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문인들, 종교가 뭐냐?에 답하다
문인들에게 종교가 뭐냐는 질문은 흔하면서도,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불교라거나 개신교, 가톨릭, 드물게는 이슬람…. 이렇게 답하는 작가와 시인은 없다. 사람이 지닌 세계를 어떤 개념으로 규정짓는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사람이 작가이거나 시인이면서 불교인이라면 개념으로써 답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한승원, 김연수, 성석제, 김선우, 도종환, 김용택, 고형렬, 문태준, 이문재, 맹난자, 남지심, 이홍섭, 천양희, 정찬주, 송수권, 최동호, 김정빈, 이근배, 오세영, 신달자. 우리 시대의 문학을 일구고 있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문인들이다. 이들이 ‘불교신문’이 2011~2012년 2년 동안 연재했던 ‘문학인의 불교 인연 이야기’를 통해 불교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 불교와 어떤 인연을 짓고 있는지 털어놓았다. 이 연재물은 최근 <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로 묶여 나왔다. 불교신문사 엮음, 조계종출판사 펴냄.
종교를 묻는 질문에 대한 작가와 시인들의 답변은 그의 밑바닥과 전체를 드러내 보이는 힘겨운 작업인데, 김선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구복이나 극락 혹은 천국 같은 사후 세계에 대해 확신에 찬 답을 주는 종교에 대해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인연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존재의 기쁨과 슬픔, 지금 이 순간의 행복과 아름다움에 대해 영민하게 깨어 있으면서 생활 속의 자비와 사람의 실천을 통해 개인과 세계의 각성을 도모하려는 자세,
▲ 불교신문사 엮음, 조계종출판사 펴냄.
그런 지속적인 노력이 이른바 종교적 수행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는 쪽.”
“되고 싶은 게 아무 것도 없었고, 삶보다 죽음 가까이로 스스로를 몰아가며 자신을 내팽개쳤”던 그때 김선우를 시인으로 돌아세운 곳은 언니가 있던 운문사였고, 또래의 비구니스님이 던졌던 물음이었다. “출가하시려구요?”
“그렇게 물었을 때 내 심장이 터질 듯 방망이질 치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 장지문을 통해 저녁 햇살이 뉘엿 들어올 때까지 그렇게 몇 시간째 오도카니 앉아있던 나는 출가를 결심했다. 문학으로의 출가. … 문학에 대한 나의 초발심은 이렇게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린 비구니에게 빚졌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작가, 철썩거리는 바다를 화엄의 바다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해온 한승원은 “고음으로 연주하는 클라리넷 소리 같은 염불 소리”를 내었던 탁발의 비구니스님에게 혼을 붙잡혔다. “그가 응시하는 허공을 나도 바라보았다. 그 허공이 목탁 소리 같은 울림이 되어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 그 스님은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스님의 혼령이 억새꽃으로 변하여 지금 나에게 서걱서걱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작가론의 일단을 스님에게 잇댄다. “한 편의 소설이 끝나기까지 나는 몇 천 번의 절망과 대면한다. 그래서 작가에게 침묵은 일상적이다. 그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자기만의 세계에만 천착한다. 어떤 작가도 집필 중에는 내향적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 작가에게 고독이란 스님의 명상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석제에게 절은 몸과 문학적 에너지를 모으고 빨아들이는 샘 같은 존재다. “절은 언제나 내가 젖이 필요한 아기인 양, 청춘의 방황이 끝나지 않은 불안한 영혼인 양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절은 오갈 데 없었던 젊은 날 그의 자취가 흠뻑 배어 있는 곳이다. 어느 절에서 장작 패면서 머물 때 총무스님이 건네준 싯타르타의 전기는 그의 삶과 문학의 전환기가 되게끔 했다. 그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이렇게 들었다 “거짓을 버려라. 미혹에서 깨어나라. 네가 하나이듯 하나뿐인 진리를 찾아라. 지금의 네 인생도 하나뿐이다. 기회를 헛되이 하지 마라.”
문학의 시대는 저물지 않는다. 삼라만상이 가루가 될지언정, 사람이 숨 쉬고 있다면 문학은 공기처럼 흐르는 기초물질이며, 불교 또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가 보여주고 있다.
2013.12.16 정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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