 사이에서 썰물처럼 저물곤 했다. 밤과 낮을 소리로 분간하여, 책들이 침묵할 때에만 시를 썼다.

모든 비극의 주인공들을 불러 모은 후, 그는 시집 한권을 완성하여 어떤 빛도 닿지 못하는 공간에 숨겨두었다. 비 내리는 밤에는 문들이 책속으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때로는 지상에서 견디지 못한 지붕들이 움집처럼 가라앉기도 했다.

그는 끈질기게 기다렸다.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손가락이 책에 베이어 쓰라린 피를 쏟을 때까지, 투명한 눈물들이 모여 거울을 이룰 때까지, 시간의 눈꺼풀을 까뒤집으며,

어느 추운 겨울날, 남루한 옷을 걸친 소년이 찾아왔다. 마지막 도도새 발걸음을 찾던 아이는 기꺼이 어둠에게 시력을 돌려주었지만, 책속의 죽은 투구게들이 눈동자를 빌려주었다.

처음으로 물에서 걸어나온 발자국이 모래밭 위를 서성이는, 다른 행성을 향해 소년이 떠난 후, 시인은 글자들을 세상으로 모두 돌려보냈다. 사라지기 위하여 자연 발화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 뿐, 
-<유령> 전문

이 시편에서 시인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자연발화를 기다리는 시인의 묵묵하고도 외로운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언어의 탑, 그러나 소통되지 않는 언어들로 인하여 무너져버린 저, 바벨이라는 이름의 희망을 쌓기 위해 썰물처럼 저물어가는 시인의 꾸부정한 등이 보이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소년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던 시는 오늘도 유령처럼 떠돌며 시혼을 매만지고 있으리라.


3, 기억할만한 사랑은 오래 아픈 법이다
 
첫 눈에 반했다 사라지는 사랑은 고통의 기억도 그만큼 짧다.  찰나에 피었다 지는 꽃처럼 어느 순간 눈 앞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워지지않는 영상처럼 기억속에 어른거리는 잔영의 사랑은 수시 때대로 고통을 수반한다. 시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그렇게 오래 아픈 고통 속에서 자연발화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바라키노에서 열번 째 행성까지 "(시인의 산문)에서 고백한다
 
서른 살에 시인이 되었더라면
많은 여자들을 만났겠지
술집에서는 못 일어나는 밤이 잦고
우체국 간판이 붉은 이유를 알았겠지
가난한 하늘에서
뗘돌이 별은 마음에
좀더 가까이 항해했겠고
밤의 푸른 목소리에 반하여
자주 떠났겠지
 
그러나 마찬가지였겠지
기억할만한 사랑은 오래 아픈 법
낡은 가방과 이별은 나중에 오는 것
비내리는 바닷가에서 모든 길들을 지운 뒤
정강이에 와 닿은 매 시간과 헤어지며
늦은 가을 날 빛과 어둠 사이  
모든 가엾은 죽은 살과 살아있는 껍질들을
매만지고 있을테니
 
<늦게 부른 노래> 중에서
 
 
그렇다, 이성렬 시인은 그런 사람이다, 비내리는 바닷가에서 모든 길들을 지우며 너무 늦게 노래를 불렀지만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빠르던 느리던 모든 가엾은 죽은 살들과 살아있는 껍질들을 매만지고 있었을 것이다. 열번째 행성을 지나는 그의 시적 행보가 어느 우주로 향할지 알 수 없지만 낡은 가방과 이별은 나중에 오는 것, 분석과 정립을 통하여 진실을 규명하는 과학이 아닌  시의 언어로 해독되지 않는 불멸의 어떤 것을 향해 꾸준히 정진할것을 믿는다. 그의 언어가 시의 속살을 파고들 시인으로서도 찬란히 꽃 피우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