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冊과 함께 눕다

미송 2012. 6. 11. 11:28

       

       

       

       

      1

      한때 저를 매혹시켰던 책의 첫구절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2

      세상에, 이 세상에 변하지 않고 언제나 거기 있어주는 것이 한가지쯤 있었으면 했지요.

      그게 사랑이든 진실이든, 혹은 나 자신이든.

      나는 기대어 서 있고 싶었나봐요. 존재란 건 원래 머무르고 싶어하니까요.

       

      3

      벽 위에 형체를 알 수 없는 한 존재, 지금 여기를 바라보는 건지 아니면

      등을 돌려 떠나가는 참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존재. 존재는땅 위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로 서 있었다.

      왜냐하면 남보랏빛과 검은빛이 섞인 땅은 소용돌이에 휩싸인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왜였을까, 나는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그림 밑에 씌어진 제목은 이랬다.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4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야.

      그 부피만큼만의 슬픔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p 159

       

      5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의 거리의 첫 문장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까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우울해 하는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었다.

       

      6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p.187

       

      7

      삶이라는 것도 언제나 타동사는 아닐 것이다. 가끔 이렇게 걸음을 멈추고 자동사로 흘러가게도 해주어야 하는 걸 게다. 어쩌면 사랑, 어쩌면 변혁도 그러하겠지. 거리를 두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삶이든 사람이든 혹은 변혁이든 한번 시작되어진 것은 가끔 우리를 버려두고 제 길을 홀로 가고싶어하기도 하니까.’ p.147

       

      8

      한때는 희망으로 빛나는 이 길을 당신들도 언젠가 절망으로 걸어갈 날이 있을 것이다. 희망으로 빛나지 않은 길은 결코 절망으로도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결코 길의 탓은 아니지만 경계하라! 그 변덕스런 삶의 갈피를. 다시금 경계하라, 불행조차 고여있지 않다는 진실을.

       

      9

      그 중간이 존재하고 그 과정도 존재하며 사실은 그런 과정들일뿐인데 말이지요 삶조차 완성될 수는 없는 건데요.

       

      10

      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젊음과 시간 그리고 아마 사랑까지도. 기회는 결코 여러 번 오는 법이 아닌데, 그걸 놓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우리는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그것들을 천천히 하나씩 곱게 땋아 내려야해. 그게 사는 거야. 아주 작은 행복 하나를 부여잡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는지 너는 아니? 진짜 허망한 건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휩쓸려 가는 거라구.

       

      11

      별을 보는 당신은 어떤 고적한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내 그것을 생각함이 가슴이 아파 당신의 별을 그려보기 쉽지 않다

       

      12

      기억은 머리로 하는 것이지만 추억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어서 내 가슴의 탑은 날마다 불을 환히 밝혔다.

       

      13

      날마다는 아니더라도, 한번쯤, 한번쯤은 그 마음이 온전히 내게로 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더랬다.

      그렇게 서걱이고, 그렇게 멀고, 그렇게 가없는 것 같은 집착.

       

      14

      언젠가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에게 늙음이 맨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얼마나 저주인가,

      그 저자는 말했다, 신은 실수를 했다.

      기어다니는 벌레였다가

      스스로 자기를 가두어두는 번데기였다가

      드디어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인간의 절정도 생의 맨 마지막에 와야 한다고,

      인간은 푸르른 청춘을 너무 일찍 겪어버린다고.

       

      공지영의 산문집<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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