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파울로 코엘로 <승자는 혼자다>

미송 2011. 6. 3. 21:09

 

무대 위에서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를 결정하는 사람.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알기에 자신의 외모 따위엔

신경 쓸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의 특권을 누리고 만인의 선망을 받고 있다고 믿는

꼭두각시들의 줄을 당기는 사람.

그 줄을 싹둑 잘라버려 꼭두각시들이 생명과 힘을 잃고

굴러떨어지게 만드는 사람.

 

이 모든 건 충분히 예상한 것들이다. 너무도 뻔한 풍경이었다.

 

 -파울로 코엘로 <승자는 혼자다> 중에서 

 

 

 

 

 

 

‘친애하는 한국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승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제겐 여러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파울로코엘료‘

<승자는 혼자다> 라는 파울로 코헬료의 책 첫 페이지에 있는 그가 직접 쓴 글이다.

 

상상력 넘치는 작가치고는 참 진부한 표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읽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니. 너무 빤한 입술만 적신 이야기 같고

제겐 여러분이 있습니다는 책을 팔아 주는 데에 대한 백화점 영업사원의

인사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문학동네 출판사 제위께서도 <이따시만한> 짓은 안했으면 좋겠다.

아, 나만 그럴까? 다른 사람들은 이런 가볍기 그지없는 모션을 좋아할까?

 

솔직히 이야기 해보자면 아주 자세히 읽은 책은 아니다. 슬렁슬렁 바람처럼 가볍게,

그래도 끝까지 읽기는 했다. 이유는 하나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들이 다 칸에서 만난다.

훌륭한 사업가이면서도 아주 잔인한 살인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칸에서 출세하고픈 영화배우와

어린 모델, 살인자의 아내를 사랑하는 카의 수퍼클래스에 속해 있는 디자이너

 

살인자의 논리는 극과 극을 아우르는 두 가지다.

 

떠나버린,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상을 파괴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는 사람을 죽이면서 사람의 존재가 ‘세계’라고 여긴다.

처음 본 여자를, 그가 ‘세계’라고 여긴 여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면서

그가 꿈꾼 것은 아내가 돌아오면 그녀와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여러 가지 복선의 장치가 있긴 하지만,

사이가 너무 넓다.

 

그보다 나의 관심은 소설의 한 모티브로 나오는 칸의 레드카펫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카펫이 아닌 시간과 운이 좌우 하는 운명적인 장소였다.

수많은 기자들의 시선을 끌어야만 하는!

자신 보다 더 유명한 스타와 함께 절대 카펫을 밟아서는 안 되는 절대 절명의 운명적 시간!

 

수퍼클래스가 속해 있는 파티에 초청받기도 어렵지만

이미 속해 있는 사람들도 두려움과 허망에 떨고 있다.

전부 다 그러랴만,

파티가 주는 허황됨, 영화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감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돈의 논리,

그저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절차탁마 하는 인간들의 군락은 제법 잘 그려진 듯하기도 하다.

 

오늘 아침 신문과 인터넷도 온통 칸의 이야기다.

칸을 뇌쇄 시켰다는 블랙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사진을 클맄했더니

세상에 그 모델의 이름은 없고 한 모델이란 기사가 전부였다

당연히 승자는 혼자다에서 가브리엘라가 연상이 됐다.

호오, 정말 그렇구나.

 

그리고 우리 영화 ‘시’가 혹시 수상을 이란 추측성 기사가 도배되어 있다.

시는 개봉 둘째 날 조조시간에 혼자 가서 본 영화다.

감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마음속이 풍성해지지는 않았다. 

 다가오는 여러 가지 미덕이야 이창동감독쯤이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시’라는 한 단어의 제목이 주는 그 깊고 은일한 매혹에 비하면

시를 찾아 나서는 주인공 ‘미자’는 좀 가벼웠다. 나이에 비해 너무 고와서였을까?

정말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시에 대해 가볍게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은 그렇다.

가슴을 저리게 하는 장면, 놀람, 은유와 치환,

특히 늙음에 대한 연민으로 돌보는 남자에게 비아그라를 먹게 하고

목욕탕 문을 닫는 미자. 윤정희만큼 오래된 김희라의 눈빛 연기가 돋보이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한 미자가 김희라에게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던 알레고리는

더없이 멋있었다. 사건의 치환 속에서 보여지는 다층적 삶의 모습은

정말 각본과 감독을 한 이창동의 세련된 어법처럼 보였다.

 

파울로 코헬료의 소설에 의하면 칸은 적어도 부드럽고 섬세한,

배려하는 인간성이 흐르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사라지고 대신 사람이 지닌 탐욕과 위선 그리고 겉 껍질만 왕성하며

그것만을 추구하는곳이다. .

그런 칸이 언제나 수상작으로 뽑는 것은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와 인간에 대한 고찰이니,

 

그 참,

‘시’도 그런 의미에서라면 굉장히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다.

 

승자는 혼자다. 2

승자는 혼자다. 2

 

*첫번째 사진의 나오미 캠벨은 소설속의 재스민을 연상시키고

 두번째 사진 이름없는 모델의 환히 웃는 모습은 소설속의 가브리엘라가 저절로 연상된다. 

 이글은 그녀의 사진밑 기사의 이름없는 '한모델'을 읽고난 뒤 썼다.     


- 위정의 서정채록(抒情採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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