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이태준 <까마귀>

미송 2009. 1. 21. 15:49

까마귀


   "호--"

   새로 사온 것이라 등피에서는 아직 석유내도 나지 않는다. 닦을 것도 별로 없지만 전에 하던 버릇으로 그렇게 입김부터 불어 가지고 어스레해진 하늘에 비춰보았다. 등피는 과민하게도 대뜸 뽀오얗게 흐려지고 만다.

   "날이 꽤 차졌군....."

그는 등피를 닦으면서 아직 눈에 익지 않은 정원을 둘러보았다.

이씨 앉은 돌층계 밑에는 발이 묻히어 낙엽이 쌓여 있고 상나무, 전나무 같은 상록수를 빼어놓고는 단풍나무까지 이미 반나마 이울어 어떤 나무는 잎이라고 하나도 없이 설멍하게 서 있다. '무장해제를 당한 포로들처럼'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쓸쓸한 나무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묵묵히 섰는 것을 그는 등피를 다 닦고도 다시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자기 방으로 정한 바깥채 작은사랑으로 올라갔다.

   여기는 그의 어는 친구네 별장이다. 늘 괴벽한 문체를 고집하여 독자를 널리 갖지 못하는 그는 한 달에 이십 원 남짓하면 독방을 차지할 수 있는 학생층의 하숙 생활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궁여의 일책으로 이렇게 임시로나마 겨우내 그냥 비워두는 친구네 별장 방 하나를 빌린 것이다. 내년 칠월까지는 어느 방이든지 마음대로 쓰라고 해서 정자지기가 방마다 문을 열어 보이는 대로 구경하였으나 모두 여름에는 좋을 북향들이 너무 음습하고 너무 넓고 문들이 많아서 결국은 바깥채로 나와, 상노들이나 자는 방이라는 작은사랑을 치우게 한 것이다.

  상노들이나 자는 방이라 하나 별장 전체를 그리 손색 있게 하는 방은 아니었다. 동향이어서 여름에는 늦잠을 자지 못할 것이 흠일까. 겨울에는 어느 방보다 밝고 따뜻할 수 있고 미닫이와 들창도 다 갑창까지 드린데다 벽장문과 두껍닫이에는 유명한 화가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낙관이 있는 사군자며 기명절지(器皿折枝) 가 붙어 있다. 밖으로도 문 위에는 추성각이라는 추사체의 현판이 걸려 있고 양쪽 처마 끝에는 파아랗게 녹슨 풍경이 창연히 달려 있다. 또 미닫이를 열면 눈 아래 깔리는 경치도 큰사랑만 못한 것 같지 않으니, 산기슭에 나붓이 섰는 수각과 그 밑으로 마른 연잎과 단풍이 잠긴 연당이며 그리고 그 연당 언덕으로 올라오면서 무룡석으로 석가산을 모으고 잔디밭 새에 길을 돌린 것은 이 방에서 내려다보기가 그중일듯싶었다. 그런 데다 눈을 번뜻 들면 동편 하늘이 바다처럼 트이고 그 한편으로 훤칠한 늙은 전나무 한 채가 절벽같이 가려 섰는 것이다. 사슴이 뿔처럼 썩정귀가 된 상가지에는 희끗희끗 새똥까지 묻히어서 고요히 바라보면 한눈에 태고가 깃드는 듯한 그윽한 경치이다. 오래간만에 켜보는 남풋불이다. 펄럭하고 성냥불이 심지에 옮기더니 좁은 등피 속은 자옥하게 연기와 김이 서리었다가 차츰차음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차츰차츰 밝아지는 남폿불에 뻥 둘러앉앗던 옛날 집안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나게, 그렇게 남폿불은 추억 많은 불이다.

  그는 누워 너무나 고요함에 귀를 빼앗기면서 옛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보다가 너무나 가까운 데서 까악! 까악! 하는 까마귀 소리에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 바깥은 아직 아주 어둡지 않았다. 또 까악! 까악! 하는 소리에 치어다보니 지나가면서 우는 소리가 아니라 바로 그 전나무 썩정 가지에 시커먼 세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그러는 것이었다.

“까마귀!”

 

   까치나 비둘기를 본 것만은 못하였다. 그러나 자연이 준 그의 검음과 그의 탁한 음성을 까닭 없이 저주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마침 정자지기가 올라와서,

   “아, 진지는 어떡하십니까?”

