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딱지치기

미송 2009. 5. 13. 16:48

 

딱지치기 


 

요즘 우리 1학년 아이들이 팽이놀이에 한창입니다. 천 원짜리에서 만 원짜리에 이르기까지 너도 나도 팽이를 손에 쥐지 않은 아이가 없어요. 두 달 전 딱지를 한 움큼 건네주며 자기와 딱지 넘기기를 하자던 우창이가 일주일전부터는 팽이를 가져와 열심히 조립을 합니다. 시시탐탐 눈치를 보며 책상 밑구멍에서 손장난을 치는 머슴애들이 얄궂습니다. 한시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들이라 어른의 바지런한 눈길도 따라갑니다. 형과 누나들이 하교하기 전 조용하다 싶을 때, 습관처럼 책을 펴도록 시킵니다. “얘들아 어제 책버스 선생님께서 그림책을 선물로 주고 가셨네”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책버스는 시청에서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입니다. 근무 이후 자원봉사자로 나오신 간호사 언니의 옆모습이 찐빵처럼 따사롭습니다.

 

바닷속 물고기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은 한결같이 물고기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네 명의 남자 아이들이 한 번 씩 다 그려보고 싶어 하는 물고기는 톱상어입니다. 너도 나도 다르게 그리는 톱 모양이고 물고기의 크기이지만 이름은 똑같습니다. 톱상어. A4용지와 연필만 있어도 데생 화가가 된 냥, 스삭스삭 스케치를 하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재잘재잘 바닷속 이야기를 연신 떠들어대지요. 고래와 톱상어. 남자아이들은 덩치 큰 물고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기웃기웃 아이들의 새 그림책을 엿보다가 반짝 은빛 나는 멸치 떼를 보았습니다. 가슴인가 등인가에 달라붙은 눈부신 은빛이 파란 바다를 수놓는 그림이었지요. 햐, 작은 것들도 떼 지어 다니니 한 예술을 하네.

 

삼천년 묵은 멸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얘들아 멸치가 삼천년 동안 살면 몸집이 얼마나 커질까”하고 물었어요. 갸우뚱하던 성훈이가 고등어 만해 질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비만 끼가 있는 그 녀석은 모르긴 몰라도 엄마가 해 주는 맛있는 고등어조림이 생각난 것 같습니다. 사람은 편안하게 부르거나 대치하기 쉬운 것에는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 같습니다. 자기의 아픔을 휴지통에 가지런히 처리하지 못하고 만만한 옆 사람에게 던지는 투사의 버릇도 그런 본능의 하나일까요. 하여간 어린 아이일수록 글자나 내용보다는 자기 생각을 에둘러 그리길 더 좋아합니다. 이야기는 각자의 입에서 또 제각각 다르게 흘러나옵니다. 싱겁지만 저는 그 이야기들이 재밌습니다.

 

한동안 아니 지금도 자꾸 웃게 되는 이야기, 삼천년 묶은 멸치 이야기를 해 볼까 하는데요. 이야기의 배경은 바다 그것도 제가 좋아하고, 가끔은 무서워하기도 하는 동쪽 바다입니다. 성난 파도가 등대니 방파제를 후려칠 때면 열라 무서워 치달리고 싶지요. 쫓아오지도 않을 남자애를 메롱 메롱 약 올리며 대문 앞까지 유인하던 계집애가 바다와의 게임 속에서 알짱댑니다. 동해 바다 밑에는 명태와 오징어 가재미가 많이 살았다지요. 그러나 요즘은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동안 너무 많이 건져 먹어서 일까요. 배도 별로 안고픈 사람들이 자기 집에 너무 많이 쌓아둔 때문일까요.

