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사 열목어 / 정우영
정암사 개울에 열목어 여남은 노닐기에 살금살금 내려
갔지. 그저 약동하는 생명력이나 느껴볼라고 얼른 잡아
불끈 쥐었어. 보기와는 달리 파닥거리는 몸짓이 꽤는 실
해서 절로 입이 벙그러졌지. 그때였어. 누가 내 귀를 젖
은 혓바닥으로 핥아대는 거야. 하, 그 맛을 아나 이 천연
의 살덩이? 속셈을 읽힌 나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
았어. 웬 스님 하나 내 곁에 부드럽게 떠 있는 거야. 고개
를 끄덕이는 내 입속엔 이미 단침이 가득했지. 스님은 내
게서 열목어를 받아 들더니 먹기 쉽게 한쪽을 발라주었어.
나는 낼름 받아 한입 떼어 물었지. 그러자 휘청, 스님의
몸이 흔들리더니 허리춤에서 진한 핏물이 배어나오는 거
야. 별일 아니라는 듯 열목어는 입만 뻐끔거리고.
시집<집이 떠나갔다>(2005, 창비시선)
시인의 말 - 마음이 많이 닳은 것인가. 한동안 에둘러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부끄럽지만은 않다. 무뎌진 것일까. 분노보다는 위로에 더 눈길이 간다. 요즈음엔 특히 작은 것, 잘 잊히는 것, 쉬 멀어지는 것, 이를테면 사금파리 같은 것들에 부쩍 끌린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그 자리에 없으면 어쩐지 허전한 것들. 그런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애잔한 위무가 아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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