하는 말에, 우유하고 빵이나 먹고 밥 생각이 나면 문안 들어가 사먹는다고, 그래도 자기는 괜찮다고 어름어름하고 말막음으로, “웬 까마귀들이?” 하고 물었다.

   “네, 이 동네 많습니다. 저 낙에 늘 와 사는걸입쇼.”

   “그래요? 그럼 내 친구가 되겠군......” 하고 그는 웃었다.

   “요 아래 돼지 길르는 데가 있습죠니까. 거기 밥찌께기 같은 게 흔하니까 그래 가마귀가 떠나질 않습니다.” 하면서 정자지기는 한 걸음 나서 풀매 치는 형용을 하니 까마귀들은 주춤하고 날 듯한 자세를 가지다가 아래를 보더니 도로 앉아서 이번에는 ‘까르르.....’ 하고 GA 아래 R이 한없이 붙은 발음을 하는 것이다.

  정자지기가 내려간 후 그는 다시 호젓하니 문을 닫고 아까와 같이 아무렇게나 다리를 뻗고 누워버렸다. 배가 고팠다. 그는 또 그 어느 학자의 수면습관설이 생각났다. 사람이 밤새도록 그 여러 시간을 자는 것은 불을 발명하기 전에 할 일이 없어 자기만 한 것이 습관으로 전해진 것뿐이요, 꼭 그렇게 여러 시간을 자야만 될 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수면습관설에 관련하여 식욕이란 것도 그런 것으로 믿어보고 싶었다. 사람은 하루 꼭꼭 세 번씩 으레 먹어야 될 것처럼 충실히 먹는 것이나 이것도 그렇게 많이 먹어야만 되게 되어서가 아니라, 애초에는 수효 적은 사람들이 넓은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이 쉽사리 손에 들어오니까 먹기만 하던 것이 습관으로 전해진 것뿐이요 꼭 그렇게 세 끼씩이나 계획적으로 먹어야만 될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이 잠을 자기 위해서는 그처럼 큰 여자는 잊어버린 듯 오래도록 햇볕만 쏘이고 서 있다가 어디선지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는 것을 보더니 그제야 사뿐 발을 떼어놓았다. 머리는 틀어올리었고 저고리는 노르스름한 명주빛인데 고동색 스웨터를 아이 없듯 두 소매는 앞으로 늘어뜨리고 등에만 걸치었을 뿐, 꽤 날씬한 허리 아래엔 옥색 치맛자락이 부드러운 물결처럼 가벼운 주름살을 일으키었다. 빨간 단풍잎 하나를 들었을 뿐, 교요한 아침 산보인 듯하다.

  ‘누굴까?’

그는 장정(裝幀) 고운 신간서(新刊書)에처럼 호기심이 일어났다. 가까이 축대 아래로 지나가는 것을 보니 새 양봉투 같은 깨끗한 이마에 눈결은 뉘어 쓴 영어 글씨같이 채근하다. 꼭 다문 입술, 그리고 보로통한 콧봉우리에는 약간치 않은 프라이드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웬 여잔데!’

   이튿날 아침에도 비교적 이르게 잠이 깨었다. 살며시 연당 쪽을 내어다보니 연당 앞에도 잔디밭 길에도 아무도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런지 붙들었던 새를 날려보낸 듯 그는 서운하였다.

  이 날 오후이다. 그는 낙엽을 긁어다가 불을 때고 있었다. 누군지 축대 아래에서 인기척이 났다. 머리를 쓸어넘기며 내려다보니 어제 아침의 그 여자다. 어제 그옷, 그 모양, 그 고요함으로 약간 발그레해진 얼굴을 쳐들고 사뭇 아는 사람을 보듯 얼굴을 돌리려 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섰는 것이다. 이쪽은 당황하여 다시 머리를 쓸어넘기며 일어섰다. 

  

“×선생님 아니세요?”

여자가 거의 자신을 가지고 먼저 묻는다.

“네,×××입니다.”

“........”

여자는 먼저 물어놓고 더 말이 없이 귀밑까지 발그레해지는 얼굴을 푹 수그렸다. 한참이나 아궁에서 낙엽 타는 소리뿐이었다.

“절 아십니까?”

여자는 다시 얼굴을 들 뿐, 말은 없다가 수줍은 웃음을 머금고 옆에 있는 돌층계를 휘뚝휘뚝 올라왔다. 이쪽에서는 낙엽 한 무더기를 또 아궁에 쓸어 넣고 손을 털었다.

