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 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는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 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煙氣)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21세기, 탐욕스런 권력이 빌딩 꼭대기에 붙은 전광판에서 반라(半裸)의 여성이 현대자동차 옆에 착 달라붙은 광고로 번쩍일 때, 삼성이 출시한 스마트폰에 열광하여 사람들이 조막만한 기계에 머리를 들이박고 키판을 두드릴 때,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쳤느니 상승곡선을 긋느니, 주식시장의 코스닥 지수가 몇이고 펀드의 수익률이 어떻고 하는... 그러다가 이 모두를 통째로 거덜 낼 백령도와 연평도의 남북군사 충돌이 중국과 미국을 축으로 하는 동서의 군사대결로 비화되어, 미국 항모전단이 한반도 서해에 출현하고 중국이 군사훈련으로 맞대응하여, 이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 그것도 핵전쟁을 운운하여... 그러다가 설마 전쟁까지야 하며 스스로를 위안 하며...
이 어지럽고 정신없는 21세기 한 모퉁이에서 생활비가 아닌 겨우 생계비에 목줄을 단 나는, 문득 어디론가 치닫고야 만다.
저항이 그립다. 정신이 그립다. 가난해도 굶어도 죽어도 좋으니 내 마음 새록새록 들판의 싹이 되고 싶어, 청명한 울음 떨어뜨리는 새가 되고 싶어, 차라리 비극이라도 움켜쥐고 싶다.
가자. 가자. 암흑의 시대를 횃불처럼 살다간 그들에게 달려가자. 일본에게 짓밟힌 조국을 구하려 저 만주벌판을 혹독한 시베리아 벌판을 끝도 없는 중앙아시아를 유랑하던 문인들을 찾아가자. 감옥에서 치열하게 얼어 죽은 시인들을 찾아가자.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는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한국문단의 이단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문학수업에 있어서 친일문인들은 아예 무시되기 때문이다. 이광수, 김동인, 최남선, 모윤숙, 노천명, 김팔봉, 채만식, 이효석, 정비석, 유진오, 백철, 최재서, 서정주 등등, 기라성 같은 한국문단의 별들이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우리 한글 문학의 시조라면 <홍길동전>을 쓴 허균을 들겠지만, 서구의 근대문명을 받아들인 시점으로 치자면 역시 오늘 한국문학의 효시는 <혈의 누>를 쓴 이인직일 것이다. 이후로 수많은 문인들이 명멸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문학은 서구의 사생아다. 아비 없는 자식이다. 한국문학의 효시인 이인직은 이완용의 비서로서 일본의 앞잡이였다. 일정시대에 활동했던 수많은 문인들 중에서 변절하지 않은 자가 몇이나 되었던가, 한국문단은 조국과 민족혼이 상실된 토대에서 비극적으로 태어났다. 그들에게는 조상도 가문도 혈통도 없었다. 오로지 모두가 주인이 아닌 “종의 자식”들 뿐이었다.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이광수는 <심적신체제와 조선문화의 진로: 每新 40. 9. 4>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신념을 가진다. 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 버려야 한다고. 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永生)의 유일로(唯一路)가 있다고. 그러므로 조선인 문인 내지 문화인 심적 신체제의 목적은 첫째로 자기를 일본화하고 둘째로는 조선인 전부를 일본화하는 일에 전 심력을 바치고 셋째로는 일본의 문화를 앙양하고 세계에 발양하는 문화 전선의 병사가 됨에 있다. 조선 문화의 장래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하기 위하여 조선인은 그 민족감정과 전통의 발전적 해소를 단행할 것이다. 이 발전적 해소를 가리켜서 내선일체라고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위와 같은 글을 읽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1936년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의 통치가 더욱 한반도를 옥죄어 오자 한국문인들은 앞을 다투어 변절했고, 스스로 민족혼과 조상과 혈통을 헌신짝 내버리듯 팽겨 치고 말았다. 한국단편소설의 태두라고 일컬어지는 김동인의 고백을 하나 더 들어보자. <감격과 긴장: 每新 42. 1 21>
<국가(일본)가 명하는 일은 다 못하나마 국가가 “하지 말라”는 일은 양심적으로 피하련다. 국가가 “좋다”고 인정하는 일은 내 힘자라는 데까지 하련다. 이미 자란 아이들은 할 수 없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의 별개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려 한다. 대동아전쟁이야말로 인류역사 재건의 성전인 동시에 나의 심경을 가장 엄숙하게 긴장되게 하였다.>
문학의 꽃은 붓을 꺾는 일이다. 명작은 꺾어진 붓자루에 있다. 직필(直筆)로 흘러내리던 황하가 곡필(曲筆)의 장강을 만났을 때는 그 흐름을 그쳐, 스스로를 꺾어버리는 강개한 기상이 바로 문학정신이고, 암담한 조국의 폐허를 살다간 문인들이만이 갖는 역사 정신이다. 그것을 일컬어 후대의 귀감이라고 하던가. 문인이란 후손들 삶의 지표이며 길목을 잡아주는 이정표라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인 것이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일정시대 조선 문인은 지역적으로 세 부류로 나뉜다. 국내에는 일본유학파가 중심이 된 ‘경성문인’들이 있고, 국외에는 전답을 빼앗겨 쫓겨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 만주지방으로 이주한 ‘망명문인’들, 그리고 스탈린에 의해서 연해주 지방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유랑문인’들이 있다. 해방 후에 경성문인 집단은 우리의 문단의 주류를 이루었고, 만주의 망명문인들은 대부분 북한의 문단을 형성했으며, 유랑문인들은 그 흔적이 모호하여 이들의 발굴과 조명이 시급한 형편이다.
