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 김승일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숙제가 밀리면 그 숙제는 하지 않는다. 그것이 형의 방식. 형이라서 라면을 먹어, 역기도 들고, 찬송하고, 낮잠을 때리지. 형이라서, 형이라서 배탈이 났어요. 나는 학교에 늦게 간다. 하고 싶다면 너도 형을 해. 그러나 네가 형을 해도. 네가 죽으면 내 책임이지.
학교에서, 나는 농구하는 애. 담배피는 애. 의자로 후배를 때린 선배. 아버지가 엄마보다 늦게 죽을 줄 알았어. 자주 앓는 사람이 오래 사는 법이니까. 부모가 동시에 죽고, 이제 누가 화장실 청소를 하나? 형이라서 배탈이 났어요. 이십 분 간격으로 물똥을 눈다. 창피하게. 동생이 옆에서 샤워를 한다. 구석구석.
친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학교에 남아 침을 뱉는다. 구령대에서, 나는 침을 멀리 뱉는 애.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부모가 죽고 네 달이 흐른다.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동생이 뛰어온다. 변기에서 쥐가 튀어나왔어. 괜찮아. 내일부터 학교에 오자. 똥은 학교에서 누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된다.
동생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양아치였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깨달아버린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양아치보다는 학교에 가는 양아치가 더 멋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숙제가 밀리면 그 숙제는 하지 않는다. 그것이 형의 방식. 형이라서 라면을 먹어, 역기도 들고, 찬송하고, 낮잠을 때리지. 형이라서, 형이라서 배탈이 났어요. 나는 학교에 늦게 간다. 하고 싶다면 너도 형을 해. 그러나 네가 형을 해도. 네가 죽으면 내 책임이지.
학교에서, 나는 농구하는 애. 담배피는 애. 의자로 후배를 때린 선배. 아버지가 엄마보다 늦게 죽을 줄 알았어. 자주 앓는 사람이 오래 사는 법이니까. 부모가 동시에 죽고, 이제 누가 화장실 청소를 하나? 형이라서 배탈이 났어요. 이십 분 간격으로 물똥을 눈다. 창피하게. 동생이 옆에서 샤워를 한다. 구석구석.
친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학교에 남아 침을 뱉는다. 구령대에서, 나는 침을 멀리 뱉는 애.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부모가 죽고 네 달이 흐른다.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동생이 뛰어온다. 변기에서 쥐가 튀어나왔어. 괜찮아. 내일부터 학교에 오자. 똥은 학교에서 누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된다.
시작노트
친구랑 내가 사고를 쳤다. 큰 사고였다. 돈이 순식간에 50만원이나 깨지게 생겼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우린 망했어. 우린 끝났어. 친구가 하루 종일 이 말을 되풀이했다. 자꾸 망했다고 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야 될 것 아냐. 너는 너희 엄마한테 돈을 빌려. 나는 우리 엄마한테 빌릴게. 나중에 효도하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된다. 나는 이렇게 마지막 문장을 찾았다.
김승일 1987년 과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재학.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감상>
시인의 '같은 부대 동기들' 을 두 달 전에 읽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입이 째지게 입아귀가 시리게 웃었다. 김승일을 읽으면 나는 첫째 아들(그 애는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이 그립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들은. 시인과 이름도 비슷한 그 녀석 정말로 '엄마가 있어서 궤안아' 할까. 가정도 사회도 불구인 채로 살아가는 황막한 21세기에 형아로 산다는 거. 부담을 시로 노래한다는 거. 스무 네 살 랩송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서, 또 경쾌한 시라서 웃는다. 실컷 웃다 담엔 내내 울고 싶어지는 시. 우수와 해학의 과녁을 동시에 명중시킨 88세대의 글에 감동을 먹는다. 만약 내가 메일이라도 날리면 시인은 ‘아줌마 왜 이러세요, 맛있게 드셨으면 얌전하게 돌아 가시징..“ 할까. 뭐 하여간 그건 상상이고. 알까 모를까 모를 김승일 시인에게 어스름 저녁 별별 노래 가운데서 야호를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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