“문간에 명함 붙이신 걸로 알었세요.”

“네......”

“저두 선생님 독자예요. 꽤 충실한.......”

“그러십니까? 부끄럽습니다.”

그는 손을 비비며 여자의 눈을 보았다. 잦아든 가을 호수와 같이 약간 꺼진 듯한, 피곤한 눈이면서도 겨울 별 같은 찬 광채가 일어났다.

“손수 불을 때시나요?”

“네.”

“전 이 집 정원을 저의 집처럼 날마다 산보 와요, 아침이문....”

“모두 날 위해주고 친구들이 꽃을 가지고 찾아와주고 그리고 건강했을 때보다 여간 희망이 많지 않아요. 인제 병이 나으면 누구헌테 제일 먼저 편지를 쓰겠다. 누구헌테 전에 잘못한 걸 사과하리라.... 참 별별 희망이 다 끓어올랐예요....병든 걸 참 감사했어요. 그땐…….”

“지금은요…….?”

“무서와졌예요. 죽음도 첨에는 퍽 아름다운 걸로 알았드랬예요. 언제든지 살다 귀찮으면 꽃밭에 뛰어들득 언제나 아름다운 죽음에 뛰어들 수 있는 걸 기뻐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닥뜨리고 보니 겁이 자꾸 나요. 꿈을 꿔두......”

하는데 까악까악 하는 소리가 그 전나무 썩정 가지에서인 듯, 언제나 똑같은 거리에서 울려왔다.

“여기 나와선 까마귀가 내 친굽니다.”

하고 그는 억지로 그 불길스러운 소리를 웃음으로 덮어버리려 하였다.

“선생님은 친구라구꺼정! 전 이 동네가 모두 좋은데 저게 싫어요. 죽음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구 자꾸 깨쳐주는 것 같아요.”

“건 괜한 관념인 줄 압ㄴ다. 흰 새가 있듯 검은 새도 있는 거요, 소리 맑은 새가 있듯 소리 탁한 새도 있는 거죠. 취미에 따란 까마귀도 사랑할 수 있는 샌 줄 압니다.”

“건 죽음을 아직 남의 걸로만 아는 건강한 사람들의 두개골을 사랑하는 것 같은 악취미겠지요. 지금 저헌텐 무서운 짐승이예요. 무슨 음모를 가지구 복면하고 내 뒤를 쫓아다니는 무슨 음흉한 사내같이 소름이 끼쳐요. 아마 내가 죽으면 저 새가 덥석 날라와 앞을 설 것만 같이......”

“죽음이 아름답게 생각될 때 죽는 것처럼 행복은 없을 것 같아요.”

하고 여자는 너무 길게 지껄였다는 듯이 수건으로 입을 코까지 싸서 막고 멀거니 어두워 들어오는 미닫이를 바라보았다.

이 병든 처녀가 처음으로 방에 들어와 얼마 안 되는 이야기를 그의 체온과 그의 병균과 함께 남기고 간 날 밤, 그는 몹시 우울하였다.

무슨 말을 하여야 그 여자를 위로할 수 있을까?

과연 그 여자의 병은 구할 수 없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 여자에게 죽음이 다시 한번 꽃밭으로 보일 수 있을까?

그는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이것을 생각하다가 머릿속에서 무엇이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가만히 이마에 손을 대니 그것은 벽장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는 벽장을 열고 두어 마리의 쥐를 쫓고 나무 나무때기처럼 굳은 빵 한쪽을 꺼내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뒷산에서 주워온 그 환약과 같이 둥그러면서도 가랑잎처럼 무게가 없는 토끼의 배설물을 집어보면서 요즘은 자기의 것도 그렇게 담박한 것이 틀리지 않을 것을 미소하였다. ‘사람에게서도 풀내가 나야 한다‘ 한 철인 소로의 말이 생각났으며 사람도 사는 날까지 극히 겸손한 곤충처럼 맑은 이슬과 향기로운 풀잎으로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그 운명이 슬픈 생각도 났다.

‘무슨 말을 하여주면 그 여자에게 새 희망이 생길까?’

그는 다시 이런 궁리에 잠기었고 그랬다가 문득,

‘내가 사랑하리라!“

하는 정열에 부딪치었다.