망명문인과 유랑문인들은 국내의 경성문인들과는 달리 일본의 직접적인 압제를 덜 받고 조국광복의 염원과 민족혼이 투철하여 그들의 생애와 작품이 일치를 이룬다. 거의 모두가 저항문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쉽게도 이들의 전통이 우리 한국문단에 계승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해방 후 남북분단이 큰 원인이겠지만 친일분자들이 남한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한 탓도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문학은 그 전통과 핏줄이 모호한 채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 어디론가 흘러가는 중이다. 이것이 종의 자식들이 세상을 사는 법이다.
일본의 패망 후, 한국문단에는 저항시인의 바람이 불었다. 너도 나도 모두가 일제에 적극적 소극적으로 저항했고 그런 작품을 발표했다고 나섰다. 하루아침에 모든 문인들이 독립투사로 변모된 희한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광수 같은 사람도 “자신의 변절은 문인들을 위하여 일부러 택한 것으로서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며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과연 누가 저항시인이었는가, 진정 조국의 암담한 현실과 광복의 희망을 떳떳하게 노래했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혹자는 말했다. 그런 검열과 탄압과 감시체제하에서 그나마 살아남으려면 변절로 자신을 위장해야 했다고, 또한 문학과 작가의 생애는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 혹여 변절자라 해도 그 문학적 업적은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이다. 오늘까지 변절자들을 옹호하는 이런 논리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꺾어야 할 때 붓을 꺾지 않는 자는 파렴치하다. 후손들의 심판대는 냉혹하기 이를 데 없어, 민족에 대한 배신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그 업적 또한 부인되어 마땅한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을 후대의 반면교사로 삼고, 또한 민족을 배신한 결과를 엄정히 함으로써 후대에는 다시 이런 자들이 출현하지 않게 미리 방지해야 한다. 즉 민족의 기상을 제대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이며 시인인 오세영 교수는 일정시대의 저항시인으로서 딱 3명의 작가를 꼽는다. 소위 저항시인 3인방으로서 심훈, 이육사, 한용운이다. 이들은 그들 생애와 문학 작품이 일치하는 소위 앞뒷판이 다르지 않은 시인으로서, 심훈은 한민족의 혼을 불러내는 통렬한 시를 쓰고 소설 <상록수>를 발표하여 민족계몽에 앞장서다가 일제의 집중 감시와 탄압을 받던 중, 열병으로 삼십 중반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육사는 의열단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조선군관학교 제1기생으로 졸업하고, 상해와 서울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북경 감옥에서 옥사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만해 한용운은 한국불교를 일본 조동종에게 통째로 넘기려던 승려들을 질타하고 암담한 현실을 필설로 휘두르다가 굶어 죽고 만다.
어느 날 만해는 육당 최남선의 문 앞에 거적을 깔고 대성통곡을 했다. 지나던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육당이 죽었다는 말이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만해는 울면서 대답했다.
“자기 이름을 버리고 일본 이름을 이마에 붙인 사람이 어찌 죽은 자가 아니겠소?”
제 이름을 지킨 자.
암울한 변절의 시대에 홀로 고고했던 만해였다. 당시에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일제는 사람들을 민적에 올리지 않았으며 민적이 없으면 배급을 타 먹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만해에게는 민적이 없었다. 비렁뱅이로 나설 수밖에 없던 만해는 인간이 아니었다. 동물에게 무슨 정조가 있는가? 조국과 민족혼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 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좌절된 지사는 그 슬픔이 스스로에게로 향했다. 세상을 두드리는 온갖 말과 글들이 길을 잃었고 거리에는 변절자들이 득실대어 히히덕거렸다. 세상에는 과연 길이 있는가, 정의가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 조선인들이 부르짖는 모든 윤리와 도덕, 그리고 법률은 오로지 일본 천황을 위한 제식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 좌절 속에서 만해 한용운은 죽음을 떠올렸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려는 꿈도 꾸었고 이도저도 아닌 세태를 포기하여 술에 젖어 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煙氣)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 달이 떴다.
이름을 파느니 굶어 죽기로 작정한 만해는 그곳의 냉골에 등짝을 붙이고 있었다. 폐허의 시대를 종교인으로서 사상가로서 독립투사로서 또한 문인으로 살던 그는 달에 고개를 돌려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만해는 과연 무엇을 보았는가?
<당신을 보았습니다>는 이 시의 제목이며 화두다. 비럭질을 하다가 수모를 당할 때, 저항하고 돌아 설 때, 그리고 망설일 때, 그는 당신을 보았다고 말한다. 누구는 광복된 조국을 봤다고 또 누구는 부처님을 봤다고 해석하지만, 이 시를 몇 십 년 전 내가 어렸을 때 본 이후로 나는 줄곧 만해가 무엇을 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자본주의 권력이 가난한 자를 더욱 빈곤과 죽음으로 몰아넣고 거리에 자본에 취한 자들의 비굴한 웃음이 넘치고 매스컴에 거짓과 기만의 말과 글들이 춤추며 전쟁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술자리를 오가서, 내가 극도의 어지럼증과 빈혈에 시달려 눈앞이 뿌옇게 변했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허깨비인 줄은 모르지만 무언가 눈에 비치는 그 무엇, 그 무엇이 과연 한용운이 봤던 <당신>이란 말인가?
21세기, 이 시대에 나는 아직도 한용운의 화두를 쫒고 있다.
이정문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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