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은 삼차원 공간을 파괴하고 그것을 시간과 기억의 영역에서 시각적으로
재구축하는 방법을 수용했다.
은유
에머슨이 말한 바 “논증(argument)은 아무도 납득시키지 못한다”를 기억합시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논증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도 납득시키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관찰하고 저울질해 보며 뒤집어 보고 나서는 그것에 반대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단지 이야기되거나 또는 -훨씬 더 좋게-단지 암시만 된다면, 우리의 상상력에 뭐랄까 환대歡待의 태도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준비를 갖춥니다. p47-48
저는 은유의 전망이 아주 밝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주류主流의 새로운 변형들을 시도해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변형들은 매우 아름다울 것이며, 저 같은 소수의 비평가만이 애를 써가며 “자, 저기에 눈과 별의 은유가 있고, 저기에 시간과 강의 은유가 있습니다”라고 거듭거듭 말할 것입니다. 은유는 상상력을 자극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정된 유형들에 속하지 않거나, 또는 아직 속하지 않은 은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일지도 모릅니다. 왜 이런 것을 바랄 수 없겠습니까? p59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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