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박남준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

미송 2014. 12. 25. 14:13

 

 

 

 

 

녁 무렵에 오는 첼로 / 박남준 

 

이상한 푸른빛들이 밀려오는 그 무렵

나무들의 푸른빛은 극에 이르기 시작한다

바로 어둠이 오기 전 너무나도 아득해서 가까운
혹은 먼 겹겹의 산 능선
그 산빛과도 같은 우울한 블루
이제 푸른빛은 더이상 위안이 아니다

그 저녁 무렵이면 나무들의 숲 보이지 않는

뿌리들의 가지들로 부터 울려나오는 노래가 있다

귀 기울이면 오랜 나무들의 고요한 것들 속에는

텅 비어 울리는 소리가 있다

 

그때마다 엄습하며 내 무릎을 꺾는 흑백의 시간

이것이 회한이라는 것인지

산다는 것은 이렇게도 흔들리는 것인가

이 완강한 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

 

나는 길들여졌으므로 그의 상처가 나의 무덤이 되었다
검은 나무에 다가갔다
첼로의 가장 낮고 무거운 현이 가슴을 베었다


텅 비어 있었다

상처가 깊다
잠들지 못하는 검은 나무의 숲에
저녁 무렵 같은 새벽이 다시 또 밀려오는데 

 

박남준 시인

출생 1957년 8월 30일 전남 영광군 

1984년 월간시인 '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

학력 전주대학교 영문학사

 

시인은 첼로의 가장 낮고 무거운 현에 가슴을 베었다 말한다. 그러나 어느 선승의 말처럼 아직도 베일 가슴이 남기는 했느냐, 아프게 하거나 감싸거나 모두가 네 안에 있는 것 아니었더냐,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릴케의 푸른 장미를 들고 올 아이 하나 기다리던 시절 있었다. 푸른 물살 속에서 마법의 빛을 기다리던 시절, 새벽이 푸르른 건 잿빛 저녁을 지나왔기 때문이라 생각을 했다. 억겁이 흘러도 난 그저 하루살이 꽃이라서, 그대의 여린 손일랑 베이지 않겠다 약속한 적 있었다. 내 낡은 시첩詩帖 어딘가에도 저와 닮은 소회所懷 한 점 있어……20100718-20141225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