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루스베네딕트
중국어에도 일본어에도 영어의 ‘오블리게이션(obligation : 의무)’을 의미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그 말들은 완전한 동의어는 아니다. 그 말들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의미는 문자 그대로는 영어로 번역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말들이 표현하고 있는 관념을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큰 것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이 지고 있는 모든 채무를 나타내는 ‘오블리게이션’과 로열티(loyalty:忠誠)‘에서 ’카인드니스(kindness:親切)‘와 러브(love:愛)’에 이르는 여러 가지 말로 영역되지만, 모두 원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만일 온恩이 정말로 러브(사랑) 또는 오블리게이션(의무)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일본인은 어린아이에 대해서도 온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런 어법은 옳지 않은 것이다. 또한 그것은 로열티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어에서는 충성은 몇 개의 다른 말로써 표현되고 있는데, 결코 온과 동의어는 아니다.
온의 여러 가지 용법 전부를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그리고 윗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적어도 자기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서 온을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 대하여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 입힌 사람을 온진恩人이라고 부른다. ‘온을 잊지 않는 일’은 순수한 헌신적 애정으로부터 나오는 경우도 있다. (중략)
일본 역사의 모든 시기를 통해 일본인들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소속하는 세계의 최고의 윗사람이었다. 그것은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지방 영주, 봉건 영주, 쇼군 등으로 변하였다. 오늘날엔 그것이 천황이다. 그러나 윗사람이 누구인가보다 중대한 의의를 지닌 것은 몇 세기에 걸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 속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대 일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감정을 천황에게 집중하도록 해 왔다. 일본인 특유의 생활 양식에 대하여 그들이 품고 있는 모든 편애의 정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황은을 증대시킨다. 즉, 전쟁 중 전선의 군인들에게 천황의 이름으로 나누어 준 한 개비의 담배는 병사들 하나에게 천황에 대한 온을 강조하였으며 출격에 앞서 병사들에게 분배된 한 모금의 ‘사케酒’는 다시금 황은을 깊게 아로새겼다. 일본인의 말에 따르면 가미카제神風 자살기 조종사는 누구나 황은에 보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태평양의 어떤 섬을 방위하기 위해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옥쇄玉碎한 부대의 병사들은 모두 천황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온을 갚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략)
어떤 사람에게서 온을 받는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일본인이 잘 쓰는 표현에도 나타나듯이 “사람은 온의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단한 짐이다. 또한 ‘온의 힘’은 항상 단순한 개인적인 기호를 짓밟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같은 채무의 윤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자가 지고 있는 의무를 이행하는데 큰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이 큰 빚을 지고 있는 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일본에서 계층 제도가 얼마나 철저하게 조직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 계층 제도의 부수적 관습들이 충실하게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은 그 도덕적 채무를 서양인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존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온은 윗사람이 선의의 사람일 경우에는 한결 행하기 쉽다. 일본어에는 윗사람이 사실 그 식객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흥미있는 증거가 있다. 일본에서 ‘아이愛’라는 말은 ‘러브(love)’를 의미한다. 지난 세기의 선교사들이 기독교의 ‘러브’의 번역어로서 쓸 수 있는 유일한 일본어라고 생각한 것은 아이라는 단어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 말을 성서의 번역에 사용하였고,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 또는 인간의 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게 하였다. 그런데 아이는 특별히 식객에 대한 윗사람의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다. 서구인은 그것은 온정주의(patemalism)의 의미가 아니냐고 느낄지 모르나, 일본어의 용법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애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현대 일본에서도 아이는 아직 위에서 밑으로의 사랑이란 엄밀한 의미로 쓰여지나, 일부에서는 기독교적 용법의 영향으로, 또는 분명히 카스트적 차별을 타파하고자 하는 국가의 노력의 결과로, 오늘날에는 대등한 사람 사이의 사랑에서도 쓰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본 문화의 특수성이 온恩의 부담을 가볍고 지기 쉬운 것으로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서 감정을 상하지 않고 온을 ‘입는 것’은 행복한 경우다.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사람에게 온을 베푼다”는 말을 한다. 그것에 가까운 영어 표현은 “타인에게 무엇을 강제한다(imposing upon another)”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임포징(imposing)‘이란 말은 타인으로부터 무엇인가 요구하는 것인 데 반하여 일본에서 이 표현은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 또는 친절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인연이 먼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일본인에게 가장 큰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웃 사람들이나 예로부터 정해진 계층적 관계에서는 일본인은 온을 받는 번거로움을 알고 있으며, 또한 기쁘게 그 번거로움을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상대가 단순히 지인知人이거나, 자신과 거의 대등한 인간의 경우에는 매우 불안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온의 여러 가지 결과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한다.