 

삼천년 묵은 멸치대왕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한 번은 자기가 하늘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땅으로 뚝 떨어지고, 열 명의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를 메고 어디론가 가더라는 것입니다. 흰 눈이 내리고 추운가 했더니 이내 더워지고, 그러더니 붉은 고개를 꼴까닥 넘어가더라는 것이지요. 꿈 해석이 궁금해진 멸치대왕이 가재미를 불러 서해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꿈 해몽가 망둥이를 모셔오라는 명령이지요. 열흘 밤낮을 헤엄쳐 간 가재미가 망둥이를 모셔왔을 때 그 곳에서는 꼴뚜기와 메기 병어까지 불러들인 멸치대왕이 잔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것들이, 가재미는 배알이 뒤틀렸어요. 그나저나 망둥이의 꿈 해몽이 진국입니다.

 

멸치대왕님의 꿈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이오니 잠시 땅에 떨어진 것은 물을 뜨러 내려온 것이요, 열 사람이 메고 가는 것은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나는 것이며, 흰 눈이 내리는 것은 용이 날씨까지 이리저리 조절하는 것이고, 붉은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노을이 질 때 승천한다는 뜻입니다. 망둥이의 꿈 해몽이 끝나자 멸치대왕과 다른 물고기들은 흡족한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이를 보던 가재미의 심기가 더 뒤틀렸습니다. 아니 그런 엉터리 해몽이 어디 있어, 성질을 벌컥 냈습니다. 동상이몽은 아무래도 불행한 일이지만 그 뒷곁으로는 해학을 구전시키기도 하나 봅니다. 중력이 작용되는 곳에서의 모든 역설, 우수와 해학이 공존하는 원리는 바닷속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가재미의 해몽은 이렇습니다.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낚싯대에 걸렸다는 것이요, 어부들의 손에 의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멸치대왕이 석쇠에 올려지는 것이니, 흰 눈은 소금이요 붉은 고개는 사람들의 목구멍이 아니겠습니까. 해몽이 미처 끝나기도 전 번쩍 가재미의 뺨에 번개가 쳤습니다. 화가 난 멸치가 가재미의 뺨을 얼마나 세차게 후려쳤던지 눈알이 획 돌아가 버렸지요. 이 때 가재미가 뒤로 벌러덩 자빠지면서 메기를 그만 짓밟아 버렸어요. 입이 귀 뒤까지 찢어진 메기를 옆에서 지켜보던 꼴뚜기가 놀라서 그만 제 눈알을 뽑아 꽁무니에 감추었답니다. 이 광경을 보던 병어는 그 와중에 자기 입을 꼭 잡고 웃느라 입이 뾰족해지고 말았다지요.

 

머슴애들이 물고기 그림을 다 그렸습니다. 어쩌면 같은 물고기라도 저렇게 다르게 그릴까, 감탄했어요. 맞다 꾸나, 천지에 이래저래 틀린 것이라고 지적할 것이 별로 없구나. 조금씩 다를 뿐, 잘못 그렸다거나 틀리게 그렸다고 말 할 게 아니었구나. 아이들의 그림을 접수하면서 문득 내 안에 돌돌 말아놓았던 부자유한 기억들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합니다. 펼침도 오므림도 일제히 원을 그리며 곡선의 리듬을 연주합니다. 작가미상의 이 이야기 속에 별 볼일 없는 것들의 우스운 전설이 담겨 있었어요. 동쪽바다 모자란 것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면 딱 어울릴 것 같지요. 그러나 오래오래 웃음을 전하는 이 이야기가 한 범부의 놀라운 상상력에서 나왔음에 경이가 넘칩니다. 고정관념이나 욕심이 없어 더 해학이 넘치는 전설입니다.

 

울퉁불퉁, 뾰족뾰족, 아이들은 언제나 불완전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수와 어설픔들이 모두 정도를 가려는 한 과정에 놓인 것이라 여깁니다. 신나게 팽이를 돌리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팽글팽글 둥근 원모양을 그리는 팽이나 제 몸을 팔딱 뒤집으며 져 주는 딱지놀이나, 아이들의 놀이가 모두 신성해 보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결국은 한 끝 차이, 막판 뒤집기 아닐까요. 우창이의 자그만 딱지를 사정없이 뒤집으며 저의 굵은 팔뚝은 점점 더 굵어만 갑니다.


2008. 9. 24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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