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역 청소부의 한달 월급에 대하여 / 최종천
올해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겠다는
지원비가 드디어 한달에 100만원씩
1200만원으로 올랐다, 용렬하게
이 몸도 신청했다, 문득 화곡역 청소부에게
한달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왜 물어보고 싶었을까?
63만원이라고 했다.
시집도 내고 목돈으로 1200만원이나 벌었으니
행복은 역시 능력있는 사람의
권리지 의무가 아니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배때지가 꼴린다, 내가 못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의 이 말은 은유도 비유도 아니다
예술은 부를 창출하는 게 아니다, 그 청소부는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하고도 그것밖에 가지지 못하나
예술은 허구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시인만이 시인이라고
단언하기는 그렇지만, 시인들이여
행복은 권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다면 그대는
시인이 못되리라, 행복은 누구나의 의무다
우리의 행복함은 곧 우리가 선함이요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악하기 때문이라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원리는,
화곡전철에서 하루종일 허리 구부리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월급이 63만원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최종천이란 시인이 좋은 시를 지었구나! 쉬운 말로 그러나 경박하지 않은 무게감으로 가슴에 오래 남겨질 시를 건졌구나! 나는 감동한다. 그(혹, 그녀일까)의 시를 타이핑한다. 몇년 전 창비에서 출간된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시집 안에는 다시 펼칠때 마다 별빛같이 영롱한 시편들이 눈에 띈다. 때로는 한편의 시가 경전보다 엄숙하게 남겨진다. 나는 읽고 더 읽는다. 시란 쉽게 말하면서도 가슴을 후리는 주제가 있을 때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겠단 생각을 정리한다. 부활절 아침에 불렀던 이사야 53편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라는 가사가 연상 된다.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고 있는 현실에 귀가 열리기 시작한 건 불과 2007년도 부터의 일. 그 아웃사이더(?)들의 대열에 끼었던 나는 또 얼마만큼 정직했던가, 모르고 지은 죗값을 치러냈던가. 홧김에 저지른 서방질은 아니었다. 과히 40년이란 시간의 검증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종교를 버렸다. 조직의 야누스에 대한 양심선언이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고 안 믿으면 무조건 벌 받고, 하는 그들의 이분법적 교리와 미친 논리를 나는 꾸준히 경멸한다. 그래 니들끼리 그 복(인지 저주일지는 가 봐야 알겠지)실컷 받아 잘 먹고 잘 사세요! 지 행복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남의 불행은 다 게으른 탓이라고 손가락질 해대는 그들의 주둥이에 총알을 날리려다 말았다. 참는 길은 스스로 떠나는 길과 동일했다. 이는, 일종의 자기 고백적 감상이겠으나 시를 읽으며 한사코 일으키는 내 안의 회한이며 회심인 것! <오>
신이 감춰둔 사랑 / 김승희
심장은 하루종일 일을 한다고 한다
심장이 하루 뛰는 것이
10만 8천 6백 39번이라고 한다
내뿜는 피는 하루 몇천만 톤이나 되는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 4천 9백 6십만km인데
하루 혈액이 뛰는 거리가
2억 7천 31만 2천km라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두 번 갔다 올 거리만큼
당신의 혈액이 오늘 하루에 뛰고 있는 것이다
바로 너, 너, 너! 그대!
그렇게 당신은 파도를 뿜는다
그렇게 당신은 꺼졌다 살아난다
그렇게 당신은 달빛 아래 둥근 꽃봉오리의 속삭임이다
은환의 질주다
그대가 하는 일에 나도 참가하게 해다오
이 사업은 하느님과의 동업이다
그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발견했다.
근친상간만큼이나 징그러운 제안이었을까. 끓는 피 하나 담보로 내걸었던 젊은 날의 빅딜. 신은 물론 한 치의 오차도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오만한 내 앞을 스쳐갔다. 그때의 외면이 그 분의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건 꽤 늦은 시간의 일이지만... 왜 소유할 수 없는 이데아는 크고 속물같은 사물계는 작다 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심장의 박동과 젖가슴의 우주적 율동을 자주 감지하지 않는가 너는. 지금이라도 신과 동업하려면 사치스럽고 벌레같은 인간의 피를 거절할 수 없음을 수용해야 할 텐데.