‘확실히 그 여자는 애인을 갖지 못했을 거다. 누가 그 벌레 먹은 가슴에 사랑을 묻었을 거냐!’ 그는 그 여자의 앉았던 자리에 두 손길을 깔아보았다. 싸늘한 장판의 감촉일 뿐, 체온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슬픈 아가씨여, 죽더라도 나를 사랑하면서 죽어 다오! 애인이 없이 죽는 것은 애인을 남기고 죽기보다 더욱 슬플 것이다..... 오래전부터 병균과 싸워온 그대에게 확실히 애인이 있을 수 없을게다.’

  그는 문풍지 떠는 소리에 덧문을 닫고 남포에 불을 낮추고 포의 슬픈 시 ‘레이벤’을 생각하면서, “레노어? 레노어? ” 하고, 포가 그의 애인의 망령을 부르듯이 슬픈 음성을 소리쳐보기도 하였다. 그 덮을 것도 없이 애인의 헌 외투 자락에 싸여서, 그러나 행복스럽게 임종하였을 레노어의 가엾고 또 아름다운 시체는, 생각하여보면 포의 정열 이상으로 포근히 끌어안아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포가 외로운 서재에 앉아 밤 갚도록 옛 책을 상고할 때 폭풍은 와 문을 열어젖뜨렸고 검은 숲 속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까마귀가 울면서 머리 풀어헤친 아름다운 레노어의 망령이 스르르 방 안 한구석에 들어서곤 했다.

  ‘오오, 나의 레노어! 너는 아직 확실히 애인을 갖지 못했을 거다. 내가 너를 사랑해주며 내가 너의 죽음을 지키는 슬픈 애인이 되어주마!’

  그는 밤이 너무나 긴 것을 탄식하며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었다.

  그러나 밝은 날 아침은 하늘은 너무나 두껍게 흐려 있었고 거친 바람은 구석구석에서 몰려나오며 눈발조차 희끗희끗 날이었다. 온실 속에서나 갸웃이 내어다보는 한 송이 온대 지방 꽃처럼, 그렇게 가냘픈 그 처녀의 얼굴이 도저히 나타나기를 바랄 수 없는 날씨였다.

  ‘오, 가엾은 아가씨! 너는 이렇게 흐린 날 어두운 방 속에 누워 애인이 없이 죽을 것을 슬퍼하리라! 나의 가엾은 레노어!’

   사흘이나 눈이 오고 또 사흘이나 눈보라가 치고 다시 며칠 흐리었다가 눈이 오고 그리고 날이 들고 따뜻해졌다. 처마 끝에서 눈 녹는 물이 비 오듯 하는 날 오후인데 그 가엾은 아가씨가 나타났다. 더 창백해진 얼굴에는 상장(喪章) 같은 마스크를 입에 대었고 방에 들어와서는 눈까풀이 무거운 듯 자주 눈을 감았다 뜨면서,

   “그간 두어 번이나 몹시 각혈을 했어요.”

하였다.

“그러나......”

“의사는 기관에서 터진 피래지만 전 가슴에서 나온 줄 모르지 않아요.”

“그래도 의사가 더 잘 알지 않겠어요?”

“의사가 절 속여요. 의사만 아니라 사람들이 다 날 속이려고만 들어요. 돌아서면 뻔히 내가 죽을 걸 이야기하다가도 나보군 아닌 체들 해요. 그래서 벌써부터 난 딴 세상 사람처럼 따돌리는 게 저는 슬퍼요. 죽음이 그렇게 외로운 거란 걸 날 죽기 전부터 맛보게들 해요.”

  아가씨의 말소리는 떨리었다.

  “그래도....... 만일 지금이라도 만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말만은 곧이들으시겠습니까?”

눈을 고요히 감고 뜨지 않았다.

“앓으시는 병을 조금도 싫어하지 않고 정말 운명을 같이 따라 하려는 사람만 있다면......?”

“그럼 그건 아마 사람이 아니겠지요. 저한테 사랑하는 사람이 있긴 있어요....절 열렬히 사랑해주어요. 요즘도 자주 저한테 나와요.”

“그는 정말 날 사랑하는 표로, 내가 이런, 모두 싫어허는 병에 걸린 걸 자기만은 싫어허지 않는단 표로 하루는 내 가슴에서 나온 피를 반 컵이나 되는 걸 먹기까지 한 사람이여요. 그렇지만 그게 내게 위로가 되는 줄 아세요?”

그는 우울할 뿐이었다.

