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김승일 -방관, 이이체 - 인간은 서로에게

미송 2012. 3. 29. 09:04

방관 / 김승일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형제는 화장실 청소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샤워를 할 때마다 바닥에 오줌을 누는 동생,

치약 거품을 천장에 뱉는 형, 바닥은 노란색 천장엔 파란 얼룩, 형제는 일주일 전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형은 매일 아침 운동화를 닦고 테니스를 치러 나가네. 아마 역기도 서른 번씩 드는 모양이야.

형이 끈을 다 묶고 현관을 나설 때까지 나는 일부러 코 고는 소리를 낸다. 형, 잘난 형, 형은 기도문도 여럿 암송할 줄 알지?

형의 중얼거림은 언제나 새하얀 한 켤레 신비.

 

강해지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성모상에 걸린 형의 묵주를 팔목에 치렁치렁 감고 방 안에 드러누우면.

어쩐지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 몸속 어딘가에서 힘이 솟는 것 같아. 커튼을 치고 현관문을 잠그며, 형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하루 종일 결연하다. 형은 동생을 때릴 때 찝찝하지 않아? 나 까짓 게 때리면 부끄럽지 않아?

싸울 때 부끄럽다니, 형제란 사내답지 않군. 나는 배시시 배시시, 입속에 고인 피를 세면대에 뱉는다.

 

타일 사이사이로 누런 십자가, 형이 변기에 앉아 똥을 누면서 양치질을 할 때 새파랗게 질린 구름, 나는 샤워를 하면서 오줌을 눈다.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형제는 왜 또 치고 박을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수치를 나눠 갖기 위해 싸운다는 것.

이것이 그들의 종교. 주먹이 까졌다. 창피하게.

 

 

계간 『시와반시』 2009년 가을호 발표

 

김승일 시인

경기도 과천에서 출생.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인간은 서로에게 신을 바친다 / 이이체

 

 

많은 이별을 겪다 보면

사랑이 이제 우리의 외곽일 뿐인 시간이 온다

 

내면이라니,

제 속만 헤집느라 상한 그 동굴 속

박쥐들처럼 흉터가 거꾸로 맺히고

살갗이 조금이라도 쓰라리면

마음의 사도들이 경을 왼다

 

밤의 언저리

성운(星雲)은 월식으로 흐르는 열외의 구름

 

작고 무거운 종들은 바깥의 가장자리만 가진 탓에

흩어지지 못한다

다 흩어지지는 않는

 

우리는 서로의 눈을 함부로 마주 보아선 안된다

 

서로의 사악함을 알고도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미친 자들의 눈

눈의 유해(遺骸)

 

 

웹진 『뿔』 2011년 11월호 발표

 

 

이이체 시인

1988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2008년 《현대시》에 〈나무 라디오〉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죽은 눈을 위한 송가』(문학과지성사, 2011)가 있음.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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