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마경덕<비의 발자국>

미송 2009. 1. 21. 20:51

 

 

 

의 발자국 / 마경덕

 

밤새 창문으로 스미는 빗소리, 깊은 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밤비를 소리로 읽는다. 홀로 내리는 비의 발자국소리. 지금쯤 옥상에 심은 토마토의 발목이 흠뻑 젖고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도 자다 깨어 빗물에 얼굴을 닦고 있을 것이다. 칠흑 같은 밤, 까마득한 허공에서 낙하를 결심하기까지 몇 번을 망설였을까? 투둑투둑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혀 비의 발목이 부러지는 소리, 뒤란 차양에서 빗물 튀는 소리, 빈틈없이 포장된 도시로 속수무책 뛰어내리는 저 빗소리를 나는 비명으로 읽는다.

 

비명… 그러니까, 나는 지금 간절한 울음을 듣고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城인 도시로 내리는 비는 목이 꺾이고 팔이 부러지고 머리통이 깨지고…여리고성처럼 단단한 문명 앞에 비는 지금 산산이 흩어진다.

 

언젠가 비 내리는 날 바다를 보러 갔었다. 동글동글 무수한 발자국들이 바다에 찍히고 있었다. 빗발은 일제히 바다를 건너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소금기 많은 바다보다 비의 울음이 더 무거웠다. 대형 유조선도 그 눈물보다는 가벼운지 물에 떠있었다. 또 언젠가는 눈 내리는 바다를 만나고 왔다. 눈도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디딜 데 없는 그 바다가 얼마나 끔찍했던지, 눈도 몸서리치며 뛰어내렸다.

 

산이나 들에 내리는 비는 편안하다. 흙 묻은 발로 여기저기 신이 나서 뛰어다닌 흙발자국에 땅은 살이 오른다. 우우 소리치며 하수구로 떠밀려가는 도시의 비는 제 짝을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흙을 밟고 산지가 오래되었다. 한동안 맨발로 걷고 싶은 길을 만나지 못했다. 흙감태기 아이들은 사라지고 너나없이 말쑥해졌다. 어쩌다 아이 손에 흙이 묻으면 엄마들은 질겁하며 달려온다.

 

바닥을 치는 소리, 빗발이 조금 굵어졌다. 아무리 두드려도 포장된 도로 안으로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해 콸콸 하수구로 밀려나간다. 흙냄새가 그리운 그것들이 한꺼번에 캄캄한 아가리로 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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