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그의 곁에 소냐가 나타났다. 그녀는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와 그와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언제나 초라한 낡은 외투를 걸치고 녹색 숄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직 병색이 남아 창백하고 여위어 보였다. 그녀는 반가운 듯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언제나의 버릇처럼 머뭇머뭇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곤 했다. 어떤 때는 그가 손을 뿌리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듯 전혀 손을 내밀지 않는 적도 있었다. 그는 언제나 마지못한 듯 그 손을 잡으며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하곤 했었다. 때로는 그녀가 찾아온 동안 굳게 입을 다물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소냐는 그를 두려워하면서 깊은 슬픔에 잠긴 채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흘끗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단둘뿐이었으며, 그들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수는 그때 돌아앉아 있었다.
어떻게 그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별안간 무엇인가가 그를 휘어잡고는 그녀의 발밑에 내동댕이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그녀의 무릎을 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처음 한 순간, 소냐는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오돌오돌 떨면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한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무한한 행복이 반짝였다. 그녀는 깨달은 것이다. 이 사나이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두 사람은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으나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두 사람 다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 병들어 지친 창백한 얼굴에는 새 삶을 향하는 가까운 미래의 갱생, 완벽한 부활의 아침 햇살이 이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랑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서로가 끝없이 솟는 샘물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그는 다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변증법과 같은 이론 대신에 삶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중략]
그녀 역시 이날은 하루 종일 흥분하여 밤이 되자 다시 병이 났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행복이 두렵게 느껴질 만큼 행복에 잠겨 있었다. 7년, 겨우 7년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행복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가끔 두 사람은 7년을 7일로 여기게 되었다. 그는 이 새로운 생활이 결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사들여야 하며, 그 생활을 위해서는 앞으로 커다란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한 인간이 서서히 갱생의 길을 더듬어 가는 이야기, 그가 점차 새로운 인간이 되어 가는 이야기, 그래서 그를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지금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났다.
- '죄와 벌' 마지막 장면.
'좋은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아는 것은 모두를 아는 것 (0) | 2012.05.04 |
---|---|
시집 속에서 (0) | 2012.05.01 |
스피노자의 명언 (0) | 2012.01.31 |
말의 어미가 된다는 것 (0) | 2012.01.23 |
황규관 - 여기가 강정이다, 여기를 걸어라! (0) | 2012.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