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를 기다리며 / 정일근
김씨의 하관은 정오에 있을 것이다.
붉은 흙더미 사이에 광중이 파여 있다.
반듯한 직사각형 저 죽음의 깊이까지
뜨거운 햇살이 들끓는다.
코끝이 빨간 풍수의 음양오행은
아침부터 대책 없이 취해 있다.
상복을 걸친 생면부지의 여자가
걸어놓은 솥에 관솔로 불을 지핀다.
물보다 생송진이 먼저 비등점에 닿는다.
핏물이 말라가는 쇠고기 덩어리
무정형의 슬픔 같다는 생각은 사치 같다.
누런 갈색의 쇠파리가 피 냄새를 맡았나보다
앵앵거리며 달려든다.
무덥다. 열대야가 예고된 폭염의 세례를 받으며
주검이 느릿느릿 오고 있다.
김씨의 관이 차에 실려 장지로 오는 사이
죽음의 의식이, 눈물의 조문이
땀에 젖어 불쾌하게 번들거릴 뿐이다.
머리 속이 소금사막처럼 하얗다.
그에게 읽어줄 마지막 시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백지를 들고 정오 아래 서 있다.
유쾌한 노선 / 신용목
유쾌한 박구철 씨는 하늘로 갔다 하늘 가는 길
날마다 새들이 빗금을 쳐 흔적을 지웠다 따라갈 수 없었다
하늘로 오르려고 그들은 뛰어내렸다 옥상에서 창문에서 다리 위에서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추락했다 몸을 놓고 버렸다
날개가 있었다면 그들은 끝내 하늘로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높이를 가졌다가 다시 버리는 일
솟구쳐오르기 위해 벗어야 할 하늘의 중력을
수려한 자세로 돌파하는 그들은 제트기
유쾌한 박구철 씨를 하늘로 보냈다 각자의 장지에서
하늘로 보내려고 그들을 묻었다 코를 막고 입을 막고 귀를 막고
보내기 위해 사각에서 가두었다 흙을 덮고 다졌다
부력이 있었다면 그들은 끝내 하늘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먼 하늘을 향해 새싹으로 화하여 솟구치는
관은 우주선 가장 느리고 단단한 비상을 꿈꾸는
무덤은 지상이 만든 가장 견고한 발사대
세상에는 유쾌한 노선이 있다 새들도 하늘로 가기 위해
땅에 떨어졌다 흙에 스몄다 느리게 봄이 왔다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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