“내 피까지 먹고 나허고 그렇게 가깝게 해도 그는 저대로 건강하고 저대로 살아가야 할 준비를 하니까요. 머리가 자라면 이발소에 가구, 신이 해지면 새 구둘 맞추고, 날마다 대학 도서관에 다니면서 학위 받을 연구만 하구 있어요. 그러니 얼마나 저하곤 길이 달라요? 전 머릿속에 상여, 무덤 그런 생각뿐인데......”

“왜 그런 생각만 자꾸 하십니까?”

“사람끼린 동정하구퍼두 동정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왜요?”

“병자에겐 같은 병자가 되는 것 아니곤 동정이 못 될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맘대로 같은 병자가 되면 같은 정도로 앓다 같은 시각에 죽습니까? 뻔히 죽을 사람을 말로만 괜찮다 괜찮다 하고 속이는 건 이쪽을 더 빨리 외롭게 만드는 거예요.”

   “어떤 상여를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담하게 이런 것을 물어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아가씨의 세계를 접근하는 것이 될까 하였다.

   “조선 상여는 참 타기 싫어요. 요즘 금칠 막 한 자동차도 보기도 싫어요. 하아얀 말 여럿이 끌구 하는 하얀 마차가 있다면...... 하고 공상해봤어요. 그리고 무덤도 조선 무덤들은 참 암만해도 정이 가질 않아요. 서양엔 묘지가 공원처럼 아름답다는데 조선 산수들야 어디 누구의 영원한 주택이란 그런 감정이 나요? 곁에 둘 수 없으니 흙으루 덮구 그냥 두면 비에 패이니까 잔디를 심는 것뿐이지 꽃 한 송이 심을 데나 꽂을 데가 있어요? 조선 사람처럼

죽는 사람의 감정을 안 생각해주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아요. 괜히 그 듣기 싫은 목소리로 울기만 하고 까마귀나 모여들게 떡 쪼가리나 갖다 어질러놓고......“

“선생님은 왜 이렇게 외롭게 사세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에게 애인이 없으리라 단정한 자기의 어리석음을 마음 아프게 비웃었고 저렇게 절망에 글하여 세상 욕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거룩한 여자를 애인으로 가진 그 젋은 학도가 몹시 부러운 생각뿐이었다.  

 

   날은 이미 황혼에 가까웠다. 연당 아래 전나무 꼭대기에서는 아직, 그 탁한 소리로 울지는 않으나 그 우악스런 주둥이로 그 검은 새들이 썩정귀를 쪼는 소리가 딱딱 울려왔다.

  “까마귀가 온 게지요?”

  “그렇게 그게 싫으십니까?”

  “싫어요. 그것 뱃속엔 아마 별별 구신딱지가 다 든 것처럼 무서워요. 한번은 꿈을 꾸었는데 까마귀 뱃속에 무슨 부적이 들고 칼이 들고 시퍼런 불이 들고 한 걸 봤어요. 웃지 마세요. 상식은 절 떠난 지 벌써 오래요......”

“허허....”

그러나 그는 웃고 속으로 이제 까마귀를 한 마리 잡으리라 하였다. 그 배를 갈라서 그 속에는 다른 새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내장뿐인 것을 보여주리라, 그래서 그 상식을 잃은 여자의 까마귀에 대한 공포심을 근절시키고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심까지도 좀 덜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이 아가씨가 간 뒤에 그길로 뒷산에 올라 물푸레나무를 베어다가 큰 활을 하나 메웠다. 꼿꼿한 싸리로 살을 만들고 끝에다는 큰 못을 갈아 촉을 박고 여러 번 겨냥을 연습하여보고 까마귀를 창문 가까이 유혹하였다. 눈 위에 여기저기 콩을 뿌리었더니 그들은 마침내 좌우를 의뭉스런 눈으로 두리번거리면서도 내려와 그것을 쪼았다. 먼 데 것이 없어지는 대로 그들은 곧 날듯 날듯이 어깨를 곧추세우면서도 차츰차츰 방문 가까이 놓인 것을 쪼며 들어왔다. 방 안에서는 숨을 죽이고 조그만 문구멍에 살촉을 얹고 가장 가까이 들어온 놈의 옆구리를 겨냥하여 기운껏 활을 당겨 가지고 쏘아버렸다.