비망록2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누가 남겨놓앗을까
정거장 옆 낡은 공중전화에는
통화는 할 수 있으나 반환되지 않는 돈
60원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어디로도 반환되지 않을 것이다
이 봄
긴 병 끝에 겨울은 가고
들판을 밀고 가는 황사바람을 따라
부음은 왔다 어느 하루
민들레 노란 꽃이
상장(喪章)처럼 피던 날 너는
어지러이 마지막 숨을 돌리고
나는 남아 이렇게 안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떠도는 홀씨 환한 손바닥으로
받아보려는 것이다
저 우연한 단돈 60원이
생의 비밀이라며
이미 써버린 지난 세월 속에서
무엇과 소통하고 무엇이 남아
앞으로 남은 시간을 견디게 할 것인가
산다는 것이 통화는 할 수 있으나
반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환되지 않는 것조차 남기고 간다는 것을
너는 알았을 것이다
나만 몰랐을 것이다 호주머니 속의 두 손처럼
세월이 가고 다시 이 자리에 섰을 때
무엇이 달라져 있을 것인가
나 또한 바람 속에 흩어져 있을 것이고
흩어진 자리에 민들레꽃 한두 송이
너를 기억할 것이다 안녕, 사랑아
간밤에 우울톤(배경색이 주로 갈색과 검은 연두)의 블란서 영화를 본 탓인지, 반환되지 않는 것 들이 더 슬프게 보인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을 가진 블란서 란 나라는 영화 속 남녀의 격렬하고도 나른한 포즈처럼 혼돈스러울까. 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알 수 없는 동물이 여자라고 호킹 박사가 말했다는 데(그는 어찌 루게릭병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 번째 부인까지 진도가 나갔는지), 영화 속 자살녀는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였다. 영화와 시를 연상하니 부요함이 인간에게 좋은 결과만을 주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죽었을 때 민들레 한두 송이라도 나를 기억해 줄지, 부끄럽지 않게 민들레에게라도 민얼굴을 드밀 수 있을지.
나는, 웃는다 / 유홍준
깜박,
눈을 붙였다
깼을 뿐인데 누가
내 머리를 파먹은 거야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누가 내 눈동자를 쪼아먹은 거야 수박덩이처럼
누가 넝쿨에서 내 꼭지를 잘라낸 거야 배꼽이
빠지도록 웃는다 숟가락으로 파먹다 만
뒤통수를 감추고 웃는다
이렇게 파먹힌 얼굴
이렇게 파먹힌 뒤통수로
이렇게 쪼아먹힌 눈 이렇게 갈라터진 흉터로
누가 내 뒤통수에 빨간 소독약 묻힌 솜뭉치를 쑤셔넣다 놔둔
거야
누가 내 웃음에 주삿바늘을 꽂아놓은 거야 누가
내 웃음에 링거 줄을 꽂고 포도당을 투약하는 거야
누가 바퀴달린 이 침대를 밀며 달리는 거야
복도처럼 아득하게 웃는다 미닫이처럼
드르륵 웃는다 하얀 시트가 깔린 이 수술대 위에서
배를 잡고 웃는다 이 흉터 같은 입술
이렇게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흉터 같은 입술로, 누가
흉터 위에
립스틱을 바르는 거야
누가 흉터끼리 뽀뽀를 시키는 거야.
시크하고, 코믹하고, 전위적이고, 원효대사적이다. 시인의 눈빛만큼 우수적이고 해학적이고 그러나 결론은 지독히 슬픈 것이다. 잉! 그렇담 지난 날 우리 뜨거웠던 키스 아니 뽀-들도 다? 그렇고 그런 것들..훌쩍~! 명진스님이 웃고 있어도 눈물나는 세상 그래도 웃는다 고 그랬던가. 왜 자꾸 웃으시냐고요...그니까 그게 쫄지 않으려구..요? 쩌억 갈라서 먹는 수박을 어찌 똘팍에다만 비유할까마는, 분석하자 들면 우리는 그다지 맛없는 과일, 아찔한 현기증의 산물일 뿐이겠지, 그렇겠지, 그렇겠지만…… <오>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바 스트리트마터<가치> 외 3편 (0) | 2012.01.17 |
---|---|
심보선<식후에 이별하다> (0) | 2012.01.13 |
박상우 <그곳에서는 바다가 길이 된다> (0) | 2012.01.05 |
박상우<자유로에는 자유가 없다> (0) | 2011.12.31 |
한용운- 군말 (0) | 2011.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