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에바 스트리트마터<가치> 외 3편

미송 2012. 1. 17. 18:22

 

 


       

      사진- by, ssun

       

       

      가치

       

      삶에서 진정으로 값진 것들은 모두 값이 없다네

      바람과 물, 그리고 사랑처럼

      삶을 값진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모든 값진 것들에는 값이 없다면

      그 답을 우리는 어릴 적 가난한 시절에 배웠네

      어릴 적에 우리는 그냥 모든 것을 즐겼다네

      공기를 공기의 가치에 따라

      물을 하나의 생명수로서

      또한 탐욕이 깃들지 않은 사랑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였네

      이제 우리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삶에 이끌려가고

      정신없이 시간을 들이마시고 있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의무와 무거운 짐을 지운다

      그리하여 삶은 그것을 너무 값싸게 여기는 이들에게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네. 

       

      - 에바 스트리트마터(중세 독일의 여류시인)

       

       

      어디로 간 걸까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은 어디로 간 걸까

      새가 가득 내려앉던 숲은

      저녁의 고요함은 어디로 간 걸까

      우리는 계절의 아름다운 변화를 그리워하는 최후의 낭만

      주의자들일까

      어린 시절 냇가에서 꺾던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얀 눈은

      그것들은 이제 그림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기억해 두자

      지구의 얼굴은 우리의 얼굴과 같은 것

      우리는 이 소행성의 여행자에 불과하며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음을.

       

      - 이반 라코비코 크로아터(유고슬라비아 화가)

       

       

      내가 누군지 말하라

       

      나는 햇빛에 비추이는 티끌

      나는 둥근 해

       

      티끌에게는 가만 있으라고

      해한테는 움직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침 안개 그리고

      저녁의 숨결

       

      작은 숲 위로 부는 바람, 벼랑에

      부딪히는 파도

       

      모든 것인

      당신이여, 내가 누군지 말하라

      내가 당신이라고

      말하라.

       

      - 잘랄루딘 루미(13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

       

       

      세상을 떠나는 자의 시

       

      내가 내일 떠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기에 도착하고 있으니까

       

      자세히 보라, 나는 매순간 도착하고 있다

      봄날 나뭇가지에 움트는 싹

      새로 만든 둥지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아직 어린 날개를 가진 새

      돌 속에 숨어 있는 보석

      그것들이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지금도 이곳에 도착하고 있다

      웃기 위해

      울기 위해

      두려워하고 희망을 갖기 위해

      내 뛰는 심장 속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탄생과 죽음이 있다

       

      나는 강의 수면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하루살이다

      나는 봄이 올 때 그 하루살이를 먹기 위해 때맞춰 날아오

      는 새이다

       

      나는 맑은 연못에서 헤엄치는 개구리이며,

      또 그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 조용히 다가오는 풀뱀이다

       

      그러니 내일 내가 떠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기에 도착하고 있다

       

      그 모든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달라

      내가 나의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들을 수 있도록

      내 기쁨과 슬픔이 하나임을 알 수 있도록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달라

      내가 잠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내 가슴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 틱낫한  

       

      류시화, 시집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