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시집 속에서

미송 2012. 5. 1. 12:57

나는 한 작가에 대한 평판에 있어 일거에 예기치 못했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여기지 않는다. 차라리 성공이란 이전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쳤던 작가의 갖가지 역량이 산술적 비율에 의해 드러난 결과이다. 즉 수많은 작은 성공들이 서서히 결집된 것이기에, 이 안에서 우연성 같은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운이 없어”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직까지 충분한 성공을 축적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이런 성공의 속성을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10쪽)

 

자유와 운명은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 같아 보이지만, 이는 오직 유일한 인간의 의지를 가까이서 본 것과 멀리서 본 것의 차이일 뿐이다. (11쪽)

 

그러니까 유행이란 인간의 머릿속에 자연적인 생활이 모아놓은 상스럽고 세속적이며 추잡한 모든 것을 넘어서는 이상에 대한 취향의 증후, 자연의 숭고한 변형, 또는 차라리 자연을 개혁하려는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시도로 여겨져야 한다. 나는 모든 유행은 매력적이라는 점(말하자면 상대적으로 더 매력이 있다는 것), 각각의 유행이란 많든 적든 행복에 겨운 미를 향한 새로운 노력이자, 어떤 이상에의 점진적 접근이라는 점(이를 통해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 정신에 쉼 없이 쾌감을 준다) 등을, 그 근거를 대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지적했었다. (67~68쪽)

 

즉시 기도할 것/몸치장하기 전에/그리고 즉시 일할 것/몸치장하기 전에(100쪽)

 

 

샤를 보들레르 지음 | 이건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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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공손하게 대하며,
오랜만에 만나서 매우 기쁘다고 말한다.

 

[……]

 

문장을 잇다 말고 우리는 자꾸만 침묵에 빠진다.
무력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인간들은
대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뜻밖의 만남」 부분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인 특유의 전복적인 시선은 쉼보르스카 시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쉼보르스카는 이러한 시선을 바탕으로 시란 장르에서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고정관념들을 보기 좋게 배반하고 있다.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애절한 사랑도 결국엔 언젠가는 소멸되거나 변질되고 마는 순간적인 열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시 「사진첩」은 이에 대한 적절한 예이다.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한때 일어난 일은 그저 그뿐, 신화로 남겨질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로미오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줄리엣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
눈물로 얼룩진 편지에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승을 등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장미 꽃다발을 든
평범한 이웃 남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고풍스러운 옷장 안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없다!

 

―「사진첩」 부분

 

 

시를 좋아한다는 것―
여기서 ‘시’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불확실한 대답들은
이미 나왔다.
몰라, 정말 모르겠다.
마치 구조를 기다리며 난간에 매달리듯
무작정 그것을 꽉 부여잡고 있을 뿐.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전문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 중에서

 

‘나는 모르겠어’라는 두 마디의 말을 나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말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 날개는 우리의 삶 자체를, 이 불안정한 지구가 매달려 있는 광활한 공간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내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만들어 줍니다. 만약 아이작 뉴턴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사과가 그의 눈앞에서 우박같이 쏟아져도 그저 몸을 굽혀 열심히 주워서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마리아 스쿼도프스카 퀴리가 자신에게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월급을 받고 양갓집 규수들에게 화학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남아 있었을 것이고, 그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에게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했고, 결국 이 말이 그녀를 두 번씩이나 이 곳, 영혼의 안식을 거부한 채 영원히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노벨상’이라는 선물로 보답해주는 스톡홀름으로 인도했습니다.

 

시인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쓴 작품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또다시 망설이고, 흔들리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이 작품 또한 일시적인 답변에 불과하며,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통감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 번 더,’ 또다시 ‘한 번 더,’ 시도와 시도를 거듭하게 되고, 훗날 문학사가들은 어떤 시인이 남긴 계속되는 불만족의 징표들을 모두 모아 커다란 클립으로 철하고는 그것들을 가리켜 ‘시인이 일생 동안 쓴 작품’이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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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시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뒤표지 시인 산문]
오늘 밤, 세찬 빗줄기를 뚫고 건너온, 물방울 속에 뭉쳐 있는 당신의 전언을 펼쳐 읽습니다.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의 말들은 죄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놓인 순수함을 보지 못하는군요.

세계의 단단한 철판 위에 이성의 흔적을 새기는 사람들. 물의 말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틈새에서 잠들고 자라나는 어린 영혼을 보고는, 아이, 불결해, 눈살을 찌푸리기만 하네요.

하지만 물방울로 이루어진 당신의 말은 그 영혼을 투명하게 비춰주는군요.

물방울로 오로지 물방울로 싸우는 당신. 물방울의 정의를 행사하는 당신. 판결과 집행이 아니라 고투와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

당신은 말하죠. 인간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발명했어요. 사랑을 제외하고요.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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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말한다, ‘나는 긴장하고 있어요’

 

윤후명은 소설집 어디에서도 그 흔한 꽃말 한 번 언급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붙여놓은 꽃말은 진짜 꽃의 말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원추리의 한자인 훤초(萱草)가 근심을 없애준다는 뜻”(「희망」)인 것처럼 꽃 이름의 뜻풀이가 이따금 보이긴 해도 그 역시 작가가 듣고자 하는 ‘꽃의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꽃의 말’을 얘기한다. 작가가 소설집을 통틀어 딱 한 번 ‘받아쓴’ 꽃의 말을 보자.

 

꽃들은 말한다, 나는 긴장하고 있어요. (「보랏빛 소묘(素描)」 p. 199)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던 꽃이 긴장하고 있단다. 작고한 시인 오규원이 꽃을 두고 ‘고통의 섬광’이라며 꽃의 상투성을 뒤엎은 사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꽃이 긴장하고 있다는 윤후명의 발언을 더더욱 가볍게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윤후명이 본 꽃은 ‘더 이상’일 수 없는 ‘바로 지금’의 상태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도, 더 이상 향기로울 수도 없다. 윤후명은 바로 그것을 존재의 극점(極點)이라 표현했다. 꽃들은 극점에 닿기 위해 무언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일까. ‘긴장’은 그야말로 더 이상일 수 없는 ‘꽃의 말’이겠다.

 

 

그것은 허공을 향한, 죽음을 향한 말이었다. 마지막은 아픔이나 혼수상태 속에 맞이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생생한 정신으로 죽음에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안 떠나려야 안 떠날 수가 없게 된 막다른 골목의 마지막 말. 어떤 위안도 소용이 안 닿는 말. 꽃 한 송이를 바치는 따위의 어설픈 짓거리로는 범접할 수 없는 말.
“어떡허니……”

「강릉/모래의 시(詩)」 p. 32~33

 

카페에서도 포클레인이 내다보였다. 모든 길은 포클레인의 길이었다. 바다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둑길도 사라졌고, 바닷물이 찰랑대던 집도 사라졌다. 나는 내 집 앞의 골목길도 잃어버렸다. 그 이름 ‘끝’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강릉/너울」 p. 59

 

 

또 만나자는 그 말만큼 간절한 말은 없었다. 헤어진 뒤에 또 볼 수 없는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또 만날 기약이란 없는 수많은 아픈 이별이 있었다. 그 만남들에게 만사 제쳐놓고 가장 절실한 것이 다시 만날 약속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가는 인사가 아니었다. 이승에서 진정 할 말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꽃의 말을 듣다」 p. 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