일본의 거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아닌 사사로운 사람이 제멋대로 참견을 하면 그 행위가 그 사람에게 온을 입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메이지 이전의 가장 유명한 법령의 하나에 “싸움이나 말다툼이 났을 때, 불필요한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경우에 분명한 권한이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은 무언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받게 된다.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원조를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 더욱이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온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제까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사람으로부터 단지 담배 한 개비 얻어 피워도 일본인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그런 경우 고마움을 표현하는 정중한 화법은 “아, 기노도쿠(곧, 독이 있는 감정)군요”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일본인이 나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얼마나 좋지 못한 느낌인가를 확실히 말해 버리는 편이 참기 쉬운 일입니다. 이때까지 그 사람을 위해 무엇 하나 해 주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을 입었다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노도쿠’라는 말은 때로는 “Tank you(감사합니다)” (담배를 얻어서), 때로는 “I am sorry(유감입니다)” (은혜를 입어서), 또 때로는 “I feel like a hell(면목없습니다)"(이처럼 과분한 대우를 받아서)라고 번역된다.
‘기노도쿠’라는 일본어는 이상의 모든 의미를 나타내지만, 또한 그 중에 어떤 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어에는 온을 받음으로써 느끼는 마음이 편치 않음을 표현하는 ‘감사하다’라는 뜻의 많은 화법이 있다. 그 중 일반적으로 대도시의 백화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리가토’라는 표현이다. 이 말은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Oh, this is difficult things)"를 의미한다. (중략) 보편적으로 ‘감사’를 나타내는 그 밖의 몇 가지 말들은 기노도쿠처럼 은혜를 받아 곤란하다는 심정을 표현한다. 상점 주인은 대체로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이 되는 ‘스미마센’이라는 말을 쓴다. 즉, “나는 당신에게 온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경제 조직하에서 나는 당신에게 진 온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입장에 놓여진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의미이다.
스미마센을 영어로 옮기면 “Thank you", "I'm grateful", 또는 ”I'm sorry", "I'm apologize"가 된다. 이를테면, 거리를 거닐다가 바람이 불어 날아가 버린 모자를 누군가가 쫓아가서 주워 준 경우에, 다른 감사의 말보다 즐겨 쓰는 것이 이 말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손에 모자를 되돌려 줄 때 당신은 예의바르게 그것을 받아 쥐면서 느껴지는 마음속의 괴로움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이렇게 온을 베풀고 있지만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이 사람을 만난 일이 없다. 나는 이 사람에게 이쪽에서 온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이런 은례를 받아서 뒤가 꿀리긴 하지만 사죄하면 약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감사를 나타내는 말 중에서 아마도 스미마센이 가장 보통으로 쓰여지는 말이리라. 내가 이 사람에게서 온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모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자. 그 이상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은혜를 입었을 때 일본인의 입장에서 한층 강하게 나타내는 감사의 말은 ‘가타지케나이’로서, 이 말은 ‘모욕’, ‘면목없음’을 의미하는 글자로 표현한다. 이 말은 ‘나는 모욕을 당하였다’는 의미와 ‘나는 감사한다’는 의미 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 일본어 사전의 풀이에 의하면 이 말은 당신은 당신이 받은 각별한 은혜에 의하여 욕을 당하고 모욕을 받았다- 당신은 그런 은혜를 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씌어 있다. 이 표현에 의해 당신은 온을 받음으로써 느끼는 당신의 부끄러움을 분명히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치욕, ‘하지’라는 것은 일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가타지케나이, 즉 ‘나는 모욕을 당하였다’는 지금도 전통적인 상인이 손님에게 예의를 나타낼 때 쓰고 있다. 또한 손님이 외상을 달 때 쓰이기도 한다. 메이지 이전의 소설에는 이 말이 자주 나타난다. 궁중에서 하녀로 봉사하던 중 영주에게 첩으로 발탁된 신분이 천한 아름다운 소녀는 영주에게 가타지케나이라고 말한다. 즉 “저는 황공하게 이와 같은 온을 입게 되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영주님의 자비가 두렵습니다.” 혹은 결투를 한 사무라이가 당국으로부터 무죄로 풀려나오게 되었을 때 가타지케나이라고 말한다. 즉 “나는 이와 같은 온을 입게 되어 면목을 잃었소. 이런 천한 위치에 몸을 두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오. 나는 유감으로 생각하오. 당신에게 정중히 감사하오”라는 의미이다. (중략)
아무리 착잡한 감정을 가졌더라도 온진이 실제로 자기 자신인 한, 즉 그 사람이 ‘나의’ 계층적 조직 속에 일정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든지, 혹은 바람 부는 날 모자를 집어 준 경우처럼 나 자신도 아마 그렇게 하였으리라 상상되는 일이든지, 혹은 나를 숭배하는 사람일 경우에 한해서는 일본인은 안심하고 온을 입는다. 그런데 일단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온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지워진 부채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다. 우리는 일본인 사이에서 누가 누구에게 온을 입혔다고 말할 때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중략)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는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루스베네딕트<국화와 칼>p123~142 中 타이핑 채란
20120810-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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