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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청와대 책꽂이가 궁금하다

미송 2010. 3. 18. 19:34

[동서남북] 청와대 책꽂이가 궁금하다

 

조선시대 영조(英祖)는 김만중의 한글소설 '구운몽'을 몇번이고 읽었다. 엄숙한 한문(漢文)책이 아닌 한글소설을 즐긴 그는 신하들에게 우스갯소리도 잘했다. "옛날에 한 아낙이 아기가 울자 한문책을 들어 아기 얼굴을 덮었다네. 옆에 있는 사람이 무슨 까닭이냐고 묻자 아낙이 말하기를 '얘 아비가 평소 한문책만 들면 눕고, 누우면 바로 잠이 들기에 이놈도 잠 좀 자라고 이렇게 했지요' 했다네."(정병설 지음 '구운몽도') 한글소설은 너무 재미있어서 잠을 설치게 하니 신하들에게 날 재우려면 한문책을 읽어달라는 왕의 개그였다.

그런데 영조의 손자인 정조(正祖)는 '패관문학(稗官文學)'을 혐오했다. 청나라 통속소설을 몰래 읽다 걸린 관리들을 파직했다. 성균관 유생 이옥(李鈺)이 과거 시험 답안지를 감히 패관소설체로 썼다가 정조에게 걸려 군대에 강제 징집당하기도 했다. 벼슬을 포기한 이옥은 문집 '연경(烟經)'에서 왕이 싫어한 문체를 맘껏 구사했다. '아리따운 여인이 님을 만나 애교를 부리고 잠자리를 같이하다가 님의 입속에서 아직 반도 태우지 않은 은삼통(銀三筒) 만화죽(滿花竹) 담뱃대를 뽑아서는, 재가 비단 치마에 떨어지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침이 방울져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바삐 앵두 같은 붉은 입속에 넣고서 웃으며 피워댄다. 바로 이것이 염격(艶格)이다.'(이신영 옮김 '완역 이옥전집' 3권)

한국 역대 대통령은 문학에 대해 관대했던 영조와 냉대했던 정조 어느 쪽에 더 가까웠을까. 이승만은 서정주 시인에게 맡긴 전기(傳記)가 마음에 안 든다며 출간도 못하게 했고, 유신(維新)과 5공 정권 때는 투옥 문인이 너무 많았다.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선 문학 탄압은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진보 문학의 후원을 받았고, 청와대 애독 소설이 베스트셀러도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설가 박경리 빈소에 훈장을 바치고 조문했다. 그 외에 이 대통령이 문인들과 만났다거나 요즘 대통령이 이런 소설을 읽고 있다는 얘기들이 화제가 된 기억이 없다. '무용(無用)한 문학'은 '실용'을 표방한 정부에선 역시 뒷전인가.

최근 한국작가회의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정부가 문인들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 이 단체 회원이 아닌 문인들까지 화가 났다. 원래 문인은 반(反)권력적이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기 마련이다. 역사 교과서에선 개혁 군주란 평가를 받는 정조는 문인의 자존심인 문체(文體)를 다스리려고 했기 때문에 오늘날 문학사에선 점수가 깎이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콜롬비아의 노벨상 수상작가 마르케스의 신작 소설이 나오기도 전에 가제본(假製本)을 입수해 읽었다. 남미 현실과 환상을 뒤섞은 마르케스의 문학을 통해 미국에 비판적인 남미(南美) 민중 정서를 깊이 느끼려고 했다. 문학은 무용하기 때문에 유용한 정보가 감지 못하는 현실의 단면을 새롭게 보여준다. 문학은 따분한 정책 보고서에선 느낄 수 없는 지식사회의 담론(談論)과 일반대중의 세태를 생생하게 그려준다. 딱딱한 권력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대외 효과도 있다. 시인 지망생이었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백악관에서 '재즈가 흐르는 시(詩) 낭송의 밤'을 열었다.

청와대로 문인 초청해서 밥 먹고 사진 찍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청와대 서재의 한쪽에는 경제나 외교 전략 서적과 함께 사람들의 삶을 담은 문학 책들도 꽂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박해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