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유식학 제 23강 : 4연 중의 인연

미송 2010. 6. 8. 11:40

제 23강 4연 중의 인연

 

종자와 현행

 

배의 씨앗과 사과의 씨앗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과 밭에 떨어진 복숭아의 씨앗을 사과의 씨앗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웃음거리가 된다. 사과 씨와 복숭아 씨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식의 소치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 둘을 잘 구별하는 사람도 복숭아 밭에 떨어진 살구 씨를 보고서 참 이상하게 생긴 복숭아 씨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복숭아를 먹다가 그 씨앗을 보고서, 이 씨앗이 자라서 복숭아라는 열매를 맺는다고 안다. 그러나 복숭아를 알 뿐, 살구를 먹어본 적도 먹은 적도 없는 사람은 살구씨를 보고서도 복숭아를 떠올리기 쉽다. 복숭아든 살구든 둘 중의 하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보았다는 사실로 무지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사과와 배를 먹어 본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사과 씨와 배 씨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두 씨앗의 차이를 대비해 본 경험이 우리의 의식 속에 기억으로 간직되어 있을 때만 그 둘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복숭아를 보고 복숭아를 떠올릴 수 있고 살구 씨를 보고서 살구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의식의 활동으로 형성된 지식 때문이다. 이 지식의 형성 과정인 의식 활동이 없다면, 씨앗과 그 결과인 열매 사이의 필수적인 인과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 복숭아 씨가 잎과 줄기로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나서 복숭아라는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앎이 우리에게는 지식으로 형성된다. 이 지식으로 인해 우리는 나중에 복숭아 씨만 보고서도 그 결과인 복숭아를 떠올릴 수 있다. 그 씨 안에 이미 잎과 줄기와 꽃과 열매까지 담겨 있음을 알고 그 성숙 과정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씨앗만이 열매의 필수적이고 일차적인 원인이라는 우리의 상식은 보완되어야 한다. 즉 씨앗 외에 다른 대등한 원인이 함께 작용함으로써 씨앗이 그 열매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대등한 원인이란 씨앗으로부터 열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미치는 작용, 즉 특별한 힘이다. 불교에서는 이 힘을 공능차별(功能差別)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뜻한다. 유식학에서는 씨앗과 함께 작용하는 다른 대등한 원인, 소위 공능차별을 현행(現行)이라고 한다.

 

여기서 현행이란 씨앗을 보고서 그 열매를 떠올리는 과정이며, 실질적으로는 씨앗과 같은 기억의 정보들을 어느 한가지 형상으로 드러내는 작용, 또는 인식된 사실을 통해 하나의 지식을 형성해 가는 작용이다. 이미 '허망분별의 진상'에서 설명하였듯이, 씨앗으로부터 상응하는 열매를 떠올리는 작용을 종자생현행이라 하고, 씨앗과 열매와의 연관을 상식으로 기억에 남기는 작용을 현행훈종자라고 한다. 종자와 현행의 뗄 수 없는 관계가 종자생현행과 현행훈종자라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과 씨와 복숭아 씨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두 씨앗의 전혀 다른 모양 때문이 아니라, 그 씨앗에 대한 의식 활동인 현행의 차이 때문이다. 이 현행이 없을 때는 살구 씨를 복숭아 씨로 알게 되며, 심지어는 사과 밭에서 본 복숭아 씨를 사과 씨라고 알게 된다. 이처럼 현행을 씨앗, 즉 종자와 대등한 원인으로 취급한 데서 유식학은 상식적인 세계관을 넘어선다. 

 

웬 비행기가 아파트 단지에 추락하여 수백 명의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고 야단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비행기이기에 피해가 엄청났느냐고 모두들 비행기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묘사하는 비행기가 내가 듣고 본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본 것은 B29와 같은 거대한 폭격기였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은 그런 구형 비행기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나는 그 추락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직접 듣거나 본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내가 어떻게 비행기 모습을 떠올렸던 것일까? 이제 생각하니 그것은 꿈속에서 본 것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런 사실적인 꿈을 어떻게 꾸었을까? 나는 아침에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켜져 있는 텔레비전의 말소리를 그대로 꿈으로 만든 것이었다. 

