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허물벗기

미송 2013. 11. 16. 09:33

 

 

 

                                                                                                                                            아마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면서 설명되지 않을 수 있는 것

 

 

 

유리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처음에는 톡톡 두드리는가 싶더니 오 분 지나 일 분 간격으로, 톡톡 톡톡톡 토도독 토도도독 분주하게 두드린다. 나는 내 속에서 저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다. 대문을 열어달라는 우리 집 큰 개의 신호다.

 

일정한 시간대에 나를 일으키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관문을 열자 동시에 대문 앞으로 달려간 우리 집 큰 개가 그 자리에서 다시 삥글삥글 돈다. 마치 똥마려움을 참는 것 같이. 그래서 다급하게 대문을 열어 준다. 그와 동시에 아침안개가 시야에 들어온다. 기습처럼 밀려든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안개를 느끼는 나, 그러면서 어제 쓸고 남은 흰 꽃잎들을 내려다본다. 통째로 사라지게 된 국화를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의 의지가 아니었으리라. 지나가던 두 대의 자동차가 심하게 부딪히는 바람에 부지불식간에 국화의 꽃대가 부러져 버렸으니, 부지불식不知不識이란 꽃대의 입장에서의 표현은 아니지만, 통째로 쓰러진 꽃대를 발견한 내 놀라움의 표현방식이지만 어쨌든,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온갖 만물에 적용되는 예가 아니던가 또 생각한다.

 

일상의 시간대에서 나를 요모조모로 바꾸는 것도 한두 가지는 아니다. 미스트 쿠션으로 화장을 마무리하는 순간의 나는 화장 전의 나와 다른 나를 들여다보며 놀라는 척도 하지만, 문 밖을 나서기 전 화장을 하려는 것은 관습임을 안다. 사실 그것은 또 타인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섬광閃光처럼 스치는 생각 속에 나는, 나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물음을 갖는다.

 

산뜻한 기분으로 하루의 단추들을 열수 있으리라 믿으며 대문을 나서고, 또 다른 작은 문 안으로 들어서는 나는, 각양각색의 마스크와 목소리와 휘황한 마음들이 왁자한 것을 느낀다. 피곤함도 따라온다. 무선스피커의 파란 조명을 확인함과 동시 음악을 들으려는 순간에 한 소녀가 내 스마트폰을 쥐고 음악을 바꾼다. 졸지에 그 소녀의 음악을 듣는다. 간 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기라도 했는지 일흔 중반의 한 노인이 자기보다 젊은 여자에게 투정을 부린다. 그 무슨 권리행사처럼 관심을 끌려는 그런 노인들을 겪으면서, 나는 나를 떼어 먹힌 듯 탈진되기도 한다.

 

하늘과 땅 사이 인자한 구석이 거의 없구나. 몇 장만 남아 뒹굴고 있는 꽃잎을 보아도 그렇고, 나라고 말했던 어제의 내가 내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아도 그렇다. 일년 열 두 달 잔인하지 않은 달이 어디에 있으랴. 엘리엇은 과연 사월만 잔인하였으랴. 겹겹 옷을 껴입으며 옷들의 출처를 더듬자니 내 뜻에 의해 내게로 온 것들이 하나도 없다. 둘러보니 대문을 나설 때 신었던 신발도 아침에 먹었던 음식들도 화장품들도, 하다못해 쿵쾅쿵쾅 규칙적으로 뛰노는 내 안의 심장도 내 의지를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기쁘게 하지만 나를 슬프게도 하는 것들. 나를 속이기도 하지만 내가 스스로 기만하기도 하는 것들. 것들이란 등속等屬을 향해 무언의 항변을 하며 산다. 그러나 실제 그 라고 생각했던 내가, 내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엔, 세상이 트인 길처럼 열린다. 부처는 이러한 실상과 허상을 다 공하다 말했다는데, 과 공을 합친 공공空空 다시 나를 세우고 나라 우기는 아상我相마저 해체하라고 했다는데. 그러면 아침에 화장을 하고 옷을 입으며 깨달았던 그것마저, 알몸이 되어 눕는 순간의 홀가분함마저 의식하지 않는, 매일의 허물벗기를 하란 말인가.

 

열린 대문 사이로 우리 집 큰 개와 작은 개가 들어왔다. 열어두면 알아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우리 집 큰 개와 작은 개는 신통한 녀석들이다. 어디서 그런 규칙을 배웠을까. 전생에 배워둔 것일까. 주인의 의지대로도 아니요 그들만의 의지대로도 아닌 오묘한 들락임의 신비가 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험이 된다. 세상의 한 가운데에 커다란 창문하나 세워 두는 일. 매일처럼 그 경계를 넘나들다 홀연히 국화꽃잎처럼 사라지는 일. 따라가지 못한 몇 장의 꽃잎들이 굳이 자신을 국화라 주장하지 않아도, 오늘도 옷을 입고 옷을 벗는 사람들은 꽃을 추억하며 숭배하기도 하는 것이어서, 꽃은 제 이름을 부르지 않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이 아닐지.

 

불교는 엄격한 나의 경계警戒다. 한 치의 에누리도 없는 과학이다.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끙끙거리고, 놀고나면 집을 찾아 돌아오는 미물微物들도 그러하거늘, 어떤 이데올로기나 신조kerygma들이 이토록 공를 묶어둘 수가 있으랴.  

 

 * 즉비반야바라밀다 시명반야바라밀다 - '지혜를 얻었다 하는 것은 곧 지혜를 얻음이 아니니 지혜 아닌 것이 지혜다'

 

 

 

 

20131116,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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