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조지훈 <菜根譚>

미송 2012. 9. 12. 18:25

 

 

 

 

 새 울음 벌레 소리는 이 모두 다 전심(傳心)의 비결(秘訣), 꽃잎과 풀잎은 이 모두 다 오도(悟道)의 명문(名文) !

"본디 마음자리 마음을 밝게 하라." 가슴이 영롱하면 듣고 보는 것마다 회심의 웃있으리니.

 

 

[解義]

"나에게 한 권의 경(經)이 있나니 종이와 먹으로 이룬 것이 아니로다. 활짝 펴놓아도 글자 한 자 없건마는 항상 큰 광명이 예서 퍼져나가노라" 라는 글이 선가(禪家)에 있다. 이 경은 곧 <천지자연경>(天地自然經)이다. 천지만물 산색계성(山色界聲)이 모두 우주의 실상과 무상(無上)의 대도(大道)를 보여 준다는 뜻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천연(天然)의 심기를 맑게 하여 흉중에 일점의 사념(邪念)도 없이 함으로써 보고 듣는 것마다 마음에 체득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새 울음 벌레 소리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비결이 되고, 꽃송이와 풀잎이 그대로 산 문장이 된다는 말이다. 천지의 대도와 우주의 진리란 것은 언어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석가도 49년 설법에 한 자도 설(說)함이 없다고 하였다. 문자로 풀이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족한 일인가 ! 천지만물이 곧 그대로 우주의 실상이니 진리는 오직 스스로 체득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다.  

 

 

 

영욕(榮辱)을 놀라지 않는지라 한가히 뜰 앞에 꽃이 피고 짐을 보노라.

가고 머무름에 뜻이 없거니 부질없이 하늘 밖에 구름이 뭉치고 흩어짐을 보노라.

하늘 맑고 달 밝은데 어딘들 날지 못하리요만 부나비는 홀로 촛불에 몸을 던지나니.

맑은 샘 푸른 줄기 있거니 무엇인들 먹지 못하랴만 올빼미는 썩은 쥐를 즐기나니.

슬프다 ! 세상에 부나비와 올빼미 되지 않는 이 몇 사람이뇨.

 

 

[解義]

총욕(寵辱)은 총영(寵榮)과 오욕(汚辱)의 뜻이니 영욕(榮辱)이란 말과 같다. 벼슬이 좋다 하나 벼슬 위에 또 벼슬이 있으니 벼슬 때문에 욕(辱)이 온다. 백성이 섧다 하나 백성 아래 백성 없으니 백성이기에 즐겁지 않은가. 물이 있고 산이 있는 곳에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는 몸이고 보면 꽃이 피고 지는 것과 구름이 뭉치고 퍼지는 것이 흥겹지 않으랴. 넓은 하늘을 두고 하필 제 몸을 태우는 촛불에 날아드는 부나비나 허구 많은 먹을 것 속에 썩은 쥐를 탐내는 올빼미가 있다. 세상 사람 중에 이 부나비와 올빼미 같지 않은 이 몇 사람이나 되랴.  

 

 

조지훈 <채근담菜根譚> (1996, 나남출판사) '自然篇'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