 

비행기가 추락한 현장을 직접 보지 않은 내가 B29와 같은 폭격기가 추락한 모습을 보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당연히 두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하나는 말소리만 듣고서 그럴 듯한 형상을 꿈으로 지너낸 나의 의식활동이다. 이 의식 활동이 곧 현행이다. 다른 하나의 원인은 나의 기억으로 잠복되어 있는 지식이다. 꿈속에 본 B29와 같은 폭격기는 큰 비행기를 B29로 알고 있던 나의 다른 지식에서 나온 것이다. 먼저 말한 원인은 현행이고 나중에 말한 원인은 종자이다. 지식이 기억으로 보관된 상태를 종자라고 한다. 현행이라는 원인이 없다면 내게 배행기가 추락했다는 인식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B29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그 배행기를 B29와 같은 폭격기로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식학의 관점에서는 종자와 함께 현행이 결과의 필수적이자 일차적인 원인이다. 

 

이처럼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좀 더 면닐하게 이해하는 것은 존재하는 현실, 즉 우리의 삶과 세계가 어떻게 성립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 점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의 의의, 나아가 원인에 대한 분석과 고찰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인연의 특성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연기법이라고 한다. 연기법을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도 하고,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곧 연기법을 깨우치는 것으로 집약된다고도 한다. 이 설명은 간명한 만큼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다.

 

연기라는 말 자체는 '연(緣)하여 일어남',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뭔가에 의존하여 일어남', '어떤 조건에 따라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연이 일으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연이란 우리의 경험 세계에서 어떤 것이 발생하여 변화하고 소멸하게 하는 조건, 근거, 원인 등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을 이 정도로 설명하더라도 연기법이라는 이치가 실감이나 공감을 쉽게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연이라는 말이 포괄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그것은 단지 원인이라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기 쉽기 때문이다. 연이라는 말은 가장 직접적이거나 한 가지 원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통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조건이나 상황까지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순한 인과율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불교에서 인간의 삶과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고 가능한지를 이해하는 데 적용되는 고차원의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같은 사실을 '연'이라는 한 마디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모든 것은 '연'하여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네 가지 연으로써 설명하는 데에서는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4연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넓은 의미의 원인, 즉 조건을 넷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 넷은 인연, 등무간연, 소연연, 증상연이다.

 

먼저 인연이란 원인, 특히 가장 필수적이고 일차적인 원인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한 겨울인데도 내 방의 창가에 있는 화분에서는 나팔꽃의 줄기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햇볕이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나팔꽃 씨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줄기가 터져 나온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경우에 나팔꽃의 씨를 인연이라고 한다. 이처럼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조건은 필수적인 원인이므로 친(親)인연 또는 정(正)인연이라고도 불린다.

 

유식학의 관점에서는 씨앗, 즉 종자와 함께 현행을 인연이라고 한다. 제출 또는 연출을 뜻하는 현행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양태로 드러내거나 지식의 

원천이 될 기억으로 잠복시키는 의식 활동을 의미한다. 종자와 현행이라는 인연이 다른 세 가지 연과 특히 다른 점은 그 자체가 직접 변화하여 결과가 된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볍씨가 쌀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토양과 수분이 필요하므로 토양과 수분도 쌀의 원인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쌀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므로 인연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볍씨가 직접 변화를 겪으면서(이 변화의 과정이 공능차별이며 현행이다) 쌀로 바뀌지만, 토양이나 수분이 직접 쌀로 바뀌지는 않는다. 토양이나 수분과 같은 쌀을 낳는 간접적인 조건으로서 증상연이라고 불리는 원인이다.    

 

 

*출처 : 알기 쉽게 풀어 쓴 불교 유식 '상식에서 유식으로' / 정승석 (정우서적)

*타이핑 : 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