  푸드덕하더니 날기는 다 날았으나 한 놈이 죽지에 살이 박힌 채 이내 그 자리에 떨어졌고 다른 놈들은 까악까악거리면서 전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는 황망히 신을 끌며 떨어진 놈을 쫓아들어가 발로 덮치려 하였다. 그러나 까마귀는 어느 틈에 그의 발 밑에 들지 않고 훨쩍 몸을 솟구어 그 찬란한 핏방울을 눈 위에 휘뿌리며 두 다리와 한 날개로 반은 날고 반은 뛰면서 잔디밭 쪽으로 더풀더풀 달아났다. 이쪽에서도 숨차게 뛰어 다우쳤다. 보기에 악한과 같은 짐승이었지만 그도 한낱 새였다. 공중을 잃어버린 그에겐 이내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화살이 그냥 박힌 채 연당으로 내려가는 도랑창에 거꾸로 박히더니 쌕색하면서 불덩어리인지 핏방울인지 모를 두 눈을 뒤집어쓰고 집게 같은 입을 딱딱 벌리며 대가리를 곧추들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는 다른 놈들이 전나무에서 내려와 까악거리며 저희 가족을 기어이 구하려는 듯이 낮게 떠돌며 덤볐다.  

 

  그는 슬그머니 겁이 나기도 했으나 몽우리돌을 집어 공중의 놈들을 위협하는 도랑에서 다시 더풀 올려솟는 놈을 쫓아들어가 곧 은발질로 멱투시를 차 내던졌다. 화살은 빠져 떨어지고 까마귀만 대여섯 간 밖에 나가떨어지며 킥 하고 뻐들적거렸다. 다시 쫓아가 발길을 들었으나 그때는 벌써 까마귀는 적을 볼 줄도 모르고 덮어누르는 죽음과 싸울 뿐이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 검은 새의 죽음의 고민을 내려다보며 그 병든 처녀의 임종을 상상해보았다. 슬픈 일이었다. 그는 이내 자기 방으로 돌아왔고 나중에 정자지기를 시켜 그 죽은 까마쉬를 목을 매어 어느 나뭇가지에 걸게 하였다. 그리고 어서 그 아가씨가 나타나면 곧 훌륭한 외과의사처럼 그 검은 시체를 해부하여 까마귀의 뱃속에도 다른 날짐승과 똑같이 단순한 조류의 내장이 있을 뿐, 결코 그런 무슨 부적이거나 칼이거나 푸른 불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날씨는 추워가기만 하고 열흘에 한 번도 따뜻한 해가 비치지 않았다. 달포가 지나도록 그 아가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날씨는 다시 풀어져 연당에 눈이 녹고 단풍나무 가지에 걸린 까마귀의 시체도 해부하기 알맞게 녹았지만 그 아가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는, 다시 추워져 싸락눈이 사륵사륵 길에 떨어져 구르는 날 오후이다. 그는 어느 잡지사에 들어가 곤작 한 편을 팔아 가지고 약간의 식료를 사 들고 다 나온 길인데 개울 건너 넓은 마당에는 두어 대의 검의 자동차와 함께 금빛 영구차 한 대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는 가슴이 섬직하였다. 별장 쪽을 올려다보니 전나무 꼭대기에서는 진작부터 서너 마리의 까마귀가 이 광경을 내려다보며 쭈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여자가 죽은 거나 아닌가?’

  영구차 안에는 이미 검은 포장에 덮인 관이 실려 있었다. 둘러섰는 동네 사람 속에서 정자지기가 나타나더니 가까이 와 일러주었다.

  “우리 정자로 늘 오던 색시가 갔답니다.”

  그는 고요히 영구차를 향하여 모자를 벗었다.

  “저 뒤에 자동차게 지금 오르는 사람이 그 색시하고 정혼했던 남자랩니다.”

   그는 잠자코 그 대학 도서실에 다니며 학위 얻을 연구를 한다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 청년은 자동차 안에 들어앉자 이내 하얀 손수건을 내어 얼굴에 대었다. 그러자 자동차들은 영구차가 앞을 서며 고요히 굴러 떠나갔다. 눈은 함박눈이 되면서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 자동차들의 굴러간 자리도 얼마 안 있어 덮어버리고 말았다.

   까마귀들은 이날 저녁에도 별다를 소리는 없이 그저 까악까악 거리다가 이따금씩 까르르 하고 그 GA아래 R이 한없이 붙은 발음을 내곤 하였다. <끝>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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