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구양수<秋聲賦>의 추성부

미송 2012. 10. 6. 22:29

추성부(秋聲賦) / 구양수


 

구양자(歐陽子)가 밤에 책을 읽고 있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섬칫 놀라 귀 기울여 들으며 말했다.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바스락바스락 낙엽지고 쓸쓸한 바람 부는 소리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고 파도치는 소리같이 변하였다. 마치 파도가 밤중에 갑자기 일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물건에 부딪쳐 쨍그랑쨍그랑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또 마치 적진으로 나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듯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듯 했다.

 

내가 동자(童子)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네가 좀 나가 보아라.”

동자가 말하였다.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 걸려 있으며 사방에는 인적이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구나. 어찌하여 온 것인가? 저 가을의 모습이란, 그 색(色)은 암담(暗澹)하여 안개는 날아가고 구름은 걷힌다. 가을의 모양은 청명(淸明)하여 하늘은 드높고 태양은 빛난다. 가을의 기운은 살이 저미도록 차가와 피부와 뼛속까지 파고들며, 가을의 뜻은 쓸쓸하여 산천이 적막해진다. 그러기에 그 소리는 처량하고 애절하며 울부짖는 듯 떨치고 일어나는 듯한 것이다. 풍성한 풀들은 푸르러 무성함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들은 울창하여 우거져 볼만하더니, 풀들은 가을이 스쳐가자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가을을 만나자 잎이 떨어진다. 그것들이 꺾여지고 시들고 떨어지는 까닭은 바로 한 가을 기운이 남긴 매서움 때문이다.

 

을은 형관(刑官)이요, 음양(陰陽)으로 치면 음(陰)이요, 전쟁의 상(象)이요, 오행(五行)의 금(金)에 속한다. 이는 천지간의 정의로운 기운이라 하겠으니, 항상 냉엄하게 초목을 시들어 죽게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하늘은 만물에 대해 봄에는 나고 가을에는 열매 맺게 한다. 그러므로 음악으로 치면 가을은 상성(商聲)으로 사방으로, 사방의 음을 주관하고, 이칙(夷則)으로 칠월(七月)의 음률에 해당한다. 상(商)은 상(償)의 뜻이다. 만물이 이미 노쇠하므로 슬프고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夷)는 육(戮)의 뜻이다. 만물이 성한 때를 지나니 마땅히 죽이게 되는 것이다.

 

아, 초목은 감정이 없건만 때가 되니 바람에 날리어 떨어지도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도 영혼이 있는 존재이다. 온갖 근심이 마음에 느껴지고 만사가 그 육체를 괴롭히니, 마음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정신이 흔들리게 된다.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그 지혜로는 할 수 없는 것까지 근심하게 되어서는, 마땅히 홍안이 어느새 마른나무같이 시들어 버리고 까맣던 머리가 백발이 되어 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금석(金石) 같은 바탕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 생각건대 누가 저들을 죽이고 해하려 하는가?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恨)하는가?“

 

동자는 아무 대답 없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자고 있다.

단지 사방 벽에서 벌레 우는 소리만 찌륵찌륵 들리는데, 마치 나의 탄식을 돕기나 하는 듯 하다.

 

 

구양수歐陽脩(1007~1072)는

북송 시대의 문학가이면서 동시에 사학가이기도 하다. 자는 영숙永叔이고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로, 여릉廬陵사람이다. 천성天聖 8년(1030) 구양수의 나이 24세에 장원으로 과거에 급제를 하여 일찍이 추밀부사樞密副使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정치적 관점에 있어서는 왕안석王安石의 신법에 대하여 불만을 품었다. 문학적으로 볼 때 구양수는 북송시대의 시문 혁신인 주동인물이면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당시 문단의 영수이기도 하였다.

 

 

 

 

 

당송팔대가 [唐宋八大家]
중국 당(唐)나라의 한유(韓愈 ; 시, 산문 개척자)·유종원(柳宗元), 송(宋)나라의 구양수(歐陽修)·소순(蘇洵-아버지)·소식(蘇軾-큰아들)·소철(蘇轍-소동파)·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 등 8명의 산문작가의 총칭 입니다

당송팔대가는 그 시대에 이름을 떨쳤던 뛰어난 작가 8명을 이르는 말이다. 당송팔대가 중의 소식은 중국문학의 거인으로써 특히 이름을 떨치고 있다. 구양수, 소순, 소식, 소철은 모두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구양수는 소식과 소철의 스승이고 소순은 소식과 소철의 아버지이다. 소식이 태어난 사천(四川)은 과거 파(巴), 촉(蜀) 지방으로 문장으로 아름다웠던 사마상여, 충의와 군략을 갖춘 한복파장군(漢伏波將軍) 마원 등의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었으나 소씨 삼부자를 배출한 뒤로는 땅의 기운이 다했다 할 정도로 소씨 삼부자의 위명은 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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