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에 관하여
-아무도 돌보지 않는 다락방들에게
에테르란 예술가보다 먼저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한듯하다. 가령
R.훅이나 C.호이겐스 같은 물리학자들이 처음으로 에테르란 명칭을 사용했을 때가 있었다. 물론 그들은 철저하게 과학계에서 무시받았다. 에테르란 과학사적 의미에선 빛의 파동을 전파하는 하나의 매질로 간주되었다. 말하자면 가상적인 물질인 것이다. 어원만 놓고 보자면 맑고 깨끗한 대기라는 뜻이며 이 에테르에 대한 착상은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더불어 탄생했다. 아마도 과학자들은 운동하고 있는 물체에 아무런 저항도 주지 않을 정도로 희박하고, 게다가 고체처럼 행동하는 성질의 이 기묘한 기운을 설명하기 곤란한 설렘으로 이 에테르를 안았을 것이다. 좀 쉽게 이야기하면 세계와 물체 사이에 놓여 있는 하나의 기氣이거나 흐름 같은 것인데 이러한 존재를 상정想定하는 입장을 에테르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A.A 마이컬슨의 실험을 통해 에테르의 존재는 완전히 부정되었다. 이후로도 이를 밝혀내기 위한 많은 실험들이 은밀하게 이루어졌으며, 그로 인해 광학과 전자기학이 다소 발전하였으나 아무도 그것의 실재를 가시화하지 못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과학적 모순성 앞에서 그들은 더 이상 고르기아스 같은 소피스트들이 될 수는 없었다. 고대에선 잘 통했던 ‘존재해도 알릴 수(설명할수) 없다’는 궤변적 입장을 더 이상 주장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과학사에선 체계와 정의를 갖추지 못하는 모순으로 간주되었고 에테르의 논의를 더 이상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중략>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후로 이 에테르는 오히려 예술가들에게 묘한 설렘을 던져주는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하고 버려진 사실이 마술가들이나 음악인들 혹은 시인들에게 그들의 가슴에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로 바꾸어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비친 것이다. 영화인들은 이미지의 오브제로서 이 에테르를 동일하게 생각하고, 미술가들은 색채의 오묘함에서 에테르를 발견하고, 많은 시인들은 언어의 불구성에서 그것을 안고 가고 싶어한다. <중략>
사실 나 역시 처음 에테르란 말을 영화(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접하고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동일 시간에선 귀속시킬 수 없던 성질의 것이 다른 시간에선 전혀 다른 전이를 가능하게 하며 그 상태로 같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것은 에너자이너의 성질과 비슷해 보인다. 즉 논리학의 모순율을 배반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보이지는 않지만 거부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상태를 나는 에테르로 본다. 아마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면서 설명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에테르라는 말을 하고 싶은가 보다. 예를 들면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도 그런 것들은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당신들은 ( ) ( ) ( )에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열심히 애독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제출되었는데 (학자들은 이 상대성 이론으로 인해 에테르는 완전 부정되었다고 한다), 그도 철학은 사랑했지만 과학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자신의 이론에 근거하여 실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에테르에 대한 생각은 실질적으로 종말을 고했다. 물론 내 생각엔 이론 쪽으로만 말이다. 따라서 현재는 이론에 에테르라는 개념은 포함되지 않으며, 에테르는 광학, 전자기학의 진보와 더불어 변천하면서 그 사명을 다하고 사라진 역사적인 생각으로서 다루어진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도대체 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에테르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나는 설명을 하려고 하고 또 설명할 수도 없는 그 상태를 이야기하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말을 마치면 어떨까? 에테르란 나와 당신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한 세계가 동시에 살고 있는 궁宮이고 그 궁 안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다락방들이라고. THANK YOU!
김경주 산문집 <패스포트Passport> (2007, 랜덤하우스) 中.
가질 수 없는 것일수록 탐이 나는 법일까. 괄호 사이에서 K를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을 바둑알처럼 희고 검은 것으로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느낌은 흑심이 아니었다. 오늘 우연히 그의 패스포트를 손에 넣게 되었는데, 기연 운운도 뭐해 그냥 행운이라 해 둔다. 2년 전 인터넷으로 그의 패스포트 산문집 표지를 보았으나 내용을 다 읽진 못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그의 여행집을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2년 구월이었다. <오>
추억에 대한 에테르 / 오정자
- 그 밤
아마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면서 설명되지 않을 수 있는 것
가로등 수줍은 불빛이
낭만 투성이 통기타를 치는 듯
밤비가 장난질 치듯
언덕에 내리던 밤
은전 세 닢 손에 쥐고
구멍가게로 달려가던 시절
길을 막은 채 숨 죽이고
우두커니 홀로 서 있던 밤
검푸른 낭만 투성이 시절
목탄난로의 온기가
명치 끝으로 잦아들던 오두막
둔탁한 나무상자 위에
커피 잔을 천천히 올려 놓던 밤.
그러니까 k의 패스포트 문장을 통해 처음으로 에테르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을 때 정한 제목. 시 속에 주인공은 이십대 중반의 줌마다. 세월이 흐를수록 경험적 시들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발음만으로도 사랑스런 에테르. 한 밤에 빗방울 소리가 音樂이 되듯 발음만 해도 기분 올라가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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