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나에게 찾아온 봄

미송 2009. 6. 6. 11:01

 

 

 

 

나에게 찾아온 봄

 

삶의 대부분이 꽁무니를 붙좇는 경주와 같아서 남은 제 모습이 조금은 초조하고 슬퍼질 때, 차를 몰고 질주하는 나는 환상에 닿을 것만 같은 설레임을 경험한다. 재수까지 합하여 3년 반 동안이나 붓질을 하던 큰 아이가 미술생도가 되었다. 입학식을 닷새 앞둔 2월의 마지막 월요일 기숙사 입주에 탈락된 아들을 위해 방을 구해주러 부랴부랴 운전을 했다.

일단 신갈 IC를 통과하기 전까진 홀로만의 즐거운 여행이려니 하며 만사를 잊고 힘차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랬다. 언제나 순간만큼은 현란한 봄빛이요 싸륵대는 목젖의 떨림이었다. 터질 듯 부푼 나뭇가지 순들이 물오른 처녀의 젖가슴마냥 볼그족족했다. 숱한 언어들일랑 죄다 실어가라고 그리하여 계절도 순간으로 흐르고 나면 그 뿐, 오직 당신 하나로 인해 완성되는 나무일뿐이라고 유혹하는 봄 숲. 겨울 체취 채 가시지 않은 숲은 종종걸음치는 아낙네처럼 푸근하였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마다 원점의 순수를 동경하는 습관이 있을까. 동면에 들었던 개구리가 사지를 꼼틀대다 튀어 오르는 봄이면 나는 20대 시절 오지여행이 떠오른다. 챠르륵 돌아가는 낡은 필름 끝에 천신만고로 매달려 있는 봄은, 황량한 들판의 개구리다. 1992년 16년전 봄 날에 만났던 덕지덕지 가난한 등짝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석회암반 지역이었던 삼척군 상사전리라는 마을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 곳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목사 남편의 선택때문이었다. 함께 답사했던 마을보다 더 외진 곳으로 선교지를 결정한 남편이 야속하여 눈물이 날 정도였지만 어쩌겠는가. 어린 두 아들을 등에 엎은 상황에서 체념하고 이삿짐을 풀 수 밖에. 그토록 척박한 오지에서 어떻게 생존이 가능했었는지 생각해보면 신비한 일이다. 인간적으로 참 아찔했던 시절이었다.      

70호 남짓한 가구들이 흩어져 있던 오지에서 나는 가난에 한이 맺혀 자살하는 알콜중독자를 만났고 실성한 남편을 등에 엎고 십리 길도 넘는 병원을 향해 울며 달리던 30대 여인도 만났다. 대부분 여자들이 산 이쪽동네에서 태어나 찻길과 좀 더 가까운 마을로 시집을 가는 게 그나마의 행복이었다. 그 마을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충격을 준 사람이라면 평생 자기 이름도 모른 채 일랭이 엄니로만 불리웠던 여인. 그녀는 뱃속에 쌍둥이를 가진 줄도 모르고 열달동안 소처럼 일만 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장마철 개울물에 빠져가며 도로까지 나오느라 모진 진통을 겪어야 했다. 그 바람에 이란성 쌍둥이를 무사히 낳긴 했지만 위 아랫니가 몽땅 빠져 졸지에 할머니가 되버렸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불과 40대 초반이었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한없이 초라한 인간 앞에서 나는 공평하다고 믿어왔던 신을 수없이 의심했다. 달빛 처량한 밤 지끄러진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산중턱에서 흘러나오는 불경소리를 듣는 일은 구슬펐다. 아이러니한 소리들과 빛의 기만. 잔혹한 땅에도 깃들것이라 믿었던 빛은 순전히 거짓말이었다. 어린 시절 달무리처럼 나를 따라다녔던 전능하다는 신에게 반항의 깃발을 흔들었다. 진리의 깨우침보다 앞선 빵 한조각의 간절함이 팽팽한 지식의 오만에 도전해 올 때마다 이리저리 부서지는 나를 보았다. 도대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진정 난 왜 이리 낯선 곳에서 서성거리며 젊음을 소진하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문 회의와 좌절로 이어진 20대가 그렇게 지나갔다.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운명 같은 질고를 보았기에 명분과 자기 의로 구제를 자랑하는 얼굴을  보면 나는 빛이라 소금이라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문명의 이기로 길들여진 계절이 어미의 젖꼭지를 놓친 갓난아가의 욕구불만처럼 끝없이 신음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빨갛게 타오를 봄 산의 언저리에서 초록의 봄물을 마실 수 있겠지. 누구에게나 공평히 돌아가는 일반은총으로 너나 할것없이 계절의 순환을 예찬하며 생명을 노래하겠지. 그렇게 위안하며 슬픈 추억 속 그들에게도 부디 따스한 봄이 오리란 꿈을 가져본다. 뿔뿔히 흩어져 도회지 어디 쯤에서 살고 있을 일랭엄니의 세 자식들, 결국 남편을 잃고 재가한 순자씨. 방과후 누에고치에게 줄 뽕잎을 따러 가던 영자도 이젠 다 큰 처녀가 되어 이 봄을 맞고 있을테지.
  

 

2007 봄.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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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시장골목에서 죽마고우를 만나듯 2년 전 봄을 만났다. 偶然 ....그러나 우연이란 없다. 내 손으로 뿌렸던 씨알들 까만 글자들이 살아나 나는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과거에게 너그러워지고 싶은 아침이다. 캘로부대원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셨던 부친의 상흔이 세월에 좀 더 씻겨나가길 바라는 2009년 현충일 아침. 나는 공간을 가로질러 나가는 나의 옛 썰을 듣는다. 남의 블로그에 있는 내 이야기를 발견한 아침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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