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이병률 <고양이 감정의 쓸모>

미송 2024. 2. 21. 10:49

 

 

 

1

조금만 천천히 늙어가자 하였잖아요 그러기 위해 발걸

음도 늦추자 하였어요 허나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질 않아

등뼈에는 흰 꽃을 피워야 하고 지고 마는 그 흰 꽃을 지켜

보아야 하는 무렵도 와요 다음번엔 태어나도 먼지를 좀

덜 일으키자 해요 모든 것을 넓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

이에요

 

한번 스친 손끝

당신은 가지를 입에 물고 나는 새

햇빛의 경계를 허물더라도

나는 제자리에서만 당신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하나

의 무의미예요

 

나는 새를 보며 놓치지 않으려 몸 달아하고 새가 어디

까지 가는지 그토록 마음이 쓰여요 새는 며칠째 무의미

를 가로질러 도착한 곳에 가지를 날라놓고 가지는 보란

듯 쌓여 무의미의 마을을 이루어요 내 바깥의 주인이 돼

버린 당신이 다음 생에도 다시 새()로 태어난다는 언질

을 받았거든 의미는 가까이 말아요 무의미를 밀봉한 주

머니를 물어다 종소리를 만들어요 내가 듣지 못하게 아

무 소리도 없는 종소리를

 

 

2

한 서점 직원이 한 시인을 사랑하였다

그에게 밥을 지어 곯은 배를 채워주고 그의 옆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살아지겠다 싶었다

바닷가 마을 그의 집을 찾아가 잠긴 문을 꿈처럼 가만

히 두드리기도 하였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를 문장으로 문장으로 스치다가

도 눈물이 나 그가 아니면 안 되겠다 하였다

사랑하였다

무의미였다.

 

 

낙산사 입구 돌담에 앉은 고양이.  시선을 한 곳에 꽂은 고양이가 귀엽고 신기했어. 어젯밤 지난 스토리들을 뒤적이다가 고양이 감정 어쩌구 저쩌구한 옛 시인을 만났지. 고양이도 감정이 있지. 특히 우리 집 또또. 산책 안 시켜준 저녁엔 꼭 얼굴 정면에 주둥이를 들이대고 꾸짖는다니, 쓸모를 떠나 참으로 찬란한 존재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주말에 찍은 사진과 간밤에 읽은 시를 글씨체만 바꾸어 조합해 본단다.  굿모닝- <오>

 

20131211-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