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샤를 보를레르 '악의 꽃' 中에서

미송 2012. 7. 15. 08:30

 

 

이방인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말해보라,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여

너의 아버지인가, 아니면 형제 자매인가

나에게는 부모도 형제 자매도 없다

그러면 너의 친구인가

지금 너는 뜻조차 알 수 없는 낱말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너의 조국인가

그것이 어느 위도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러면 아름다운 여인이란 말인가

아, 만일 불멸의 여신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있으련만

그렇다면 돈이란 말인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그것

마치 네가 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세상에서도 귀한 에트랑제여!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

저 부지런히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다

보라, 다시 보라

저 불가사의한 뭉게구름을.

 

 

피의 샘물

 

때때로 나는 내 피가 쿨쿨 흘러감을 느낀다

선율 따라 흐르는 샘물과 같이

언제까지나 졸졸졸 피의 흐르는 소리는 들리나

아무리 더듬어 봐도 상처란 찾을 수 없다

결투장에서처럼, 도시를 가로질러 내 피는 흐르며 간다

길바닥 돌을 작은 섬으로 바꾸고

온갖 것의 갈증을 풀어 주고

간 곳마다 자연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나는 흔히 취하는 술에 나를 파고드는 공포를

하루라도 잠재워 달라고 하소연했으나

술은 내 눈과 귀를 한결 밝게 만들어 줄 뿐!

사랑 속에 망각의 잠을 찾기도 하였으나

사랑은 나에겐 오직, 저 매정한 계집들에게

내 피를 빨아 먹이기 위해 마련된 바늘 방석일 따름!

 

 

심연 속에서

 

내 마음 떨어진 캄캄한 심연 밑바닥에서

연민을 비나이다 내 사랑하는 유일한 그대여

이건 납빛 지평선의 침울한 세계

거기서 어둠 속에 공포와 모독이 떠돌고

열 없는 태양이 여섯 달을 감돌고

또 여섯 달은 어둠이 땅을 덮으니

이건 극지보다도 더 헐벗은 고장

짐승도, 개천도, 푸르름도, 숲도 없구나!

그런데 이 얼어붙은 태양의 차가운 잔인성과

태고의 혼돈과도 같은 이 광막한 어둠보다

더 끔찍스런 것 세상에 없어라.

멍청한 잠속에 잠길 수 있는

더 없는 더러운 짐승 팔자가 샘나는구나

그토록 시간의 실타래는 더디 풀리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무른거야

고해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치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을 씻어내린 줄 알고

좋아라 흙탕길로 되돌아오는구나.

- 독자에게 中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 알바트로스 中

 

내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은 알몸이었고

내 마음을 알기에 오직 잘 울리는

보석만을 지녀, 그 호화로운 노리개로

행복한 나날의 모오르의 노예처럼 의기양양하도다.

- 패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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