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Haru)
채란은 출근하는 제이를 현관 밖으로 빼쭉이 내다보며 배웅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애틋함으로, 인사란 그렇게 정중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의식이 배어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하여 최소한 예우禮遇를 갖춘다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채란이다. 새벽 네 시 잠에서 깬 제이가 자기 컴퓨터로 칼럼을 읽었다고 아침식사 도중에 얘기했다. 그때그때 기사나 정보들을 잘 일러주는 제이다. 간밤에 일찍 잠에 들었던 때문일까. 어쨌든 제이의 수면시간은 한도 이상을 넘지 않는다. 결곡한 잠버릇을 채란은 도저히 쫒아 갈 수 없다. 확실히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이 살도 찌는 법이다. 제이는 체중계 눈금이 일정한 편이었고 채란은 제이를 만나고 오히려 4년 동안 4kg씩이나 늘었다. 잠을 많이 잤기 때문이다.
채란은 20년이 넘도록 단 0.5kg도 늘지 않는 몸무게였다. 수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기 보단 변동 없는 스트레스가 변함없는 체중의 원인이 되었다.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팽창이 동일한 수치로 진행된다는 것을 채란은 뒤늦게야 알았다. 제이를 만나고 난 후 채란은 많이도 자고 많이도 먹었다. 많이도 웃었다. 20년 동안 웃어야 할 분량을 두 달 동안 다 웃어 버렸다 할 정도로. 제이는 사랑하는 여자 앞에선 위트가 넘쳐나는 남자였고 나머진 시큰둥 소 닭보듯 했다. 채란은 가장 동물적인 삶이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는 이상한 논리도 경험하였다. 이전의 관념들과 형이상학은 염색물 빠지듯 지워져 버렸다. 물론 예전에는 더 고급스럽게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란 말도 있듯이 먹는 게 먹는 게 아닌 경우. 주는 것만큼 빼앗아가는 수요와 공급은 제로로 남는다는 걸, 사육을 위한 먹이는 조건부 사랑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맨발 맨살 맨 얼굴 - 멘스라는 것도 있지만- 태초의 의미가 실린 맨 자를 대할 때면 채란은 제이의 손끝 감각이 전률로 떠오르곤 하였다. 제이가 까닥거리는 손가락 하나에도 마음을 통째 담보 잡혔을 때, 채란은 풋풋한 애무를 맛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그네 위에서 시작되었던 초저녁 그 짓은 동이 틀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첫사랑이 자기 집으로 달려가 젖은 바지를 갈아입고 돌아올 때까지 채란은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난 첫사랑이 그네위에서와 다른 체위를 원했을 때 채란은 풀처럼 눕고 말았다. 그 후 얼만큼 젖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까무룩하게 환상의 다리를 건넜을 거란 추억 뿐.
부르스 볼륨을 줄이자 채란은 문득 5년 전 읽었던 맨발이란 시가 떠올랐다. 사랑을 잃고서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 개조개는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을 거라는 동병상련의 구절을, 채란은 부처도 감동하겠다는 생각으로 읽었었다. 맨발의 슬픔. 제이가 처음으로 입술을 얹어 애무해 준 곳은 채란의 맨발이었다. 귀엽게 생긴 발이라고 제이가 말했을 때 채란은 가장 내 보이기 싫은 신체 중 하나가 발이었다고 대답했다. 채란은 친정엄마의 호들갑스런 말대로 맨살을 깡그리 내주고도 참 오래도 견뎌왔다. 그 저력이 노예근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책을 한 적도 있다. 죽은 개조개의 맨발 같은 채란을 잠에서 흔들어 깨운 건 제이였다.
씨씨 모텔에서 알몸으로 제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채란은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냄새에 도취되어 거울 앞에서 춤을 추었다. 채란의 살은 오기가 뭉쳐서 살아남은 쌩얼이었다. 무미無味해진 시간을 더 이상 시치미 떼고 살 수 없다 울부짖는 여자의 율동. 그 날 두 사람의 물소리는 승천할 듯 공간 밖으로 마구마구 새어 나갔다. 도시를 벗어난 밀림인지 밀린 도시인지는 물아일여物我一如의 안개로 돌변하여 자욱해진 세계였다. 두 사람의 입김에 의해 가열이 되던 여덟 시간의 몽환夢幻. 가쁘지 않은 기나 긴 호흡이었다.
자고로 사람에게나 귀신에게나 원한을 갖게 만들면 되던 일도 안 된다. 그러나 사랑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 제 뜻대로 다 되는 일인가. 머피의 법칙에서부터 신화속 운명의 마술에 이르기까지 올가미를 만나지 않는 순탄한 사랑이란 게 존재하기나 한가. 채란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수선화는커녕 양파 뿌리 하나 눈에 띄지 않자 엉뚱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3월인데도 바람은 쌀쌀했다.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나왔구나 그때서야 어깨를 움츠리며 운명이라는 발음을 뱉어 냈다. 채란은 자신이 처음에 무엇을 사러 나왔는지 잊은 체 검은 봉지에 반찬꺼리들만 담아서 집으로 향했다.
저녁시간이 분주했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음식 냄새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일식삼찬이라도 제이를 기다리며 밥상을 준비하는 일은 서로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좋아하는 이와 마주 앉아서 밥을 먹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밥 한 그릇 앞에서 경전을 읽듯 경건했던 둘에겐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타령이 어울리지 않는 옛말이 되었다. 매일의 양식은 새로운 영양이자 애정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채란이 일상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소박한 여자라고 제이는 칭찬했다. 역시 비젼이니 프로젝트니 슬로건이니 하는 말에는 알레르기가 돋는 채란이었다.
채란은 간밤에 제이가 떨구어 놓았을 변기위에 오줌방울을 닦아낸다. 샤워기를 틀어 물을 뿌린 후 제례의식을 치르듯 하루의 첫 배출을 맛본다. 수순은 상관이 없다. 오르락내리락 사이좋게 교체하는 양변기는 싱크대 맞은편 열린 화장실 문 안에 살고 있다. 제이를 처음 만났을 때 무진 토악질을 해 대던 채란을 제이는 나무라지 않았다. 토닥토닥 울렁거리는 등을 두드려 주며 안에 것들을 쏟아 버리게 해 주었다. 그 일이 시간적으로 얼마나 에너지를 빼앗는 것인지는 계산하지 않았다. 하루가 천년의 시작처럼 열리고 있다. 언젠가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을 읽고 있던 제이가 묘사해 준 장면이 오버랩 되는 아침. 채란은 그 삭막한 풍경 속 노인의 웅크린 등허리가 실체처럼 꿈틀거리는 것을 본다. 석회가루 날리는 벽을 우적우적 뜯어먹고 앉아 있는 형상을 고독이란 말로 푯말해 두고 다시 일어선다. 창밖엔 안녕을 고하는 비가 내린다. 오늘이여 다시 만나니 안녕, 오늘이여 영원히 안녕, 하면서 비가 내리고 있다.
2011. 5월 하순,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