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가장자리 / 백무산
우리 사는 곳에 태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뒤집고
불덩이 화산이 솟고 사막과 빙하가 있어 나는 고맙다
나는 종종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끔찍할까
지구는 얼마나 형편없는 별일까 생각한다네
내가 사는 곳이 별이란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게
지구의 가장자리가 얼어붙고 들끓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네
도심에 광야를 펼쳐놓은 비바람 천둥에도 두근거리네
그래도 인간들 곁에서 무엇보다 그리운 건 인간이지
한두세기 만에 허접한 재료로 발명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온 모든 길을 다 걸어온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계통발생의 길을 다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그 오랜 인간의 몸에 내장된 디스크 메모리를
법륜처럼 굴려보았으면 싶은 건데
그래서 나는 버릇처럼 먼 외곽으로 자꾸만 발길이 간다네
아직 별똥별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길들어지지 않는 땅에
먼 길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이 더러 살고 있을 그런 곳에
잠에서 깨어나 창을 열면 이곳이 별이라는 생각
벌거벗은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을 뜨기를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인간의 가장자리 사회의 가장자리
그 모든 가장자리를 그리워한다네
한 십만년 소급해서 살고 싶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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