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자크 프레베르 <바르바라>

미송 2013. 11. 18. 09:48

       

       

       

       

      바르바라 / 자크 프레베르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그날 브레스트*에는 끝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너는 웃음지으며

      꽃핀 듯 황홀히 환희에 넘쳐

      빗속을 걷고 있었지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브레스트에는 끝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시암 가(街)에서 너와 마주쳤지

      너는 웃고 있었고

      나도 같이 웃었다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난 널 알지 못했고

      넌 날 알지 못했다

      기억하는가

       

      기억하는가 그래도 그 날을

      잊지 마라

      어느 집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한 남자

      너의 이름을 외쳤지

      바르바라

      넌 그에게로 달려가

      환희에 넘쳐 황홀히 꽃핀 듯

      그의 품에 몸을 던졌다

      기억하는가 그것을 바르바라

       

      내가 네게 반말한다고 탓하지 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를 나는 너라고 부른다

      단 한 번 본 사람이라도

      서로 사랑하는 모든 이를 나는 너라고 부른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잊지 마라

      그 부드럽고 행복하던 비를

      네 행복한 얼굴 위로

      그 행복한 도시 위로 내리던 비를

       

      바다 위

      무기창고 위

      우에상**의 배 위로 내리던 그 비를

       

      오 바르바라

      전쟁이란 얼마나 바보짓이냐

      이제 넌 어찌 되었나

      이 무쇠의 비 속에

      불의 쇠의 피의 비 속에

      그리고 사랑스럽게

      너를 품에 안았던 그는

      죽었는가 사라졌는가 아직 살아 있는가

      오 바르바라

      브레스트에는 끝없이 비가 내린다

      예전처럼 비가 내린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지금

      내리는 이 비는 무섭도록 황량한 죽음의 비

      쇠의 강철의 피의

      뇌우도 지나간 지금

      그저 구름들만이

      개같이 쏟아지고 있을 뿐

      사라져가는 개들

      브레스트 위로 내리는 물줄기 따라

      멀리 흘러가 썩으리라

      멀리 브레스트에서 아주 멀리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 브르타뉴 지방 서쪽 끝에 있는 대서양 연안 도시. 2차대전 발발 직후 독일군이 전략기지를 만들었던 곳으로 전쟁 내내

        연합군의 폭격이 집중되었으며, 1944년 해방되었을 때는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프레베르는 1939년 이곳에 머물렀다.

      ** 브레스트 가까이 있는 대서양의 작은 섬.

       

       

      자크 프레베르, 《축제는 계속된다》, 김종호 옮김, 솔, 1996, 64-68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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