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백석<여승>외 1편

미송 2023. 7. 31. 11:47

 

 

여승女僧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낮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

이 있었다

 

 

가지취 취나물의 일종으로 각시취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한다.

금덤판 금점판. 주로 수공업적 방식으로 작업하던 금광의 일터.

섶벌 나무섶에 집을 틀고 항상 나가서 다니는 벌.

설게 서럽게의 평북 방언.

머리오리 머리카락.

 

 

 

 

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

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어니젠가 언젠가의 평안 방언. 여기서는 어느 사이엔가의 뜻이다. 이런 용법은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도 나타난다.

싹다 삭다. 간장이나 화가 풀려 마음이 가라앉다.

가제 ’‘방금의 평안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