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의 횡포
안또니아 아줌마도 죽었다, 시골 마을에서 제일 싼 빵을 만들던, 늘 목이 쉬어 있던 여자.
산띠안노 신부도 죽었다. 우리 젊은이나 처녀들이 인사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시던.
인사할 때마다 한결같이 답을 해주시곤 하셨지: <호세, 안녕! 마리아도 안녕!>
그 금발머리 아가씨 까를로따도 죽었다. 몇 달 안된 갓난아기 하나를 남겨두고.
아이도 엄마 죽은 지 여드레만에 죽고 말았다.
나의 아줌마 알비나도 죽었다. 전래 동요와 풍습과 세월을 노래하곤 하시던 아줌마.
토방마루에서 집안 하녀인 곱디곱던 여인 이사도라를 위해 바느질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한 외눈박이 노인도 죽었다. 그 이름은 생각이 안난다. 하지만 동네 어귀의 함석장이 집 문 앞에서
노상 주저앉아 아침 햇살을 받고 졸곤 하셨다. 라요도 죽었다. 내 키만큼 큰 개 한 마리,
누군가 길가는 사람의 총을 맞고 죽었다.루까스도 죽었다. 허리 가득 평화를 안고 다니던 나의 외삼촌.
비가 오면 나는 외삼촌이 생각난다. 그러나 내 경험 속에는 아무도 없다.
나의 권총 속에서 나의 어머니는 죽었다. 나의 주먹 속에서 나의 누이는 죽었다.
나의 피투성이 허벅지 속에서 나의 동생도 죽었다.
계속 되는 세월의 8월에 모두 죽었다, 슬픔의 슬픈 핏줄로 이어진 새 사람.
악사 멘데스도 죽었다. 키가 크고 술이 항상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있던 나팔로
옛날 슬픈 곡조를 따라랑거리면 그 처량한 음악 소리에 우리 마을 암탉들이 해도 지기 전에 잠들곤 했던.
나의 영원은 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죽음을 보고 있다.
2
인생의 가장 심각한 순간
인생의 가장 심각한 순간 한 사람이 말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순간은 마르네 전투에서였습죠. 내가 심장에 상처를 받았을 때였어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순간은, 요쿄하마의 해진 때였어요. 나는 어느 칠기 상점 처마 밑에 숨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지요.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순간은 내가 낮잠을 잘 때 일어나요.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순간은 내가 가장 고독했을 때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순간은 내가 페루 감옥에서 있을 때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순간은 갑자기 나의 아버지의 옆 얼굴을 훔쳐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말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3
같은 이야기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나쁘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은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나의 형이상학적 공기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불꽃으로 말했던 침묵이 갇힌 곳.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형제여, 들어보세요, 잘 들어봐요.
좋습니다.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들 아는데‥‥ 그러나 빛이 폐병 환자라는 건 모릅니다.
어둠이 통통하다는 것도‥‥ 신비의 세계가 그들의 종착점이라는 것도
그 신비의 세계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곱사들이고,
정도가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가는 걸 멀리서도 알려준다는 것을 모릅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주 아픈 날.
4
시인이 연인에게
오늘밤 당신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나의 입맞춤은 두 개의 널빤지 위로 쏟아졌지요.
당신의 고통은 내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우셨음을, 입맞춤보다 더 달콤한 수난의 금요일이 있음을.
당신이 그리도 많이 나를 바라보았던 이상한 밤.
죽음의 신은 온몸으로 즐겁게 노래를 불렀지요.
가장 인간적인 내 입맞춤이 쏟아진 9월의 오늘밤,
나는 두번째로 나락에 떨어졌습니다.
우리 둘은, 꼭 붙들고 함께 죽어갈 겁니다.
우리의 고통 덩어리는 서서히 말라갈 것입니다.
우리의 죽은 입술들이 어두워질 것입니다.
당신의 거룩한 눈에선 힐난의 빛도 없군요.
다시는 당신을 욕되게 하지 않으렵니다.
우리는 한 무덤에서 다정한 남매처럼 잠들어 있을 겁니다.
5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나는 오늘 이 고통을 세사르 바예호로 겪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로도, 인간으로도, 살아있는 존재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카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고통스러워할 뿐입니다. 내가 세사르 바예호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이며, 인간이 아니었다 해도,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카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단지 고통을 겪을 뿐입니다. 지금 나는 이유 없이 아픕니다. 나의 아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이 되다 그만둔 그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닙니다만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습니다. 왜 이 아픔은 저절로 생겨난 걸까요? 내 아픔은 북녘바람의 것이며 동시에 남녘바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상야릇한 새들이 바람을 품어 낳은 중성의 알이라고나 할까요? 내 연인이 죽었다 해도, 이 아픔은 똑같을것입니다. 목을 잘랐다 해도 역시 똑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삶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해도, 역시 이 아픔은 똑같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위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단지 괴로울 따름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의 배고픔이 나의 고통과는 먼 것임을 봅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굶게 된다면, 적어도 내 무덤에서는 억새풀이라도 하나 자라겠지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샘도 없고 닳지도 않는 나의 피에 비하면 그대의 피는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아버지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 고통은 아버지도 아들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밤이 되기에는 등燈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돕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두면 빛나지 않을 것이고, 밝은 방에 두면 그림자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지간에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6
검은 사자(使者)들
(번역 구광렬)
삶엔 고통들이 있지, 너무나 힘든·····
하지만 난 몰라!
신의 증오 같은 고통들; 그들 앞에선 모든 괴로움이
썰물처럼 끌려가 영혼에 고이는 듯····난 몰라!
얼마 되지 않아; 하지만 고통들이지
굳은 얼굴에도, 단단한 등에도, 어두운 골짝들을
파내고 마는
어쩌면 그것들은 날뛰는 야생 망아지거나
死의 神이 아래로 보내는 검은 사자使者 같은 것.
운명이 신성 모독하는 우상적 믿음으로 인해
영혼의 그리스도들이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며
피 튀기는 고통들은 빵이 오븐 문짝에서
바사삭 타버릴 때 나는 소리가 되는 것이지
불쌍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뒤돌아보면;
누가 어깨를 치나 하고 시익 얼굴을 돌리듯
그 광기의 눈은 돌아가 버리고
망막에, 죄의 웅덩이에, 곧 그 시선들은 고여 버리지
삶엔 고통들이 있어, 너무나 힘든·····
하지만 난 몰라!
7
강도와 높이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거품이 나온다,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몸을 추스릴 수가 없다;
모든 말의 숫자는 합계다,
모든 글씨의 피라미드는 껍질뿐.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표범이 나온다;
월계수를 키우고 싶은데 양파가 나온다.
말하는 기침은 없다, 모두 바다 안개가 된다,
발전 않는, 신도 신의 아들도 없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 그냥 떠나자, 풀을 먹으러,
통곡의 고기, 신음의 열매를 먹으러,
통조림이 된, 우수에 젖은 우리 영혼을 먹으러.
떠나자! 떠나자! 나는 이미 상처난 사람;
이미 마신 걸 마시러 떠나자,
가자, 까마귀여, 너의 알을 살찌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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