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기쁨

[허연의 명저 산책]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미송 2012. 8. 10. 08:07

 

▲ 창작발레 [비애모]

 

 

패색이 짙어가던 일본은 1945년 가미카제 공격을 감행한다. 폭탄을 장착한 비행기를 몰고 미국 군함에 돌진하는 자폭 공격은 1000여 차례나 계속됐다. 일본인들의 이 같은 극단적인 충성심을 보며 서구인들은 경악했다.

전쟁이 끝나고 군정이 시작될 무렵 미국은 긴장하고 있었다. 자살테러와 게릴라전 등 엄청난 저항이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군정이 시작되자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일본인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얌전히 미 군정에 순응했다. 미군 1개 소대가 일본인 10만명쯤을 다스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세계는 또 한 번 경악했다.

 

 

 

일본인들은 어느 나라와도 구별되는 독특한 기질과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 누구는 그들을 두고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하고 잔인한 사람들이라 하고, 또 누구는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예의 바르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과연 어느 것이 일본인의 본모습일까. 아니면 그들은 태생적으로 이중적인 사람들일까.

일본인의 독특한 기질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당연히 전쟁 당사국이던 미국이었다. 미국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는 국무부로부터 일본의 국민성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는다. 그 결과물이 1946년 출간된 유명한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이다.

베네딕트는 책에서 상징적이면서 중요한 개념 하나를 던진다. "(일본인들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가 그것이다.

그는 일본의 독특한 계층제도가 일본인의 정서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가 일본식 행동양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일본인들은 계층이라는 틀 안에서 가치판단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보편적인 평등과 자유 이념을 부르짖는 서구 사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일본인을 기계에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네딕트는 이것을 일본인의 단점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름의 탁월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해서 일본인들은 아무리 사소한 최하위의 위치라도 개별적인 가치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구조 때문에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MBA를 받고 온 수재가 아버지의 국숫집에서 일하는 문화나 학사 출신 직장인이 노벨상을 받는 현상이 가능할 수 있다.

계층의 테두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의무와 보은에 민감하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포기도 서슴치 않는다.

또한 공동체가 곧 법이기 때문에 '수치'라는 문화적 기제가 발달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처벌보다 수치스러운 상황에 놓이는 걸 더욱 두려워한다. 이런 특성은 일본인의 탁월한 질서의식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적인 활력을 저하시키고 자살과 같은 격렬한 행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다른 불교국가들에 비해 쾌락에 너그럽다. 일본인들은 계층적이지만 청교도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 쾌락은 사회가 정한 일정한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 서구인들이 성서적인 의미의 '선과 악'이라는 억압기제를 가지고 있다면 일본인들은 '계층의 허용범위'라는 억압기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후쿠시마 원전으로 달려가는 정년을 6개월 앞둔 기술자의 모습보다 더욱 놀라운 건 그의 가족들이다. 한국인들이었다면 가지 말라고 울고불고하며 길을 막거나, 한 집안의 가장을 그곳으로 가게 한 제도나 권력을 향해 울분을 토하면서 1인 시위라도 하지 않았을까.

물론 국민성에 비교우열은 없다. 베네딕트도 말했다. "일본인의 모순, 그것이 바로 일본인의 진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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