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를 이해하다
일흔 살이 된 저는 언제라도 불러낼 수 있는 제 안의 소년에게- 어쨌든 우리의 숙제는 풀렸다, 고 말했습니다. 이 일의 시작은, 불가사의한 유머가 있던 할머니가(나가사키의 공예품 잔으로 매일 아침 한 잔씩 아카다마 포토 와인을 즐기던) 얘기해 준 골짜기 마을의 전승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숲 꼭대기에 '자기 나무'가 있다. 우리들의 넋은 거기서 내려왔고 거기로 올라간다. 그 나무 아래 서 있으면, 나이 먹은 자신을 만날수도 있다.
저는 노인이 된 자신에게(일흔 살이라니!)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묻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괴로운 일이 있었고 어떤 좋은 일이 있었지? 지금 저는 그 소년에게 대답할 수 있어야겠죠.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며 70년이라는 세월을 돌아볼 때 저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잇따라 돌아가신, 전쟁이 끝나기 전해로부터 5년간입니다.
폭풍우 부는 한밤중에 정전이 된 거실의 촛불 주변에 아이들이 모여들어 불어난 강물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모두들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앞날에 대한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어머니의 우울한 얼굴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이렇게 돌아가시니 저를 진학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어머니에게 주지 스님은, 열심히 공부할 마음만 있으면 길은 있는 법이라며 저를 불러들이셨습니다. 그 학교는 불교를 교육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곳인데 학비는 필요 없다. 거기서 정말로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 돈, 명예, 지위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인간이 된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저는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지 스님이 돌아가고 나서 어머니가 꾸중을 하시기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나 지위는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를 해서 자신이 할 수 있게 된 일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 그것은 명예를 갖고 싶다는 것 아닌가?
어머니가 실망하시기에 저는 덧붙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없겠지만, 어른이 되어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일할 생각이다.
패전과 그에 이어진 사회의 궁핍은 우리 가정에도 어김없이 미쳐 왔습니다. 어머니의 ‘한숨’을 듣지 않는 날이 드물었고 어린아이의 생활에도 괴로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지요.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신제 중학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진학에 대한 불안은 날아가 버리고, 이런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어 불가사의하게 여겼을 정도랍니다.
저의 70년 가운데 또 하나 특별했던 시기는 장남 히카리가 머리에 이상을 지닌 채 태어난 뒤 5년 동안이었습니다. 일찍이 주지 스님이 현실적인 ‘삶의 힌트’를 주려 하셨을 때처럼 이번에는 의사 분을 의지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히카리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갈 각오를 굳힐 수가 있었지요.
하지만 어린아이와 자신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파이프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저를 자주 구렁텅이에 빠뜨리곤 했습니다. 아내가,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점은 어머니와 닮아 있으면서도 ‘한숨’을 쉬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은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히카리가 산새 소리에 흥미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여자 아나운서가 먼저 새 이름을 말하면 그 새 소리가 이어져 나오는 레코드를 테이프에 옮겨 담아 하루 종일 들으며 지내기로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여름을 보내러 갔던 기타가루이자와의 산장에서 숲을 통해 들려오는 호숫가의 새 울음소리에- 흰눈썹뜸부기입니다, 라고 아나운서의 억양으로 말한 것이 히카리가 발한 최초의 인간다운 낱말이었습니다.
우리는 힘을 얻었고, 산새 소리 레코드를 매개 삼아 히카리와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으로 옮겨 갔고, 절대음감을 지닌 히카리가 자신이 듣는 소리, 화음을 모두 친숙하고 깊이 있게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그와 세계 사이에 통로가 열렸습니다. 그것을 뒤따라가듯이 언어가 한 마디씩, 히카리와 우리들 사이에서 리얼하게 사용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히카리는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되어 갑니다만, 아내가 그 일에 끈질기게 동행하는 동안 제가 하고 있던 것은 고통과 기쁨의 불가사의한 연속을(요컨대 인생의 진행을) 소설로 써서 이해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젊은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 역시, 패전을 사이에 둔 그 5년간의 불가사의와 그 속에서 자신이 성장해 온 자취를 더듬어 보자, 그렇게 결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해 동안 히카리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몸과 마음에 스며 있는 음악을 언어로 다시 파악하는 레슨을 해 왔습니다. 그것은 산새 소리에서 인간의 음악으로 옮아가면서 언어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그 불가사의한 길을 다시 한 번 더듬어 가는 일이었던 듯합니다. 저와 아내는 작곡을 재개한 히카리의, 아마도 제가 협력할 수 있는 마지막 CD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 속의 소년이- 히카리 씨에 관해서라면 당신은 어머니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있어, 라고 말해 주는 것을 느낍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반신반의하시겠지만.
오에 겐자부로 <회복하는 인간> 中
옮긴이의 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50여 년 동안 주로 '소설을 통한 표현으로 내면의 과제를 사회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던 오에 겐자부로가 칼럼과 강연을 통해 진솔하게 자신을 펼쳐 보이고 있는 이 책의 원레 제목은 <전하는 말 플러스>입니다.
‘전하는 말’이란 물론 그의 스승 와타나베 가즈오와 친구 나카노 시게하루, 에드워드 사이드와 같은 이들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뜻이지만, 한편에서는 태평양 전쟁 말기 오키나와에서 어머니 품에 안겨 있다가 억울하게 죽어 영문도 모르는 채 야스쿠니의 ‘영령’이 되어 버린 어린 목숨과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들의 슬픔과 고통을 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에의 아들 히카리가 뇌에 심각한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의 우리말 제목 <회복하는 인간>은 아들 히카리와의 공생을 통해 그가 체득한 확신입니다. 그에게 ‘영혼의 줄칼질’을 당하게 한 이 아이의 장애는 그로 하여금 ‘부서지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고통을 통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들에게로 이끌려갔고 다른 이들의 절망과 슬픔을 향한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세계 속의 수난자들 박정희 독재 시절의 김지하와 하루아침에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리고 전쟁의 참화 속 이라크 인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용인하지 않으며, 부서진 인간은 어떻게든 회복시킨다는 그의 신념 속에는 ‘회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역사에 대한 믿음이 숨어 있습니다. <서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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